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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평등, 지수 싸움이다?

세계 11위, 세계 102위? 지표마다 상반된 한국 성평등의 현 주소

한국의 성평등 수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이재명 당시 후보 사이에 공방이 오간 주제다. 당시 윤 후보는 한국의 성평등 지수가 상위권 수준이며, 우리나라에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얘기한 뒤로 여전한 스탠스를 취해오고 있다. 성차별,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두 후보는 왜 서로 다른 지표를 두고 공방을 벌인 것일까. 

GGI에서는 하위권, GII에서는 상위권
전 세계 156개국 중 102위로 하위권인 한국의 성적, 세계경제포럼(WEF)의 작년 ‘성 격차 지수(GGI;Gender Gap Index)’에 따른 것이다. 성별 격차를 해소하려면 앞으로 136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뒤따랐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대거 실직하여 국제적으로 지표 수준이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세계경제포럼은 “봉쇄령에 직격탄을 받는 업종에 여성이 많이 일했다. 이 때문에 남성보다 여성의 실직률이 훨씬 높아졌다”라고 밝혔다. 돌봄 및 가사노동을 떠안게 된 점도 여성이 결제활동에서 멀어지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와 상반되는 결과가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측정한 성 불평등지수(GII·Gender Inequality Index)에서 나타났다. 2020년 보고서에서 한국은 189개국 중 11위로 스위스, 덴마크 등 성평등 인식이 높은 북유럽 국가들에 뒤이어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상위권이 된 이유, ‘청소년 출산율’
GGI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초점을 맞추어 여성 경제활동참여율 및 고위관리자 비율, 취업률과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 등 14개 지표를 측정한다. 이에 비해 GII는 모성사망률(임신, 분만으로 사망하는 여성의 비율)과 청소년 출산율, 여성 의원 비율, 중등 이상 교육을 받은 여성 인구, 경제활동참가율 등 5개 지표로 지수를 측정한다.

UNDP가 개발한 성 불평등지수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사회적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지표로, 한국은 현저히 낮은 청소년 출산율로 인해 높은 순위에 매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여성 의석 비율(16.7%)이나 경제활동참가율에 있어서는 여성과 남성의 성별 격차가 여전히 확인된다.

이렇듯 차이 나는 두 지수는 한국이 보건의료, 교육기회 등 제도적인 부분에서의 성평등은 이루어졌으나 이를 뒷받침할 근본적인 성평등 인식과 문화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윤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성평등 정책 주관 부서를 없애는 대신, 인구 감소 문제를 다룰 부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당초의 공약 이행은 후퇴 논란에 휩싸이고 있지만, 애초에 어째서 이러한 공약을 내세웠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성차별 문제는 잘 보이지 않는 형태로 공기처럼 존재한다. 여성에게 남성과 같은 기회의 문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사회에 진출하거나 결혼의 문턱을 넘고 나면 ‘성차별의 벽’을 실감하게 된다. 미투 운동의 붐이 일었어도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권력형 성폭력 문제, 각종 추행 사건이 잇따르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어떤 지수에서는 성적이 높은데’라며 성차별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성차의 벽을 해소할 실질적인 방안을 강구하며,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인지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