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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인제대신문
  • 입력 2018.08.13 16:11

진보는 미답의 길로 내딛는 걸음

역사의 숙제를 방치하고 늘 가던 길만 가려고 하는 수구세력은 다행스럽게도 크게 위축되었다. 다수 국민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켜야할 옛것보다는 버려야할 낡은 것에 집착해온 집단에 ‘보수’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어려운데, 지켜야할 것을 새롭게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지금 정국의 진보의 움직임은 장래의 새로운 보수를 산출하는 움직임일 수도 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남북이 분단되고 친일의 청산은 ‘반공(反共)’에 묻힌 채 분단이 고착되면서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의 아류들에게는 붙여줄만한 번듯한 이름이 없다. ‘보수’가 가당키나 한가.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눈앞에 있다. 예단을 불허하는 상황이 이어지고는 있으나 우여곡절을 거치더라도 한반도에 평화의 움직임을 정착시킬 절호의 기회가 만들어졌다. 평화는 이루어내는 것임을 체감하는 것만 해도 큰 성과이다. 세부적인 경로가 어떻든 크게 보아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것과 더불어 한국전쟁의 정전협정 조인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종전을 선언하는 데서 실질적인 평화의 단초가 마련되어야 한다. 북미와 남북이 상호인정에 기초하여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상대를 끝내 믿을 수 없다는, 믿고 싶지 않다는 입장 아닌 입장을 고집하면서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정치세력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도 큰 틀의 합의가 구체적인 세부안들의 합의로까지 이어지기 어렵다는 뜻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그럴수록 합의를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관철하려는 결의가 부각되는 것이며 ‘신뢰’ 또한 만들어 쌓아가는 것이 되지 않는가.

늘 가던 길만 가는 것은 제자리걷기에 불과하고 미답(未踏)의 길로 내딛는 걸음만이 ‘진보’의 이름에 값한다. 천리 길도 제자리일 수 있고 한걸음도 진보일 수 있다. 지금 열리는 길은 남북 간에 두 번 열렸다 도로 닫혔던 길과도 다르다는 점에서 전인미답의 길이다. 신뢰의 문제를 두고 지나친 신중론을 펴는 입장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일단 걸음을 내딛고 나서야 보이는 역사의 전개를 운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