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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부분-가작] 이제 와서 운다고 해도
김효빈(인문학부.16) | 승인 2018.10.28 14:22

바스락, 바스락.

지금도 한밤중에 조용한 방 안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어릴 적에 고양이를 길렀다. 이제는 어떤 이름이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새끼 고양이일 때부터 십 년인지 십오 년인지 가량을 같이 산 녀석은 점점 쇠약해졌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 보아도 노환이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녀석이 마루에 드러누워 새액새액 하는 힘겨운 숨소리를 몰아쉬며 입과 코에서 콧물인지 토사물인지 모를 거품을 뿜어내고 있기에 아, 이 녀석 이제 갈 때가 되었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준비를 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거실 마루에 시체가 되어 방치되어있을 고양이를 생각하며 우울한 기분으로 현관문을 열자 고양이를 키우는 집 특유의 꼬릿한 냄새와 함께 토사물 범벅이 되어 아직도 숨을 몰아쉬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키우던 고양이가 아직 살아있어 반가웠던가, 그렇지 않으면 아직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가. 지금에 와서는 애매해서 잘 떠오르지 않지만, 단지 녀석의 입가에서 흐른 누렇고 뜨뜻미지근한 토사물을 닦아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만의 무게만이 묵직하게 뱃속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다음날이었다. 아직도 녀석은 거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힘겹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날은 휴일이라 아침부터 계속해서 고양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언가 결심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문득 떠오른 듯이, 나는 며칠 전에 시켜 먹은 치킨을 포장해온 커다란 비닐봉지를 쓰레기통에서 끄집어냈다. 거실에 드러누워 있던 고양이를 비닐봉지에 담아 모종삽을 챙겨 집에서 조금 떨어진 화단으로 나갔다.

겨울이었다. 쌀쌀한 아침 공기가 손끝을 스치며 모종삽과 비닐을 쥔 손이 시려왔고, 비닐 끈을 통해 전해지는 고양이의 묵직한 무게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적당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 챙겨온 모종삽으로 땅을 팠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흙은 모종삽을 든 어린아이의 손으로는 파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구덩이를 깊숙이 팠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아무튼 적당한 깊이까지 흙을 파내고, 그 구덩이에 비닐에 둘러싸인 고양이를 내려놓았다. 녀석이 아직도 토사물을 입에 문 채 새액새액,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나는 확인했다. 녀석이 숨 쉴 때마다 비닐봉지가 바스락대며 자글자글 구겨지는 소리가 귓전에 울려 소름이 끼쳤다. 나는 구덩이를 흙으로 덮어서 메우며 속으로 되뇌었다.

죽기 힘들지? 응? 죽기 너무 힘들지?

흙 속에 매몰되는 동안에도 비닐봉지에서는 자글자글,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시간을 들여 구덩이를 메우고, 봉긋하게 만들어진 흙더미를 구태여 모종삽으로 토닥토닥 두드리며 다졌던 것은.

지금도 가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떠오른다. 산 채로 흙구덩이에 파묻혀서 힘겹게 숨을 쉬고 있던 고양이의 모습이. 어쩌면, 녀석은 지금도 그 구덩이 밑에서 비닐봉지에 둘둘 말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스락, 바스락.

 

조모의 부고를 들은 것은 찌는 듯한 여름이었다.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여행지를 알아보던 중 갑작스레 걸려온 연락에 급히 열차표를 구해 고향에 내려갈 채비를 했다. 야간열차 안의 승객들은 대부분이 자고 있거나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객실의 침묵을 달리는 열차의 진동과 소음이 오히려 더 커다란 정적으로 빚어내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달도 없이 어두운 밤의 장막에 뒤덮여, 언제까지고 거무스름한 풍경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차창에 흐릿하게 반사되어 보이는 자신의 얼빠진 얼굴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언제까지 열차의 진동에 몸을 맡기고 있어야 하는 걸까. 냉방은 켜져 있었지만, 온도가 애매해서 미지근하게 식은땀에 옷이 피부에 달라붙어 불쾌했다.

