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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오광명 디자인엔지니어링학과 교수
  • 입력 2018.10.28 14:28

[교수칼럼] 사람 중심의 대학

내가 디자인학과에 진학했던 것은 수학 과학을 주 20시간 이상 공부해야 했던 고등학교를 벗어난 반항심 같은 것이었다. 애초에 디자인에는 관심이 없어서 전과를 결심할 즈음에 우연히 보았던 빅터 파파넥 (victor papanek)의 책은 디자인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 보다 디자인을 올바르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 (Design for the real world). 디자인을 하고 디자인을 가르쳤던 그는 디자인이야 말로 그럴듯한 겉모습으로 과소비를 조장하고 자원을 낭비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첨병이자 사회악이라고 주장하였다. 제 3세계를 위한 디자인에 평생을 바쳤던 그의 이런 외침과 노력의 영향이었는지는 몰라도, 21세기는 유니버설 디자인 (universal design), 지속가능 디자인 (sustainable design) 등 인간 중심의 디자인이 철학이자 트랜드가 되었다.
불행이도 사람 중심과 인간 본위의 철학이 필요한 곳은 디자인분야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가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중국의 심천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킬 인재를 키우는 이 시대에 우리는 자본이 맘껏 부릴 수 있는 머슴을 (‘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이라고 읽는다) 키우는 대학이 되어야 했다. 평가를 잘 받고 지원(돈)을 잘 받기 위한 일이라 했다. 나 또한 ‘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키울 적임자로 이 학교에 오게 되었으므로 방관적으로 졸렬한 비평만 할 수는 없는 처지이다. 그래서 더 애착을 갖고 어떻게 해야 내가 다니는 이 직장이 사람 중심의 대학이 될 수 있을까 질문들을 던져본다.
방문자들의 시선을 위해 오랜 건물에 그럴듯한 금속 패널을 붙이기는 쉬운데, 내 학생들이 외투를 입어야만 일을 볼 수 있는 한겨울 화장실 난방공사가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저가 가르치고 졸업시킨 학생들을 조교며 선생으로 2년간 부리다 다시 경계의 밖으로 밀어내는 이곳은 사람 내음이 나는 곳인가. 인생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2년을 충심으로 일했을 그들에게 우리가 준 것은 무엇인가. 시키는 일을 다 하고서도 낙엽처럼 쌓이는 박탈감은 왜 늘 새끼교수(조교수)들의 것인가. 늦게까지 켜져 있는 대학본부의 불빛은 교직원들의 자발적 부지런함 때문인가 보직자들의 빈곤한 철학 때문인가.
누군가는 고혈을 짜내야만 가까스로 돌아가는 대학은 굳이 이런저런 억울한(?) 대학평가가 아니어도 도태된다. 사람 냄새도 날 리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기억은 언제나 돈이 문제고 예산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교육도, 급여도, 시설도, 모든 문제가 예산 때문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총장이 아니라 펀드매니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