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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오병현(원광대학교) 국장
  • 입력 2017.04.10 17:34

잔인한 4월 앞에서

목련나무 위로 도래하고 있는 흰 무리의 철새들. 분홍으로 소리치기 위해서 손바닥을 만개하는 벚꽃들. 어느샌가 봄이 오고 있다. 아직 아침과 밤은 봄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지만, 서서히 봄이 오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이마가 따뜻해질수록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 나오는 시구가 떠오른다. “4월은 잔인한 달”, 옛날이나 지금이나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시적으로나, 가족이 있는 사람으로나 올해 4월은 유난히 춥고 더디기만 하다.

올해 4월이 유난히도 춥고 잔인한 이유는 작년 진도 앞바다에서 바다의 찬 아가리 속으로 304명의 생명이 삼켜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9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작년 4월의 추위 속에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작년 4월 16일 8시 49분 세월호는 처음 좌현으로 기울어졌다. 좌현으로 배가 기울어졌을 때 선장 이준석이 처음 안내데스크 선원들에게 내린 지시는 “선내에서 대기하라”였다. 이에 선원은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했다. 배가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것이다. 세월호 근처에서 운행 중이던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를 통해 구조 협조 요청을 받았고, 둘라에이스호 선장은 세월호 승객들을 자신의 배에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교신을 통해 “탈출하십시오! 빨리!”라며 다급한 목소리를 전했지만, 세월호 선장 이준석과 갑판부 선원들은 9시 45분경 해경 123정에 의해 구조되기 전까지 선내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운항관리규정에 의거해 배가 침몰할 시에는 규명 뗏목과 구명슈터(미끄럼틀)를 바다에 내릴 의무가 있으나, 선장과 몇몇 선원들은 3층 기관실 객실 복도에 모여 가만히 앉아있다 구조받았다. 심지어 기관장과 기관사 2명은 캔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도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10시 30분 세월호는 침몰하고 말았다. 『세월호, 그 날의 기록』에서 발취하자면, “구조할 시간도, 구조할 세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서야 세월호는 지난달 23일 바다의 찬 아가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장장 1073일 만이었다. 인양 작업 중이던 3월 22일에는 원주에서 노란 리본 모양의 권운이 떠올랐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노란 리본의 의미를 하늘이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3년이 흐르고 다시 잔인한 4월로 돌아왔지만, 안정성과 비용 논란으로 세월호 인양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우리나라 국민을 포함해 세월호 유가족 가족들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4월이 너무 잔인하게 파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