조모는 일찍 조부를 여의고도 혼자 몸으로 자식들을 길러 도시로 상경 보낸 어머니였다. 자식들이 모두들 도시에 정착하여 장성하자 조모는 시골에서 홀로 늙어갔다. 그 시간들이 행복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가장 최근에 본 조모의 모습은 고혈압과 당뇨로 거동조차 불편해져 병석에 몸져누운 모습이었다. 몸에는 여러 가닥의 관이 연결되어있고, 숨을 쉬기 위해 흉곽과 복근을 들어 올리는 일조차 힘에 부쳐 보였다. 거기에 가벼운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조모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무서웠다. 그건, 마치 조모가 손가락 끝이라도 잘못 대었다가는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라도 언젠가는 부서지고, 망가져버린다. 하지만 나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내 탓으로 망가트려버렸다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이. 그것은 망가질 때가 되어서, 망가질 만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에 손을 대는 것이 자신일 필요는 없다.

문득 조모가 정정하실 때 그녀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건 분명 이런 이야기였다. 사람의 첫인상은 사람의 많은 부분을 단정 짓게 만든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말이다. 첫인상이 좋은 사람은 그 사람이 실제로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인상이 나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싫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조모의 인상에 대한 지론은 삶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삶에 대한 첫인상이 좋다면 첫인상이 좋은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듯, 삶 역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 삶이라는 것이 실제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니 젊을 때는 우선 고기를 많이 먹어라. 맛있는 고기를 먹으면 대개의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낀다. 어릴 때 행복감을 많이 느끼면 삶이라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인상을 갖게 되고, 밝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갈 여지가 많아진다. 그러니 고기다. 왜 그러느냐? 고기를 먹는 손이 굼뜨다. 사양 말고 많이 먹어라.

뭐, 인상이라는 건 첫 5초 만에 결정된다고 하니, 삶에 대한 첫인상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질을 통과해서 세상에 나왔을 때 자궁 속과는 다른 외부세계의 추위와, 부드러운 살에 맞닿는 쓰라린 촉감, 그리고 수많은 소음과 소독약 냄새로 가득 찬 세상에 내던져진 시점에서 다짜고짜 울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보아 이미 결정 나 버린 것 같지만 말이다. 다만, 자신을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의 온기가 그 모든 것을 무마할 정도로 따스한 것인지는, 어머니가 없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아니,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다행인 게 아닐까? 불쾌한 것으로 점철된 세상에 대한 나쁜 인상을 고쳐먹게 해줄 정도의, 커다란 따스함이 어딘가에는 존재하리라 생각, 혹은 착각을 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추구할 수 있는 만큼 말이다.

그렇게 몽롱한 정신으로 흐릿한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열차는 달도 없는 여름밤의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먼저 와있던 상복차림의 친지들이 맞아주었다. 친지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누나와 자형이 있는 쪽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장례는 단출하면서도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그곳에 모인 친지들은 숙연하기는 했지만 침통한 느낌은 없었다. 조모가 말년에 몸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건강하게 장수했고, 특별한 추태도 없이, 임종 때 자리를 지킨 친지들의 말로는 잠들듯 가셨기 때문에, 아무도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분명 호상이었으리라. 그래서일까. 장례지도사의 지시에 따라 친지들이 관을 향해 곡을 하며 비통해하는 행동들이 마치 잘 짜여진 연극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조모의 관은 매장 터로 운구되었다. 한여름의 양지바른 곳임에도 깊숙이 파인 흙구덩이 속에서는 한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이제부터 조모는 영영 이 서늘한 곳에 눕혀지는 것일까. 새카만 흙으로 층층이 덮여가는 조모의 오동나무 관을 보며, 조모가 가엾다고 생각했다.

좀 더, 조모와 함께 고기를 많이 먹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에는 미치지 않는 작은 넋두리가 흙을 퍼 나르는 소리와 함께 구덩이에 차곡차곡 묻혀갔다.

 

장례가 끝나고서 나의 누이는 아버지의 집에서 며칠일 묵기로 했다. 자형은 일 때문에 먼저 올라가기로 했지만, 임신한 지 얼마 안 된 아내를 두고 가는 게 조금 못내 아쉬운 듯했다.

나는 집 앞 골목에서 선선한 밤공기를 쇠며 여행을 떠난 친구들과 여자친구에게 통화를 했다. 친구들은 바닷가의 피서지에서 잘들 놀고 있는 듯 했지만, 원래 일행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던 그녀는 그들과 동행하지 않고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너도 같이 갔어도 괜찮았는데.”

