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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신혜인
  • 지역
  • 입력 2022.04.04 15:57

서툴러도 괜찮아, 도예 공방 체험기

신혜인 기자가 직접 도자기를 빚고 있다 = 사진
신혜인 기자가 직접 도자기를 빚고 있다 = 사진

수천 년간 도자기를 빚어온 인류의 역사. 한국사를 공부한 이라면 ‘빗살무늬 토기’나 ‘고려청자’등 도자기와 관련한 다양한 단어가 익숙할 것이다. 도자기가 생겨난 덕분에 고대의 인류는 음식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고, 음식을 담는 그릇을 예쁘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시대별로 식문화는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흙으로 빚어 가마에 구워낸 도자기 특유의 편안함은 여전히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다. 

도시에 사는 사람일수록 흙을 직접 만져볼 일은 드물다. 그런 도시인의 팍팍한 삶에 ‘도예’라는 취미생활은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지역마다 곳곳에 크고 작은 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기자는 올해 들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물레를 돌릴 수 있는’ 도예 공방을 찾았다. 사실 발단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소설이었는데, 소설에는 도예에 관해 다음과 같은 짤막한 단상이 등장한다. 

“물레를 돌리면 나 자신에 대해 정말 정직해질 수 있었어. 오로지 형태를 만드는 일에 의식을 집중하고 다른 온갖 일들을 깡그리 잊어버릴 수 있었어.”

물레를 돌리면 정말 다른 생각일랑 깡그리 잊는 고요의 상태가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지난 2월, 물레 작업을 할 수 있는 부산 진구 ‘베어도자기’ 공방의 일일 체험을 찾았다. 

공방은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집이었다. 마당을 지나서 1층 집으로 들어서니 인센스 향기가 은은하게 났고, 오래된 가구들에서 외할머니 댁의 분위기가 풍겼다. 예약 시에 ‘버려도 될 옷’을 갖고 와 달라는 당부가 있었기에 들고 온 작업복으로 환복하고, 앞치마를 질끈 동여맸다. 선생님은 앉아서 자세 잡는 법부터 흙을 만지는 법까지 차근히 시범을 보이면서 설명해주었다. 물레는 생각보다 낮게 위치했고, 등허리를 굽힌 채 오른쪽 팔꿈치를 허벅지에 갖다 대고 흙을 만지는 자세는 어색하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몸 어딘가가 고장 나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을 터, 흙을 판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작업부터 시작해 물을 끼얹으며 구멍을 내는 데까지 가능한 선생님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해보려 애썼다.

흙의 감촉은 예상만큼 묵직했고, 구멍을 내어 넓히면서 그릇 형태를 갖추는 일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발로 페달을 밟아 물레를 돌리는 동안 원의 중심을 잡고 어느 한 쪽에 힘이 쏠리지 않도록, ‘균형 잡힌 힘주기’를 해야 했는데 중간 중간 “허벅지에 (팔꿈치) 딱 붙이시고!”라는 선생님의 불호령이 날아왔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도 모르게 팔이 공중에 떠 있었다. 의식적으로 팔꿈치를 잘 붙여줘야 힘이 고르게 들어간다고 했다. 초심자답게 물레를 따라 마음도 빙글빙글, 어느새 그릇은 우락부락 일그러져가고 있었다. “잘못된 모양은 고치려 애쓰지 말고, 그냥 잘라서 버리세요.” 선생님은 단호하게 미련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그것이 스트레스 받지 않는 길이라고…….

우여곡절 끝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릇 세 벌을 완성했다. 그릇에 유약을 묻혀 고온의 가마에서 구우면 원래 형태보다 20~30%가 줄어든다고 했다. 그리고 꼬박 한 달의 기다림 끝에, 예쁘게 완성된 그릇 사진과 함께 ‘일회용 봉투는 사용하지 않으니, 담아갈 가방을 챙겨  오세요’라는 선생님의 문자가 도착했다.

베어세라믹에서 도자기 완성 소식을 받은 당일, 기자는 또 다른 도예 체험을 하러 떠나는 길이었다. 이번에는 장유의 카페거리에 위치한 ‘여름작업실’에서 초벌 그릇에 그림이나 문양을 넣는 작업을 예약 신청했다. 다양한 종류의 초벌 그릇, 컵들 중 원하는 모양을 선택해서 작업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초벌 그릇은 잘 깨어지고, 어느 한 쪽에 너무 힘을 주면 2차 가마 작업에서 균형이 깨어질 수 있다”며 조심해달라고 당부했다. 기자는 한 눈에 띈 물결 모양의 그릇을 골랐고, 마치 어항처럼 느껴지도록 물속에 사는 것들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신혜인 기자 = 사진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신혜인 기자 = 사진

밑그림 작업은 색연필로 살살 그려주면 되는데, 고온에서 굽는 동안 색연필 자국은 말끔히 사라진단다. 밑그림 후, 그 위로 물감이나 색연필 중 원하는 도구로 색깔을 칠해주면 간단히 완성이다. 물레로 돌리는 작업만큼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치 않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체험으로 적절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물감이나 색연필의 색감이 그리 다양하지 않아서 알록달록하게 칠하기를 원하는 이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을 법했다. 꾸미는 작업이 모두 끝나고, 베어세라믹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마에서 잘 구워져 나올 때까지의 기다림을 기약하며 체험을 마무리했다.

도자기 완성본 = 사진
도자기 완성본 = 사진

이처럼 내가 직접 만들고 꾸민 도자기를 일상 속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도예 체험의 장점이자 매력으로 다가왔다. 창작이나 창조의 일은 끝나면 허무할 때도 많은데, 도자기는 조심해서 사용한다면 아주 오랫동안 세월을 함께할 수 있으니 단순히 소비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도자기. 단 하루씩의 체험일 뿐이지만 흙으로 빚은 도자기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깊고 그윽한 향기가 풍겨오는 듯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하루쯤 시간 내어 도자기 공예를 체험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