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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정길
  • 사회과학
  • 입력 2021.10.03 20:58
  • 수정 2021.10.05 16:14

현금 없이 1주일, 100년 전에는 SF였다

쉬웠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순 없었던 도전기
현금 없는 사회는 미래가 아닌 현재

현금 없이 1주일 체험 사진

현금 없이 오로지 카드만 사용했던 1주일.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평소에 행동하던 것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교통카드를, 책을 살 때는 신용카드를, 계좌이체를 할 때는 모바일 뱅킹을 사용했다. 심지어 25만 원씩 지원해 주는 코로나 재난지원금도 현금이 아닌, 카드로 지급되었으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현금 없는 1주일은 ‘도전기’라고 이름 붙이기에 민망할 정도로 쉽게 마무리되었다. 이 도전을 시도하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현금은 부가적인 수단이었다. 식사 후 더치페이를 하거나 돈을 주고받을 때, 현금보다 카카오페이 같은 계좌이체를 선호하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별건 없었다. 가지고 다니기 불편해서란다. 공감했다.

100년 전과 비교하면 이러한 우리의 일상은 SF였다. 인력거로 사람을 태우고 이제 막 전등이 깔리던 1921년. 인터넷이 없을뿐더러 버스 승차권을 버스 승무원에게 구매하던 시절. 사이버 거래는 상상으로만 가능하던 때였다. 그러나 현재 2021년은 어떨까? 우리는 다인식당에서 밥 먹을 때 키오스크를 사용한다. 스낵테라스에서 컵밥을 살 때는 지갑을 여는 대신, 휴대폰 잠금장치를 연다. 그 후, 친절한 이모님의 계좌번호에 돈을 송금한다. 인제대 정문에서 버스를 탈 때는 또 어떤가? 학 3마리 대신 카드를 단말기에 찍는다. 50원 할인과 동시에 환승까지 가능하다. 이렇게 명함 크기 네모난 카드는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왔다. 다보탑, 벼, 이순신, 학, 이황,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실물화폐는 점점 지불수단으로써 외면받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원(₩)을 발권하는 중앙은행은 8월 23일 디지털 화폐 CBDC 모의실험을 진행하였다. 이는 새로운 결제수단을 준비하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는 지폐나 동전처럼 실물 화폐와 별도로 중앙은행이 전자적 형태로 발행한 화폐를 뜻한다. 전자 형태로 거래되기 때문에 암호화폐(예 :비트코인)와 비슷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직접 발행하고 관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쉽게 말해, 정부에서 발행하는 카카오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CBDC발행은 기술적 제도 측면에서 갖출 것이 많다. 현재 기술적 측면에서 모의실험을 시작한 것이므로 아무리 빨라도 2~3년은 소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관련 전문가들은 디지털 화폐의 안전성과 실효성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다. 디지털 화폐가 상용화된다면 동전 및 지폐의 발행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돈의 유통 및 흐름을 관리하여 탈세나 자금세탁 방지도 용이하다. 또한 온라인으로 거래하기 때문에 은행 인프라가 취약한 시골에서 높은 편의성을 가진다.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부작용도 야기된다. 현금 없는 사회는 통제되기 쉽다. 힘 있는 기업 또는 국가가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 결제 내역을 체계화 시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대표적 기술이 바로 빅데이터이다. 빅데이터 기반으로 거래 내역을 연령대별, 성별, 직업별로 분류하고 패턴을 분석한다면 여론조작은 식은 죽 먹기다. 그들이 재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통제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사람들의 개인정보는 한낱 0과 1로 구성된 디지털 신호에 불과할 것이다. 인스타그램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본인이 올리고 삭제했던 흑역사나 비밀들이 데이터화 되어 있다고 생각해보라. 어쩌면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적 세상의 신호탄은 ‘현금 없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대학은 현금 없는 사회를 가르치지 않는가? 남녀노소 전공 불문하고 누구나 맞이하게 될 화폐의 변화를 아직도 SF 장르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 자체가 SF다. 대학교는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기에 앞서 주춧돌을 쌓는 배움터이다. 숫자로 가득한 자본주의사회에서 미래경제를 배제한다면 대학이 추구하는 ‘학생의 행복’은 뜬구름이 아닐까. 청년들이 주식, 비트코인처럼 ‘돈’만 추구하는 것을 방치하지 말고, 올바른 경제 관념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가르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