“딱히 네가 상을 맞았다고 배려하는 건 아니야. 너 없이 여행을 가서 무슨 재미가 있겠니? 그리고 나처럼 음침한 여자애 한 명 따라간다고 걔들이 뭐가 좋겠어.”

“너 하나도 안 음침해.”

“말이라도 고맙네.”

나는 그녀와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부족해질 때까지 대화를 계속하다 밤이 깊어짐에 따라 통화로나마 작별을 하고서 집 대문에 들어섰다.

나의 누이는 긴 장례절차를 지내는 데 지쳤는지 소파에 기대어 곤히 잠들어 있었다. 누이는 집에서 편하게 입는 짧은 팬츠와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한여름의 무더위에 그녀의 피부에는 몽글몽글 땀이 배어 나와 있었다. 얼마 전에 누이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 배가 부르지 않아 잘록한 누이의 아랫배를 보며, 방에 들어가서 편히 자도록 깨워야 하는지 고민했다. 새근새근하는 숨소리에 맞춰 그녀의 가슴께에 있는 물방울 모양의 풍만한 융기가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는 모습이 보였다. 멍하니 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속에서 야릇한 감정이 피어나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며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를 떴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자신의 누이를 보고 흥분을 하다니, 차오르는 죄악감에 짓눌리며 나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한밤중이라고 하기에는 늦은 새벽녘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흠칫 놀라며 손을 속옷 안으로 밀어 넣어 보자, 뜨뜻미지근하고 질척한 액체가 묻어나왔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좀처럼 몽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밤이 찾아온 것 자체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욱 자신을 소스라치게 한 것은, 꿈속에서 자신과 음란한 행위를 한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의 누이였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좁고 긴 동굴을 지났다. 빛이 보이는 출구로 나가자 동굴이라고 느낀 통로는 누이의 질이었다. 자신의 몸은 구멍을 거의 다 빠져나왔는데, 페니스만이 누이의 질과 하나가 된 것처럼 빠져나오지 않았다. 아직 채 떨어지지 않은 탯줄이 배에 감겨 있는데, 몸이 점점 커지고, 누이의 질 속에서 흥분하는 듯한 페니스도 몸과 함께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누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도대체 내 안에 어떤 귀축 같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지 망연하게 고민하다, 이것은 그저 악몽의 한 부류라고 치부하기로 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이불을 개키자 한여름의 더위에 배어 나온 눅진한 땀이 새벽 공기에 식어 불쾌감을 부채질했다.

 

조모의 장례와 그 수습이 대강 끝나갈 즈음, 나는 본가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내 자취방이 있는 도시로 서두르듯 올라가기로 했다. 집안 어른들이나 친지들과 그리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함께 있어 봐야 명확하지도 않은 장래에 대한 질문을 판에 박힌듯한 대답으로 얼버무려야 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간밤의 꿈 때문인지 본의 아니게 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머쓱해진 것도 한몫했다.

 

역에서 열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나는 발차 시각이 표시되는 전광판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멀리서 들려오는 무언가의 집회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평소에 취미로 공부하고 있던 외국어로 된 문고본 서적을 뒤적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던가? 다수의 군중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지목해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 걸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가 입에 담은 말은 내가 읽고 있던 책에 쓰인 나라의 말과 같았다. 말이 통하는 상대를 찾은 반가움인지 걸인은 꾀죄죄한 두 손을 내 어깨 위에 덥석 올려놓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해서 손을 뿌리칠 틈도 없이 그는 내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국에 와서 사기를 당해 사업에 실패한 일, 염전에 강제로 끌려가서 온갖 고초를 겪은 일, 탈출을 감행하다 구타를 당해 상처를 입은 흔적.

“이제 9000원만 더 있으면 서울로 올라갈 수 있어. 서울에만 가면 거기 사업 친구도 있고 먹고 살길이 있으니까 그때 내가 꼭…….”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다만, 나 자신도 타인에게 도움을 바라고, 도움을 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어째서 내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나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나도 언제든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의 체취가 이렇게 고약할 수 있을까?’, ‘왜 채 아물지도 않은 그 흉측한 상처를 자꾸만 내 눈앞에 들이미는 걸까?’, ‘빨리 내 어깨에서 손을 떼줬으면.’ 따위의 생각만 드는 것일까?

