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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양민주(문리대행정실 과장·시인)
  • 기고
  • 입력 2017.05.29 13:25
  • 수정 2017.06.02 13:11

윤동주 시인의 길

1. 들머리
올해는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시인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다가 29세의 젊은 나이로 일제에 목숨을 빼앗긴 민족저항 시인이요 세월의 벽을 뛰어넘는 순수한 문학청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윤동주 시인의 시를 가슴속에 새기며 즐겨 애송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시가 「서시」이다. 서시로 시작해서 윤동주 시인의 길에 대해 살펴보자.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년 11월 20일

  「서시」에는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윤동주 시인에게 주어진 길은 과연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한 시 읽기는 시에 나타나는 중심 낱말인 ‘길’을 사전적 의미를 토대로 하는 함축적 읽기를 하였으며 나아가 전기적(傳記的) 사실과 문맥에 대해 연상되는 비유적 의미나 상징적 의미로 확장하였다.

「서시」는 1941년 11월 20일에 쓰였으며 그해 12월 8일 호전적인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윤동주는 12월 27일 전시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윤동주는 졸업기념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시집을 묶으려고 했다. 당시까지 쓴 시 중에서 18편을 고르고, 시집 첫머리에 놓을 시로 쓴 작품이 바로 「서시」이다. 윤동주가 이 시를 쓰기 6~7년 전부터 시를 써 왔으면서도 서시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주어진 길을 다시 걸어가야겠다는 실현하고픈 이상을 사명감으로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것은 하늘을 숭배하는 사상이다. 유교에서는 천명(天命) 혹은 천도(天道) 사상이라고 한다. 맹자는 “어느 것이든 명(命)이 아닌 것이 없지만, 그중 올바른 것에 순응해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맹자의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하고 죽는 것이 올바른 천명이다(盡人事待天命)’는 말씀과 인생삼락(人生三樂) 중 ‘우러러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아래로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창피하지 않은 것이 두 번째의 즐거움이다(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라는 말씀의 복합적 진술임이 드러난다.
여기에서 윤동주는 삶에서 자기의 갈 길을 깨닫고 실존적 삶에 비추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면서 오로지 그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것은 실존적 삶에 대한 지속적인 괴로움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으며, 그 한 측면에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내면적 다짐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서시」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위해 쓰였으며 비중 있는 매우 중요한 시다.

2. 시에 나타나는 길의 표상
윤동주는 이미 알려진 대로 1917년 12월 30일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윤동주가 연전에 입학하기 전 문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그는 아버지 윤영석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윤동주의 아버지는 문학을 하면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한 것이다.

윤동주의 아버지는 젊어서 문학에 뜻을 두어 북경과 동경에서 유학을 하고 교편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문학을 하면 가난을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여건으로 인해  윤동주는 진로(進路)에 대해 커다란 괴로움과 번민을 경험한다. 그러한 심적 고통과 번민은 윤동주로 하여금 삶의 깊이를 성찰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끝내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은 아버지와 그의 갈등을 보다 못한 할아버지 윤하현의 중재로 자신이 희망하던 대로 1938년 4월 연전 문과에 입학하게 된다.

윤동주 시인은 18세 되던 해부터 자기가 직접 쓴 시의 마지막 부분에는 시를 쓴 날짜를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우리가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시인의 삶에 대한 것과 의식의 변모 과정뿐만 아니라 실존적 역사성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시인이 되고자 함에 연유하여 이렇게 일일이 작품을 쓴 날짜를 기록하여 두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말해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였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1938년 5월 10일에 쓴 아래의 시를 한번 보자.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년 5월 10일

 「서시」를 쓰기 삼 년 전 윤동주가 의사가 되기를 강요하는 부친의 명을 따르지 않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쓴 시가 「새로운 길」이다. 여기서 새로운 길은 그가 꿈꾸어 왔던 시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를 살펴보면 그 길은 어제도 갔고 오늘도 갔고 내일도 갈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새로운 길이다. 그것은 시인에게 있어서는 그 길이 언제나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간 길을 오늘 가면서 새롭게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책임과 현실을 돌아보고 다짐한다는 것이다. 시는 언제나 기존의 것에 새로운 의미를 확대하거나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동주에게 있어 현실적 책임은 바로 시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는 자신이 직업으로 여기는 시인의 길을 이렇게 시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시인의 발걸음은 높은 고개를 넘어, 우리와 같은 실존적 인간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길을 새롭게 해석하는 새로운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시인이 걸어가는 이 길은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이는 늘 상쾌하고 새로운 길이다.

