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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장수정 기자
  • 입력 2017.04.10 16:44

과열된 경쟁 속, 말라버린 청춘

대학생이 되고 ‘혼자서 북유럽으로 배낭여행을, 사랑하는 애인과 심야데이트를, 아니면 밤새도록 친구들과 음주’ 등과 같은 20대만이 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를 잔뜩 세워본 적 있을 것이다.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성인이란 ‘자유’를 얻은 우리는 한참동안 그 자유의 단내음을 맡고 있었다. 학교 어느 곳을 가도 설렘과 로망이 가득했고, 과제와 강의는 새롭기만 했다. 그렇게 새로움이 가득한 대학생활을 보내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는 어느새 책상으로 돌아와 다시 경쟁하고 있었다. 앞서 세웠던 목표는 그저 꿈으로 남아버렸고, 대학교가 아닌 ‘취업’을 위한 취업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수능 경쟁이 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뒤엔 더 커다란 취업 경쟁이 있었다.

삶의 질을 낮추는 경쟁사회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경쟁’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ㆍ중등 교육을 거치면서 중간ㆍ기말고사, 모의고사 등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제도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마침내 초ㆍ중등 교육의 끝을 알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루면서‘성인’이란 자유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경쟁을 마주치는 전환점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취업’이다. 우리가 초등교육을 받은 후부터 시작된 경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끝날 것 같지만 끝나지 않는 이 사회 경쟁 구조는 ‘남들보다 특출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무한 경쟁’의 서막을 열게 된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싶어요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15세에서 29세 청년층의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였다. 또한 OECD의 조사에서도 지난해 대한민국의 청년실업률은 2015년(10.5%)보다 0.2%오른 10.7%로 2000년(10.8%)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지속된 경기침체에 기업이 신규채용을 줄여 취업 불확실성이 커지자,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단지 안정성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때문에 일명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많이 늘어났다.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정된 직장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필시 공무원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공무원은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 상대적으로 높은 공무원 연금이란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사기업에 취업하기 보다는 월급은 적지만 정년까지 직장이 보장되고, 노후에는 연금도 나오고, 사기업 채용에 비해 평가 기준이 명확한 공무원이 구직자들의 목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안정을 추구하며 노량진을 찾은 공무원 시험 지원자는 지난해 28.9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공시공화국’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에서 정작 공무원이 되는 이들은 약 1.8%로, 나머지 28.3만 명은 다시 외로운 공시 경쟁에 참여하거나 끝내 포기를 선택한다.

무너지는 ‘스펙’성
통계청이 발표한 ‘2016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고등학생 대학교 진학률’이 지난 2005년에 82.1%라는 최고점을 찍은 뒤, 지난해 69.8%까지 하락했다. 전문대, 교육대, 일반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하는 고등학생의 수가 점점 하락하는 원인에는 대학이 더 이상 그들의 취업에 확답을 줄 수 없다는 이유도 존재했다. 그렇다고 현재  고졸이 더 나은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졸은 이제 수많은 스펙 중 하나의 ‘일부’에 불과해졌으며, 대학진학률에 비해 대졸자의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을 보이자 대학 진학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박혀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해 직장을 얻고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학력은 ‘대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3분기 기준 실업자’는 98만5000명으로 전체의 32%인 31만5000명은 4년제 대학교 이상 졸업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사회 문제는 대학생들이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학 졸업장 이외에 더 높은 ‘고(高)스펙’을 추구하게끔 만들었다. 때문에 대학생들은 추가적인 자신의 강점을 어필하기 위해 졸업을 유예하거나 휴학을 통해 ‘취업 8대 스펙’이라 불리는 △높은 토익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봉사활동 △인턴경험 △공모전 수상 △학벌 △고학점을 쌓는다. 이는 타 지원자들과의 경쟁에서 한발이라도 앞서 자신의 강점을 어필하기 위해서다.

휘게(Hygge),
‘한번뿐인 인생 즐기면서 살자’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동시에 경쟁이 국가와 국민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열된 경쟁 사회는 오히려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과열된 우리나라의 교육 경쟁, 취업 경쟁을 식힐 방법은 없을까? 이러한 문제의 해답은 행복지수 세계 1위인 ‘덴마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덴마크의 교육은 ‘휘게’(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문화를 그 배경으로 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덴마크의 교육제도는 학생들이 경쟁보다는 ‘토론과 협동’에 초점을 맞추도록 개정돼 있고, 모든 정규 교육과정 중간에 ‘인생 학교’라는 수단을 두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덴마크 학생들은 본 제도의 바탕이 되는 휘게를 실현하는 동시에, 휘게한 삶이 가져다주는 정신적 여유를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시도하거나, 자신의 목표와 꿈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구해낸다. 한번뿐인 인생을 즐기면서 살자는 휘게의 모토를 비로소 자신들의 삶에서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현재 그 열기를 더하고 있는 본국의 ‘경쟁 주의’를 식힐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