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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최한미(법학과 박사과정 수료)
  • 입력 2018.05.14 19:21

이상한 나라의 아이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그 옛날 호된 시집살이를 비유한 말이다.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듯한 이 표현을 생소하게 느끼는 젊은이들이라면, 연예인들의 고부갈등 상황을 보여주며 인기몰이 중인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려 보자. 아마도 위 표현이 말하는 바를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오늘 이 표현을 그 본래의 뜻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비유하고자 한다.

큰 가방을 메고 처음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말할 권리’를 잃는다. 초등 저학년까지는 주체할 수 없는 천진함에 아이다운 상큼한 언어들이 새어나오기도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그런 천진함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행동은 고학년다워야 하고, 각자의 넘치는 에너지는 오직 선행학습을 위해서만 발산해야 한다. ‘벙어리’의 고행이 시작된 것이다. 바로 이때가 ‘초4병’이라는 신조어가 가리키는 시기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이제 제 덩치만큼이나 훌쩍 커버린 생각주머니로 저마다의 판단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생각을 밖으로 내뱉는 것은 허락되지 않기에, 그 답답함을 욕설과 폭력으로 바꾸어 서로에게 쏟아낸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귀머거리’가 되어야만 한다. 쏟아내는 아이도, 받아내야 하는 아이도 생각주머니를 단단히 동여매고, 귀를 틀어막아야 한다. 행여 무심결에 그 욕설과 폭력의 의미를 곱씹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중2병’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최근 중학생들의 집단 폭행과 사이버 따돌림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 역시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듣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익힌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무언가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천진함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내뱉는 ‘실수’를 저지른 아이, 쏟아지는 욕설과 폭력을 자기 안에 깊이 새기는 ‘진지충’ 아이는 눈앞에서 서서히 죽어가지만,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이미 자신의 혀를 잃고, 귀를 잃고, 눈을 잃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프로그램의 이름을 빌리자면, ‘이상한 나라의 아이들’이 되었다.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이상하게 바꾸어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은 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않은 덕에 끝까지 살아남아 이상한 나라의‘권위있는’ 어른들이 된다. 그렇게 한 세대를 지나 더욱 공고해진 틀 속에서 자라날 아이들도 오로지 통제의 대상이 될 뿐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며느리의 이상한 나라’에 분노하는 듯하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 분노를 우리 ‘아이들의 이상한 나라’에도 표출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로써 ‘아이들’이 아니라 ‘이상한 나라’가 바뀔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아이들이 맘껏 말하고, 듣고, 볼 수 있는 온전한 나라의 당당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