많은 사람이 그런 것처럼 윤동주도 처음부터 시인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성장 환경과 유아기 체험 속에는 이미 어느 정도 훗날의 그를 예견케 하는 마음의 인자들이 포함되어 있은 듯 보인다. 윤동주는 일찍부터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길 내지 향내적(向內的) 정신 자세를 가진 시인이었다. 천성적 본성으로 시인의 기질을 타고났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 까닭에 「새로운 길」은 향내적으로 본질이란 범주로 자신을 묻고 있는 경우이다

사람은 고유의 본질이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 본질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본질적인 것을 철저히 실현하는 것이 삶의 과정과 목표가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실존적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연전 시절 하숙을 하면서 매달 『문장』, 『인문평론』을 사서 읽는 문학에 대한 열성과 방학 때에는 『시전(詩傳)』을 배우던 그 시절에 쓰인 「자화상」을 한번 살펴보자.

   자화상(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 9월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시인됨을 자신의 것으로 육화시킨 후에 쓰인 「자화상」은 그동안 자신이 괴로워하고 갈등을 한 순간들과는 결별을 하려는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는 길은 자아가 귀속된 생세계를 벗어나서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를 찾고 싶은 시인의 심정적 갈등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전 자신과, 이후 자신의 변모양상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순연한 자기 관조의 정화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의 외딴 우물가를 찾은 시인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데 우물 속 자신의 그림자는 ‘추억처럼’ 거기 머물러 있다. 여기서 추억처럼 거기 머물러 있다고 하는 것은 화자인 사나이가 이미 의식의 냉엄한 거리 유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객관화란 서정적 주체의 통합작용에 의해 시적 질서의 조화 속에 용해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추억처럼 머물러 있는 사나이’란 표현은 또 다른 자기발견을 예비하는 시적 자아의 과거주의와 결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육화시킨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여태껏 자신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은 과거로써, 단연코 결별하고 새로운 자아로 살아가겠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시간적 배경 또한 순환적 자연이 몰락하는 계절인 가을이다. 이렇게 볼 때, 「자화상」은 자신이 받아들인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확고하게 다짐한 윤동주의 변화된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음을 인지할 수 있다.

「자화상」은 시인이 인간완성의 길을 걷기 위해서 우물 속에 비친 세계와 결별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자신을 탐구하려는 자세를 담고 있다. 가장 참된 자기 인생의 방향과 자기 내심을 표현하면서 이성의 성찰과 가을의 고독과 함께 인간 본연의 모습을 추억처럼 드러내면서 자기의 삶을 이루고자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이 시인의 삶을 살기로 결심을 한 윤동주이지만 그 역시 실존적 사람이기에 때때로 순간적인 고독과 좌절로 번민하게 된다. 윤동주는 1939년 9월 이래 내내 절필하다가 1940년 12월에 가서야 팔복(八福), 위로(慰勞), 병원(病院)이라는 단지 세 편의 시를 써낸다. 절필은 시인됨에 대한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윤동주는 그가 몸소 겪고 있던 처참하고 치욕적인 일제강점기 상황에 절망한 것이다.

시인으로서 이 어려운 시대 상황에 한 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민족의 언어와 글을 갈고 닦을 것을 필생의 목표로 정한 시인이며 거기에 온 심령을 기울여 온 문화인이었다. 그런데 이미 민족의 말을 빼앗기고 글을 빼앗긴 데다가, 이제는 일본식 성명 강요로 겨우 남은 성과 이름마저 빼앗기고 있었다.