“현금이 없습니다. 승차권과 카드밖에 없습니다.”

서툰 외국어로 그렇게 둘러대고 있을 때, 때마침 도착한 열차의 승차 안내 방송이 나오기에 그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른 걸음으로 승강장쪽을 향해 걸어가는 내게, 그는 노려보는듯한 시선으로 말했다.

“형씨, 정말로 돈 없어?”

“정말로 없습니다.”

서둘러 승강장으로 온 나는 좌석을 확인하기 위해 지갑을 펼쳐 들었다. 그 안에는 승차권과 카드, 신분증과 함께 몇 장인가의 1만 원권 지폐가 들어있다. 나는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열차에 탔다.

 

나는 여자친구가 근무하는 동네 카페에서 그녀의 근무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연이다. 나와 동갑내기인 연은 한여름인데도 소매가 팔 끝까지 내려오는 긴 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 까만 앞치마까지 걸치고 있었는데, 다행히 카페 안은 냉방 덕분에 조금 서늘할 정도여서 그녀에게서는 조금도 더워 보이는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연이 어째서 한여름에도 답답해 보이는 긴 소매 셔츠를 입고 있는지 알고 있다. 연의 호리호리한 손목에는 커터칼로 그은듯한 흔적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싹싹한 태도로 손님을 응대하는 그녀의 미소짓는 얼굴만을 보아서는 그 아래에 어떤 어두운 일면을 숨기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녀가 내려준 커피가 담긴 잔을 입으로 가져가 기울였다. 나는 커피 맛을 모른다. 그래서인지 연이 내려주는 커피는 항상 썼다. 그런 내게 연은 웃으며 내가 커피 맛을 모를 뿐이라며, 커피가 쓰다면 아직 인생이 단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나는 마시던 커피를 마지막까지 들이키며 카페의 벽면에 걸린 골동품 시계로 눈을 돌렸다.

 

“네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밤거리를 걸으며 연이 말했다. 먼발치에서부터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머플러를 개조한 오토바이의 엔진소리가 가까워지다 다시 멀어져갔다.

“하지만, 왜 그 일이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걸까? 내가 거짓말을 해서 그런 걸까?”

“그러면, 사실대로 말하고 9000원을 주게?”

“그건 아니지만……. 왜, 나도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청하기도 하잖아.”

“너는 너한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 마다 다 9000원씩 줄 거야? 네가 무슨 갑부라도 되니? 재벌 2세라도 돼?”

연은 일을 마치면서 가게에서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에 담아온 커피를 홀짝홀짝 들이켜며 내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거기에 나는 변명하듯 대답한다.

“나는 어디서 어려운 사람들끼리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면 그 말에 동의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하거나, 구세군 모금함이 있으면 기꺼이 헌금을 넣기도 하고.”

연은 잠자코 말을 듣고 있었다.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불나방과 밤벌레들이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드는 것이 보인다. 나는 말을 이어서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모금한 돈은, 어딘지 모르게 두루뭉술해서 그 돈이 어디로 가고 어떻게 쓰일지 잘 모르는 거잖아? 그런데 그 노숙자한테 돈을 주는 건, 어쩌면 그 한 번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 노숙자가 들이민 현실을 보고 불쾌하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어. 그런 건 어쩐지…….”

“이중적이라고?”

“그래, 이중적인 것 같아. 그래서인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 부끄럽다는 감정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속이 간질간질하면서 좀 더 아프고, 갑갑해져. 이렇게 말하면 어떤 느낌인지 전해지려나?”

“그럼, 다시 한번 그때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그 노숙자한테 9000원을 건네줄래? 그리고 사업에 실패해서 상심이 크셨겠어요, 강제로 노동을 당해서 많이 힘드셨죠? 그 상처 많이 아팠겠어요. 하고 끌어안아 줄 수 있겠어?”

“그건……. 그 상황을 다시 마주해보지 않으면 잘 모르려나…….”

“하여간, 사람이 착한건지 멍청한건지, 그리고 말이지…….”

연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이지 않아?”

