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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이채영, 손창오
  • 사회과학
  • 입력 2021.08.29 20:47
  • 수정 2021.08.30 11:59

미란다원칙, 왜?

범죄 수사드라마를 보면 범인을 체포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 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하는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습니다.” 바로 미란다원칙이다. 미란다원칙은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 용의자를 연행할 때 그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있음을 미리 알려 주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체포할 당시에 미리 미란다원칙을 고지하지 않으면 심문 중 발생한 모든 자백 행위의 효력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 ‘미란다원칙’은 대체 어떻게, 왜 생겨나게 된 것일까.

1963년 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멕시코계 미국인 에르네스토 미란다(Ernesto Miranda)가 미성년자 납치ㆍ강간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경찰은 자백을 받아냈고 미란다는 재판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미국 수정헌법 제5조, 6조에 해당하는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연방대법원에 상고를 청원했다.

결국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기존 판결을 뒤집고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보다 범죄자의 인권을 더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이 있었지만, 번복되지 않았다. 그 후 미란다는 동거녀의 증언으로 다시 체포되었으며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5년의 수감생활 후 가석방되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에 비해 그의 죽음은 다소 어이가 없을 정도다. “내가 미란다원칙의 그 미란다이다.”라고 말하고 다니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다른 손님에게 구타를 당해 죽은 것이다. 이 사건의 용의자는 미란다원칙을 듣고 진술을 거부하여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우리나라엔 헌법 제12조 제5항,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5(체포와 피의 사실 등의 고지), 형사소송법 제244조의 3(진술거부권 등의 고지) 제1항과 제2항, 형사소송법 제214조의 2(체포와 구속의 적부 심사)에 미란다원칙이 표기되어 있으며,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 협력과 일반적 수사 준칙에 관한 규정' 개정으로 2021년 1월부터 진술거부권도 미란다원칙 의무 고지에 추가됐다.

미란다 원칙… 잘 알아듣지 못한다면…?

미국 내에 945개에 이르는 연방, 주, 카운티 관할 구역에서 사용되는 미란다 경고문은 886개가 존재한다고 한다. 경고라 하면,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형 미란다 경고문은 매우 다양하고 단어 또한 높은 수준의 이해도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길이와 용어, 어휘로 구성된 미란다 경고를 구금·체포되는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에서 평균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은 범죄자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문제점이 있다.

한국에서 실시된 피의자 인권침해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비슷한 문제점이 나타난다. 너무 간단히 말하고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응답이 62.5%, 너무 빨리 말하거나 읽어서 알아듣기 어려웠다는 응답이 19.0% 등 고지되는 시점도 일정하지 않고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18년 경찰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난동을 부린 40대에게 적용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무죄로 판단, 항소심에서 감형되는 사례가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란다 경고에 사용되고 있는 어휘나 단어, 문장의 수준을 이해하기 쉽게 공용화시킬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외국인을 체포할 경우, 미란다 원칙을 외국어로 고지해야할 상황도 배제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공용어인 영어 경고문의 정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수사기관에서의 미란다 원칙에 대한 인식이 어느정도인지 교육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파악해 부족한 점이 있다면 보완해야 할 것이다.

미란다 원칙의 취지는 수사절차에서 피의자·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또한 불법수사행위를 방지하여 인권문제로 인해 범죄자를 석방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이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선 현재 원칙의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실태조사와 냉철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