채찍 밑에 엎드린 어린 양(羊)처럼 또는 노예처럼, 그 잔인하고 사악한 폭력에 굴복하고 있는 무력한 자신과 자신의 동족을 보면서 그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우선 그런 상황에 절망했고, 또 나아가 인간이 인간을 그토록 처참하게 능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묵인하고 있어야 하는 시인이란 존재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에서 윤동주는 아무리 현실이 이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고 자각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 바로 그것이고, 그것은 바로 시인으로 사는 것으로 자기 마음속 성품으로 발견되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자화상」은 자연히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각오를 총체적으로 담는 내용이 되었다. 다음의 시「흰 그림자」를 한번 눈여겨보자.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검의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든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이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羊)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1942년 4월 14일

 「서시」를 통하여 확인하였듯이 윤동주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확고히 한 것을 위의 시「흰 그림자」를 통하여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각이 늦었다는 것을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으로 표현하면서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괴로워하던 마음들을 정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괴로움을 겪는 주체 역시 ‘나’로서, 그가 얼마나 자신 속에 있는 분열된 자아와 갈등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

연전 졸업 후 윤동주는 1942년 일본에 건너가 4월 2일에 릿쿄대학(立敎大學) 문학부 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 무렵에 쓴 시가 「흰 그림자」다.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는 자기 이해를 구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 삶의 의미, 자기의 정체성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지난 일들의 ‘발자취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묻고 있다.

괴로워하든 수많은 일을 다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고 모든 시름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평온한 상태로 깨달음을 이룬 것이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이것은 분명 시인의 삶과는 다른 반대편에서 나타나는 삶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이 뒷골목을 돌아 내방으로 돌아와서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고 한다. 이것은 유교에서 죽음을 자기 집에 돌아가는 것(視死如歸)과 같이 여기듯이 시인의 본분으로 순리적 삶을 살겠다는 생각으로 볼 수 있다.

이 것은 윤동주 자신의 내면적 성숙의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든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괴로웠던 마음들을 돌려보내는 곳은 고장이다. 그 ‘고장’으로 예전의 부정적인 자신을 돌려보내는 것이다. 여기서 윤동주가 괴로웠던 자신을 고장으로 돌려보낸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예전에 괴로워했던 자신의 모습은 본래적 모습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윤동주가 비로소 자신이 이제껏 괴로워했던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어느 정도 극복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윤동주는 자기의 작품을 통해 내면의 의식이나 의지 등을 반복적으로 나타내었으며, 내면적 성찰의 과정과 편린(片鱗)들을 삶의 과정과 일치시켜 작품으로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윤동주의 시에서 길의 표상은 시인으로서 인간적인 그의 삶과 사상, 그리고 문학에 대한 지향성(指向性)으로 나타난다. 윤동주는 이러한 과정에서 시인의 길을 가고자 자각(自覺)을 하였으며, 그의 자각에 따라 시인의 삶을 살고자 하지만, 그에 따른 생활의 어려움과 부친의 반대 등, 실존적 삶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逢着)해왔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여 본질적 삶에 대한 의의를 찾고, 현실수용을 통하여 자신이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인식(認識)한다. 또한, 자기가 걸어갈 자신에 대한 길 찾기와 시인으로서 삶의 의미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현실적으로 당시의 어려운 세상을 구하기에는 시인의 힘이 미약(微弱)함을 깨닫고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모든 여건을 극복하고 끝까지 지조(志操)를 지켜 시인이란 천명과 최초의 악수를 나누는데 다음의 시에서 알 수 있다.

   쉽게 씌어진 시(詩)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ㅡ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년 6월 3일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라고 두 번씩이나 표현한 데서 일제가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빌미로 일제는 윤동주 시인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였다고 본다. 그리하여 공식적으로는 윤동주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쉽게 씌어진 시」에는 시인의 길을 ‘천명(天命)’이란 시어로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시인의 시인됨은 하늘의 명령이며 그것은 또한 극도로 민감한 상처의 능력이기에 ‘슬픈 천명’인 것이다. 윤동주는 슬픔에 민감한 자신의 기질적 우수를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한 줄 시를 적어 볼까’라고, 수명(受命)의 결연한 의지를 은밀히 토로하고 있다.

