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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인제미디어센터
  • 칼럼
  • 입력 2022.06.06 15:34

'올바른 ‘공론장’을 위하여'

‘공론장’이란 말 그대로 공론의 장을 말한다. 서구에서 국가와 사회를 매개하는 자발적이고 제한 없는 토론의 장을 가리켜 ‘public sphere’라고 부르던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회구성원 사이의 제한 없는 토론이 이루어지고 여론이 형성되는 장소가 바로 공론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론장에 대해 가장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연구한 철학자는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다. 그는 20세기 서구사회가 경험했던 끔찍한 사건들, 이를테면 1차대전, 파시즘의 등장, 유대인들에 대한 홀로코스트, 2차대전과 같은 사건들의 배후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공론장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오늘날 이런 공론장의 역할은 주로 매스미디어가 담당하고 있다. 매스미디어는 국민의 의견을 모으고 전달하면서 동시에 국민의 의견, 즉 여론을 주도적으로 형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영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저널리스트이자 언론학자였던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은 ‘바깥 세계’에 대한 ‘우리 머릿속 그림’(the pictures in our heads)은 미디어에 의해 재구성된 ‘의사환경’(pseudo-environment)이라고 주장하면서 적극적인 현실 규정자로서의 미디어의 역할에 주목했다. 다시 말해 미디어란 투명하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배제를 통해 현실을 구성하고, 이것이 수용자인 일반 대중의 현실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미디어 현실구성론은 뉴스 수용자의 인지적 효과를 분석하는 뉴스프레임 이론에 토대를 제공했다. 뉴스프레임 이론이란 미디어가 제공하는 뉴스는 특정한 프레임이 가미된 상징적 현실이고, 이것은 수용자의 주관적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를 좀더 깊이 연구한 로버트 엔트만(Robert Entman)은 뉴스에서의 프레이밍(틀짓기)란 “사건 혹은 이슈의 일부 측면을 선택하고 강조하면서 그것들의 상호 연결을 통해 특정한 해석, 평가 그리고/혹은 해결책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이를 바탕으로 본질적으로 유사한 사건이었던 소련의 KAL기 격추사건(1983년)과 미국의 이란 민항기 격추사건(1988년)에 대한 사건 당시의 뉴스를 분석해, 당시 뉴스들이 전자에 대해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소련의 도덕적 파탄’으로, 후자에 대해서는 이해할만한 첨단과학의 ‘기술적 결함’으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프레이밍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요약하면, 리프만의 ‘의사환경’론과 엔트만의 뉴스프레임론은 매스미디어가 생산하고 유포하는 뉴스가 수용자의 인지적 효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매스미디어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공론장 역할을 하고 있는가이다. 만약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면 앞서 하버마스가 지적한 대로 우리 사회는 커다란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우리도 그런 끔찍한 사회적 비극을 경험했다. 300명이 넘는 학생과 일반인이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한 채 침몰해 사망한 세월호 사건이 바로 그 사례다. 당시 매스미디어는 사건의 진실 보도를 통해 제대로 된 여론을 형성하는 공론장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사건을 무마하려는 정부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데 급급했다. 그 결과 결국은 촛불시위와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매스미디어가 제대로 된 공론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엄정한 심판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건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대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최근의 매스미디어를 보면 과도할 정도로 친정부적인 편향성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불길한 기시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공론장의 붕괴는 단순히 정권의 붕괴에 한정되지 않고 국민 개개인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긴다. 민주시민의 주체로서 매스미디어가 제대로 된 공론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보다 더 철저한 감시와 비판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