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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과 승암
이동석 임상병리학과 교수 | 승인 2017.11.13 16:59

솔로몬(Solomon)은 ‘평화’라는 뜻으로, BC 990년 출생하여 BC 971년부터 931년까지 40년간 유다와 이스라엘의 민족을 다스린 이스라엘 왕국의 제3대 왕의 이름이다. 그는 다윗왕과 밧세바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두 번째 아들로 최초로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하고 주변국과 통상을 맺어 나라를 튼튼하고 지혜롭게 다스려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과중한 세금과 700명의 부인과 300명의 첩을 거느릴 만큼 호사스러운 생활로 사후 왕국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일천 번제(燔祭)를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가 뛰어났으며, 문학에도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 문학의 시조라 일컬어지고, 잠언, 아가, 전도서 등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평생에 부와 영광도 열왕 중 으뜸으로 누렸다. 솔로몬은 말년의 저서 전도서(傳道書)를 통해 일생 동안 엄청난 부와 특별한 지혜로 온갖 것을 다 해보고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Everything is meaningless).”라는 명언을 남기며 인생의 허무함을 역설했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흐르던 곳으로 돌아가고 거기서 다시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다시 있겠고 이미 했던 일을 후에 다시 할지니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도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그것은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이 기억함이 없으리라.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보니,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은 곧게 할 수 없고 없는 것은 헤아릴 수 없도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쏟았으나 이것도 역시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이는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도 더하기 때문이니라(For with much wisdom comes much sorrow; the more knowledge, the more grief).”

그러면서 그는 책을 많이 쓰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고 경계(警戒)하면서, 천심(天心)을 경외(敬畏)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the whole duty of man)이라 회개하고 우리들에게 크고 밝은 가르침을 주었다.

승암(勝巖) 이인임(李仁任)은 충혜왕 때 정당문학을 지낸 이조년(李兆年)의 손자요, 공민왕 때 검교문하시중 겸 도첨의평리를 지낸 이포(李褒)의 둘째 아들로서, 1312년 출생하여 늦은 나이로 음서(蔭敍)로 시작했지만 정치 감각이 뛰어나 처음 맡은 전객시승이란 그다지 높지 않은 벼슬에서 금방 스스로의 힘으로 좌부승선으로 승진하고, 이후 홍건적의 침입 때(1359~1362년) 큰 공을 세우면서 1등 공신이 되었다. 공민왕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신하들에 대한 갈증이 높았는데 공민왕의 일이라면 어디든지 참여하여 공을 세우던 이인임은 이 때 50대 초반의 역량 있는 정치가로서 분명 큰 신임을 받았던 것 같다.

 

贈勝巖公(증승암공/ 승암공에게)

瑞明行白玉(서명행백옥/ 단정하고 밝음이 백옥 같으며)

純粹似精金(순수사정금/ 순수함이 마치 잘 다듬어 놓은 금과 같고)

太和陽春樹(태화양춘수/ 크게 환한 기운은 봄날의 뻗어가는 나무와 같으니)

猗古復見今(의고복견금/ 옛날의 아름다움을 이제 보게 되도다.)

 

이 시는 공민왕이 이인임을 칭송하며 선물로 내린 것으로 촉망받던 그의 용모와 성품, 충정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이인임은 문무 모두에 식견이 있고 정치적 수완도 우수한 인물이었기에 공민왕 시해 직후의 정국을 빠르게 안정시키고, 정치적 혼란기에 장기간 실권을 잡을 수 있었다. 결국 공민왕 사후 그는 10세인 우(禑)를 왕으로 옹립하고 10년 가까이 섭정하면서 문하시중까지 오르는 등 천하를 주름잡는 권신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던 그도 말년에는 몸이 쇠약해져 사직하게 되고 위화도 회군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연히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고향으로 유배되어 1388년 77세로 병사할 때까지 유유자적하며 살게 되는데 이때 지난날을 회고하며 애달프게 읊은 시가 한 수 전하여 내려온다.

 

老年寓吟(노년우음/ 노년에 우거하면서 읊은 시)

宦海浮沈二十年(환해부침이십년/ 벼슬길 부침 이십년)

長江嗚咽不平鳴(장강오열불평명/ 긴 강이 불평을 안고 울먹이네)

殘花杜宇聲中落(잔화두우성중락/ 쇠잔한 꽃은 두견새 울음에 떨어지고)

芳草王孫去後生(방초왕손거후생/ 왕손이 간 뒤의 방초는 살아있더라)

金馬玉堂非我願(금마옥당비아원/ 금마와 옥당은 나의 원하는 것 아니고)

靑山綠水有誰爭(청산녹수유수쟁/ 청산과 푸른 물은 누가 다투고 있나)

倘破天荒作國禎(당파천황작국정/ 아마 하늘이 파천황을 세워 복된 국운을 열어 주리라)

 

승암의 노년우음이 솔로몬의 전도서를 상기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사 부귀영화는 모두 덧없고 헛됨을 잘 일깨워 주기 때문일까?

이동석 임상병리학과 교수  ijnews@oasis.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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