윤동주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이 시인이라는 슬픈 천명을 지녔음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앞의 「흰 그림자」를 논하는 자리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그는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이라고 하면서 그 깨달은 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시공간은 황혼이 짙어 가는 길과 황혼이 물드는 방이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알게 모르게 선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한 사람으로서 지닌 천명은 시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외로운 현실 상황에서 시인이란 슬픈 천명에 따라 시를 적어본다는 구절에는 부모가 보내준 학비로 공부하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회의가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시인으로 살면서 겪는 생활의 어려움이다. 시인으로 시는 쉽게 씌어 지는데 인생이 살기 어려운 것은 도덕적, 정신적 자기실현에 대한 현실 상황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으로 혼자 침전하는 외로운 현실 상황 아래서도 신념과 의지로 현실을 수용하려는 새로운 각오를 잘 나타내고 있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는 시인으로 끝까지 지조를 지켜 삶을 살고자 하였던 반성적 나와 현재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현실적 나의 합의로 천명을 받아들이면서 악수를 교환한 것이다. 「서시」에서의 나한테 주어진 길을 가겠다는 다짐을 거쳐서 마지막 시인 「쉽게 씌어진 시」에 이르러 시인이란 천명을 받들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민족과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한 윤동주는 민족의 위대한 시인으로 사명감을 자각하지만, 시인이 현실을 직접 움직이는 자가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데 괴로움을 안고 개인적 번민의 해방과 시인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날도 매한가지지만 시인으로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최소한의 의식주도 보장이 되지 않는 힘든 길이다. 윤동주가 실존적 인간의 고뇌와 더불어 이러한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갈등에도 괴로워하면서 힘든 삶을 살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자각한 윤동주는 그런 모든 어려움을 마다치 않고 마침내 자기가 가야만 하는 길을 따라 천성적으로 타고난 본성을 갈고 닦아 시인이란 꿈을 이루게 된다.

3. 맺음말
윤동주 시인의 길을 알아보기 위하여 부족하지만 다섯 작품을 선택하여 함축적 시 읽기를 해보았다. 그 결과 윤동주의 시작품들은 자기가 이루고자하는 시인이라는 꿈을 길로 나타내었으며 힘든 도정(道程)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윤동주는 어떤 한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시라는 예술작품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부단히 완성하고자 한 진정한 시인이었다. 이러한 윤동주 시인의 삶에 근거하여 전술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시」를 통해서는 윤동주가 사명감으로 주어진 시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결심을 다지고 있으며 이후의 시를 통해서도 그러한 다짐이 실천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이러한 도정에서 생기는 삶에 대한 갈등과 그에 따른 극복 과정을 담고 있는 「새로운 길」, 「자화상」, 「흰 그림자」 등에서는 시인의 삶을 살고자 한 의지가 잘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쉽게 씌어진 시」에서는 다른 어느 시작품보다도 자신이 살아온 삶의 길에 대한 수용이 강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천명에 따라 자기 내면의 결정과 의지로,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에서 쉽게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의 경지에 도달하였음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실존적 자기 초월의 국면에서 천명으로서의 삶인 시인과 최초의 악수를 교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윤동주의 시에는 항상 부끄럽고, 괴롭고, 슬픈 밤의 캄캄한 부정적인 인간의 실존이 지니는 보편적인 것, 이러한 삶에 대한 갈등이 많이 드러나 있으며 동시에 이를 잘 극복하고 있었다. 참 시인으로서 인생의 길을 밟아 온 윤동주의 문학 세계는 시 창작으로 부단 없는 자기완성을 추구하면서 자아를 찾아 나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사족(蛇足)으로 윤동주 시인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새로운 길」을 썼듯이 우리 학생들도 ‘나에게 주어진 길’ 직업으로서 진로가 무엇인지를 찾고 이를 이루기 위하여 윤동주 시인처럼 실존적 갈등을 잘 극복하였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