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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의 강간(간음)죄 신설에 찬성하며
박지현 공공인재학부 교수 | 승인 2018.09.27 17:50

미투운동의 연장선에서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비동의 강간(간음)죄 신설 법안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 입법운동은 최근의 미투운동으로 탄력을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충분히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것이다. 비동의 강간(간음)죄란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더라도 행위자가 상대방의 동의가 없음을 알면서도 성관계에 나아간 때를 처벌하자는 것이다. 이를 비동의 강간이라고도 하고 비동의 간음이라고도 부르는데 필자의 생각은 비동의 강간으로 칭하는 것이 종래의 강간과 간음의 개념 체계와 혼란 없이 조화를 이룰 것으로 생각한다(이하 비동의 강간으로 칭함).
현재의 법은 폭행이나 협박에 의한 성관계를 강간죄로 벌한다. 그러나 해석상 단순히 겁을 준 정도로는 처벌하지 않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인 때에만 처벌해 왔다. 그외에는 피해자가 미성년자, 심신미약자이거나 고용관계 등으로 보호감독을 받는 자인 경우에 한하여 위력이나 위계의 수단에 의한 경우 처벌하는 데 그쳤다.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정도에 그치는’ 폭행 또는 협박이나, 보통의 성인간에서의 위계나 위력의 행사에 의한 간음의 경우는 처벌 규정이 없었다. 많은 강간 피해자들이 그러한 법의 공백 때문에 가해자들이 눈앞에서 활보하는데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폭행이나 협박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탓으로(강간은 거의 늘 은밀한 곳에서 목격자나 증거물을 남기지 않고 이루어진다) 오히려 무고죄로 고소를 당해 2차, 3차의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비동의 강간죄는 그 공백을 메우는 입법이다. 행위자가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지 않았더라도 이 죄는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수사기관이나 피해자는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음을 증명할 필요도 없고 단지 행위자가 피해자의 비동의를 알고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면 된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만을 상상하거나 혹은 현실의 엄존하는 성적 불평등 또는 억압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싫으면 저항을 하지 왜 순순히 받아들여놓고 고소를 하는가’ 하고 억울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저항 자체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가령 육체적 힘의 차이 때문에, 관계나 지위에서 사회적 불이익을 당할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에, 가족이나 지인을 염려하였기 때문에 폭행이나 협박 같은 수단이 없었는데도 결국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당하곤 한다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가해자의 정서’라는 것을 극복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강간 신화’이다. 여성은 ‘싫어요’라고 말하면서 강간을 당하길 즐긴다는 신화, 좋아도 내숭을 떨며 거절하는 것을 매력으로 여긴다는 신화 말이다. 꽤 많은 성적 표현물들이 여성을 그렇게 묘사하여 남성들을 길들여왔다. 그렇게 믿는 것이 가해자에게 이익이 되었기 때문일 뿐 여성 또는 피해자들의 보편적 정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비동의 강간죄를 이미 가지고 있다. 우리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최근 스웨덴은 심지어 ‘Yes Means Yes Rule’을 법에 도입했다. 종래에는 ‘No Means No Rule’이라 불리는 규칙에 따랐다. 즉 ‘No’라고 할 때는 ‘No’라는, 거부의사가 표현된 때는 동의가 없는 것으로 본다는 규칙이었다. 이제 ‘Yes’라고 명백히 표현한 때만 동의가 있는 것이라고 보겠다는 것이다. 의사표현이 불분명한 때, 명시적 거부가 없었을 때, 묵시적 표현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주장할 때도 명백한 'Yes'는 없었으니 비동의로 간주하여 가해자가 처벌을 비껴가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다.
비동의 강간죄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주장을 하며 입법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정확히는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것일 수는 있다. 강간죄의 처벌범위를 넓히거나 비동의 강간 같은 죄를 새로이 두는 것은 ‘성행위를 강요받는 자’의 자유와 안전은 넓히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성을 향유하는 자’의 자유와 안전은 좁히는 것이다. ‘형법의 최소화’ 이념은 형법의 개입이 불필요한 영역에 대해 형법이 개입할 때 그를 비판하려는 이념이지 꼭 필요한 최소한의 개입을 주저하는 변명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동등한 지위에서 성적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가 오면 비동의 강간죄라는 범주는 더 이상 불필요한 것이 될 것이다.

박지현 공공인재학부 교수  ijnews@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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