나는 정론인지 역설인지 분간하기 곤란한 그녀의 말에 답할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연은 이제 바닥밖에 남지 않은 커피를 끝까지 들이키며 길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두 사람의 침묵 사이로 한밤의 고요한 정적이 비집고 들어온다.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레몬 빛으로 반짝이는 별들이 눈동자에 비쳐오고, 귓전에는 여름밤에 지저귀는 밤벌레 소리가 맴돈다.

“그런데 말이야…….”

연이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사실 독이야. 커피라는 식물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만든 독. 그런데 다들 그 독을 맛있다는 듯이 마시잖아? 게네들은 열심히 몸 사리려고 만든 독인데 말이야. 가엾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작게 끄덕이며 응, 하고 대답한다.

“일반적인 농도로 추출된 커피 수십 잔, 어라, 십수 잔인가? 아무튼, 그만큼을 마시면 치사량이라더라. 아니, 그만큼 마시면 먼저 배가 터져서 죽으려나?”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도 떨떠름하게 웃으며 응했다. 그녀는 이어서 농담처럼 말한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다 죽으면, 어쩐지 편하게 잠들기는 글렀을 것 같다. 그치?”

 

“오늘 별로 집중하지 못했지?”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던 연은 그렇게 말했다.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나는 정곡을 찔린 듯 등골이 서늘해졌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평소보다 더 격렬하기는 했는데, 내 생각은 별로 안 하는 것 같았는걸.”

나는 태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 그녀에게 다가가 새겨진 흉터로 가득한 왼팔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아니야, 네 생각밖에 안 해.”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머릿속 한켠에는 마치 백지 위의 잉크 자국처럼, 또는 가시처럼, 꿈속에서 본 누이의 모습이 깊숙이 박혀있었다. 어째서일까. 지금 그런 것이 왜 생각난 것일까. 혼란스러운 사고를 정리하느라 연의 팔에 얼굴을 포갠 채 잠깐동안 멍하니 있었더니, 연은 나의 얼굴을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그래, 내 생각만 해줘야 해.’라며 귓가에 속삭인다.

“사실은, 누나 생각을 조금 했어.”

그녀의 품에 안긴 채 나는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임신했다고, 할머니한테 손주를 보여드릴 수 있겠다며 좋아했었는데…….”

연은 나를 품에 끌어안았던 팔을 풀어주며 내게 물어왔다.

“이런 걸 물어보는 건 미안하지만,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이제 할머니를 뵐 수 없다는 게 조금 뭉클하기는 하지만, 슬프다기보다도, 노령이셨으니까. 가실 때가 되어서 가셨다는 느낌이 강한 것 같아. 글쎄 할머니는 자주 뵌 적이 없어서 먼 친척이라는 느낌이지만, 할머니랑 조금 더 친밀했더라면 다르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

연은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커피색의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잠깐동안, 심장의 고동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거리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오갔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는 듯했다. 이윽고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옛날부터 엄마가 날 싫어했으니까…….”

나는 알고 있었다. 연이 어릴 적부터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아온 사실을. 서로 어머니의 따스함을 모른다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어머니가 없는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지 못할 것 이라 생각하는 그녀의 상처다. 어머니 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나와, 어머니가 없었으면 하는 그녀 사이의 간극은, 얼핏 비슷해 보이면서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의 따스함을 어디선가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는?

“사실은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었어.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스무 살이 되는 생일날 새벽에 편의점에서 커터칼을 사서 손목을 그었어. 그런데 아무리 그어도 죽지 않는 거야. 눈물도 안 나더라. 그렇게 스무 살을 넘기고 이제는 서른 살까지만 사는 게 삶의 목표가 되었어.”

나는 말 없이 연을 껴안았다. 연은 내 어깨에 기대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 이렇게 생각하겠지. 마흔까지만 살자고.”

