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이기환 기자
  • 취업
  • 입력 2011.08.31 02:15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인제음악치료연구소 음악치료사 임유미 소장(음악학과·03)

‘치료’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병원? 주사? 처방전?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르겠지만 대부분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처방 받는 수동적인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 ‘치료’라는 모든 과정에 환자 또는 내담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수동적인 치료 방식이 의료계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여기 새로운 형식의 치료분야가 있다. 음악으로써 내담자와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음악치료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7월 내담자 중심의 치료를 강조하는 인제음악치료연구소를 세운 이가 있어 만나봤다. 본교 음악학과 1회 졸업생인 임유미 음악치료사. 그가 얘기하는 음악의 힘은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내담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인지 한번 들어보자.

 

 

김해 최초의 음악치료연구소다. 음악치료분야는 사람들이 아직 생소하게 느끼는 분야다.

음악치료분야가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가 되었는데 아직 사람들이 음악치료라는 개념에 대해 생소한 것 같다. 나를 음악치료사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슬플 때는 어떤 음악을 들어야하냐고 물어본다. 음악치료는 음악을 약처럼 처방하는 개념이 아니다. 즉흥적으로 연주를 한다든지 작곡을 한다든지 아니면 직접 악기를 만들어서 내담자가 스스로 치료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어떠한 구속도 강요도 없다. 치료과정 중에서는 침묵도 음악의 표현으로 인식한다. 치료의 과정을 이끌어 가는 것은 내담자지 치료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음악치료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음악치료사의 임무는 내담자에게 음악을 통해 정서적, 신체적 자극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ADHD(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 환자의 경우에는 집중력이 많이 약하다. 그래서 음악치료사는 차분한 멜로디의 음악을 들려주거나 북을 두드려서 내담자가 치료사에게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그러한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해 ADHD 환자의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사람들이 음악치료연구소를 어떤 공간으로 인식했으면 좋겠는가.

음악치료의 대상은 나이나 장애 유무에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음악을 통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인데 무슨 조건이 필요하겠나. 음악은 음악만이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히 있다. 치료가 주는 딱딱한 이미지의 고정관념을 버렸으면 좋겠다. 우리 인제음악치료연구소를 ‘즐거움을 찾는 장소’로 생각하면 감사할 것 같다.

음악치료사로서 어떨 때 보람을 느끼나.

내담자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부모에게 반항적인 아이가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엄마’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말할 때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음악치료사 임유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처음부터 음악치료사를 꿈꾸었나.

아니다. 나의 세부전공은 피아노였다. 당시 나는 연주자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음악치료라는 분야에 종사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음악치료사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3학년 때 음악치료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에 음악치료학개론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당시에는 ‘아, 음악치료라는 분야가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졸업연주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는데 신체적·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과연 연주자로서의 삶이 행복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분명 나의 연주 실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하는 외롭고 고독한 시간들이 나한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성격상 더 많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직업이 나한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 대학원에서 음악치료 전공과정이 개설된 것이다.

첫 해에는 불합격 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당시 상황이 생각처럼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되지는 않았다. 일단 대학원에서 음악치료 전공을 한 명 밖에 모집하지 않는데다가 지금은 음악치료분야의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국내에서 출판되고 있지만 그 당시 음악치료에 관한 책은 대부분 원서였다.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고 결국 불합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리고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호주로 떠났다. 워킹홀리데이 1년 비자를 받고 떠났는데 8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귀국한 이유가 따로 있나.

대학원 수시모집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호주에 있을 때 친구가 전화로 음악치료전공 수시모집을 한다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할 일이 아직 남아있다며 거절했지만 지금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친구의 설득에 돌아오게 되었다. 결국 대학원 수시모집에 지원했고 운 좋게도 합격했다.

연주자로서의 삶과 음악치료사의 삶은 어떤 차이점이 있던가.

연주자의 과정을 밟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다양해졌다. 또 많은 장애아동과 노인들을 도와드리러 파견을 많이 나갔다. 그러면서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도 많아진 것 같다.

인제대 음악학과 1기 졸업생이자 김해 최초의 음악치료연구소 소장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런 타이틀에 대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일종의 책임감이랄까? 아직 음악치료사의 길이 활짝 열린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치료사 배출인원이 적고 인프라도 미비한 상태이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음악치료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기여하고 싶고 학교 발전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 내가 욕심쟁이인가?(웃음)

마지막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중간에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연구소 개소식 때, 학과 교수님들과 친구들이 왔는데 정말 큰 힘이 되었다. 항상 믿어주고 길잡이가 되어 주어서 감사하다. 또 나의 선택들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인터뷰가 끝나고 필자는 그에게 사진을 찍으며 자연스러운 표정을 요청했다. 그러자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일까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던 임유미 소장. 앞에 놓여있던 건반에 손을 올리더니 잔잔한 선율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의식한 듯 렌즈를 바라보고는 수줍은 듯 웃음을 지었다. 순수한 웃음이었다. 그의 나이 올해로 28살. 아직 20대의 청춘인 그는 인제음악치료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과정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더 많은 임유미 소장. 그는 음악치료분야의 발전과 본교 음악학과 1기로서 후배들의 길잡이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공부해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배움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그를 위해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