그게 너무 싫어——. 라고, 연은 끊길듯한 작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내 스무 살 생일은 정말 추운 겨울이었어. 그날 입고간 외투는 마음에 든 옷이었거든. 그래서 손목에 칼을 대기 전에 잘 개어서 골목 계단의 난간에 걸어뒀어. 그리고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손목을 그었지. 처음에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피는 생각보다 금방 멎는 거야. 그래서 몇 번이고 손목을 그었지. 그러다가 깨달았어. 커터칼로는, 사람 힘줄을 끊기 힘들겠구나……. 그걸 깨달을 때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던 모양이야. 몸은 추위에 식어서 싸늘하고, 발밑에는 굳어가는 피가 비가 그친 다음 날의 지면처럼 웅덩이져있었어. 아무튼, 너무 춥더라. 과다출혈로 죽는 게 아니라 저체온증으로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야.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는 생각하고 그대로 있었지.

새벽인데도 지나가는 사람은 드문드문 있었어. 사람들이라는 게, 어쩌면 그렇게 무관심한지, 대부분 눈치도 못 채고 지나가더라. 가끔 나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람이 피를 흘리면서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는 걸 보더니 욕지거리를 하거나, 바닥에 침을 뱉고는 가버리더라고. 응? 그 사람들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그냥, 너무 춥더라. 그때 네가 와주지 않았더라면…….”

좁은 침대위에 나란히 누워서 이야기 하던 그녀는 졸려오기 시작했는지 크게 하품을 하고는 조금 수줍은듯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줄곧 무서웠어.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게. 내가 엄마가 된다면, 아이에게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럴 바에야…….”

말을 멈춘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니, 이미 잠이 들었는지 새근거리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나도 눈을 감는다. 그러자 곧 수마가 덮쳐온다.

몽롱한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연은 웃으며 서른 살을 맞이할 수 있는 상대보다, 서른 살에 함께 죽어줄 수 있는 상대를 더 갈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여름밤의 숨이 막혀오는 공기는 마치 이 방 안이 조모의 오동나무 관짝 안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밤벌레가 우는 소리는 삽으로 축축한 흙을 파내어 옮기는 듯한 소리로 들렸고, 그 소리는 곧 바스락대는 소리로 바뀌더니, 조모의 오동나무 관짝 너머로 새액새액 하고 몰아쉬는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우리 내일 고기라도 먹으러 가지 않을래?”

아침햇살이 밝고 새의 지저귐이 들려 온 지도 한참이 지나 어느덧 해가 중천에 오르려고 할 때 즈음까지도 한껏 게으름을 부리고 있던 나는, 드르륵드르륵하고 경 배전된 커피를 핸드밀로 분쇄하는 경쾌한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캐미솔 위에 조금 품이 넉넉한 와이셔츠를 걸친 러프한 차림으로 모닝—이미 모닝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아니지만—커피를 내리고 있던 연에게 불쑥 말을 건넨다. 그녀는 조금 뜻밖이라는 듯, 손에 들고 있던 커피 드립용 양철 주전자를 식탁 위의 아카시아 나무받침에 내려놓고 내 쪽을 바라보며 둥근 눈을 크게 깜빡인다.

“네가 먼저 어디를 가자고 하다니, 의외네.”

“그냥, 우리 같이 외식 한지도 오래됐잖아.”

연은 대답에 뜸을 들이듯이 드립 포트를 다시 집어 들고 드리퍼 위에 쌓여있는 커피 가루에 둥글게 물줄기를 내린다. 드리퍼 아래에 받쳐놓은 드립 서버에 검은색의 뜨거운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틈을 기다리지 못하고 말을 건넨다.

“연이 채식주의자였다는 기억은 없는데, 어디가 좋아? 경치 좋고 분위기도 좋은 자리에서 칼질할 수 있는 곳? 아니면 지글거리는 뜨거운 불판이 있는 곳?”

“네가 좋은 쪽이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음, 굳이 말하자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 아, 그리고 기왕이면 커피가 맛있는 곳이면 좋겠어.”

어느 쪽이려나. 배불리 먹으려면 집에서 먹는 게 가장 싸게 먹힐 테고, 커피는 연이 직접 내려주는 게 제일 맛있을 텐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저 먼 곳에서 푸른 하늘 아래로 낮게 깔린 구름이 이제 곧 비가 대지를 적실 시기가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때가 오면 이 여름의 무더위도 한물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겠지. 구름 아래로 제비 한 마리가 낮게, 빌딩 틈 사이를 누비며 날고 있었다.

 

작품설명

방학을 맞은 대학생인 나는 갑작스레 조모의 부고를 듣게 된다. 자신이 살아오며 겪어온 주변의 죽음들, 조모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고향으로 내려간 나는 조모의 장례에 참석해 친지들과 대면하고, 임신한 누이로부터 자신에게는 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욕망해버린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죽음을 갈망하던 자신의 연인과 함께 삶, 또는 죽음과 친해질 방법을 그려본다.

수상자 소감

먼저 인제대신문 창간 38주년을 축하합니다. 저의 글이 ‘제35회 인제문화상’ 소설부문 가작에 선정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글임에도 진지하게 글을 읽고 평가해주신 심사위원,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인제문화상 공모전의 주제는 정해져 있지 않고 자유로웠기에 저의 마음속에 있던 감정들을 좀 더 솔직하게 담아낸 글을 응모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이십여 년 가량의 저의 짧은 삶 속에서나마 느껴왔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과 저에게 결여되어 있던 것들, 그것들을 추구하는 마음들을 부족한 솜씨로나마 풀어내어 써보았습니다. 많은 글들이 작자의 심상을 나타내곤 하지만, 저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 부족한 글솜씨와는 별개로 조금 부끄럽고 머쓱하기도 합니다. ‘삶’이 있기 위해서는 우선 ‘탄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탄생’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죽음’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존재하는 기적적인 과정입니다. 그 과정 끝에 언젠가 ‘죽음’과 ‘이별’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버린 존재이고, 이제 와서 운다고 해도, 마치 엄마가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주는 것처럼 우리를 ‘죽음’이나 ‘이별’이라는 결말로부터 구원해 주거나, 이미 있어버린 ‘탄생’을 없었던 것으로 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살아가며, 소중한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같은 땅을 딛고, 같은 땅에서 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것들로 만들어져 가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 글에서 쓴 주제는 아직 제 안에서도 완결되지 않은 생각과 의문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형태가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이 상을 받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저를 지지해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학생들을 진심으로 지도해주시는 인문학부 교수님들과 우정을 다해주는 학우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심사평(황국명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

올해 산문부문 응모작이 크게 늘었다. 최근 몇 년간의 투고 편수나 작품의 수준과 비교해도 이번 응모작들이 월등하다. 이는 주관부처인 인제대신문사의 적극적인 문화상 운영과 교내의 다양한 스토리텔링 강좌, 그리고 대학생 문청(文靑)들의 뜨거운 열정이 빚어낸 결과라 할 것이다.
심사과정은 선자(選者)로서 행복한 고심의 순간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투고작 가운데 단편소설 「이제 와서 운다고 해도」와 장편소설 『경계에서』가 끝까지 서로 맞서 다투었다. 「이제 와서 운다고 해도」는 조모의 죽음, 입관, 매장이라는 치상과정을 배경에 두고 삶과 죽음, 모성의 부재 등을 화두로 삼는다. 이들 화두에 대한 작중인물 나의 심리적 거리는 철저하다. 작중인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이란 모두 타자의 죽음이며, 따라서 가까운 친족의 죽음일지라도 그 죽음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또 누이에 대한 인물의 원초적인 욕망은 부재하는 모성에 대한 그리움의 일단이지만, 애인 연의 자해가 보여주듯 자식을 학대하는 무서운 모성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경계에서』는 중국에서 중의학을 공부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소망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청년들의 일상을 다룬다. 이들은 꿇어앉은 낙타처럼 현실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꿈을 좇아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영화나 TV드라마의 보조출연자로 나날의 생계를 도모하지만, 주인공 또한 자기 생의 주연(主演)이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제 와서 운다고 해도」가 이야기의 얼개와 서술에서 노련미를 드러낸다면,  『경계에서』는 소재의 힘이 서사를 이끄는 동력이 된다. 단편과 장편을 직접 비교하기 어렵지만, 전자의 단편에서 소설적인 갈등 혹은 극적 긴장감이 부족하다 하겠고, 후자의 장편에서 문장의 밀도와 서술의 경제가 아쉽다. 이런 부족과 아쉬움 때문에 두 작품 모두 가작으로 뽑는다. 작가로서의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준 만큼 이들의 앞날에 거는 기대가 크다. 더불어 모든 응모자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김효빈(인문학부.16)  ijnews@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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