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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안규리 기자
  • 사회과학
  • 입력 2021.06.01 12:42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인간이 더 낫다?

양적 공리주의 vs 질적 공리주의

자, 당신이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라고 가정해보자. 한참을 달리고 있던 와중 아뿔싸,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선로 위에 5명의 인부가 작업하고 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방향을 틀 수 있는 예비 선로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예비 선로 위에도 1명의 인부가 작업 중이다. 당신은 방향을 틀겠는가, 틀지 않고 기존의 선로 위를 달리겠는가?


철학 문외한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논제, 바로 ‘트롤리 딜레마’다. 당신이 5명의 인부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보다는 한 명의 인부를 희생시키겠다고 결정했다면, ‘공리주의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을 타이틀로 내걸고 등장한 벤담의 공리주의는 ‘양적 공리주의’다. 벤담은 행복을 단순히 숫자로 따져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 주장한다. 즉 당신이 선택한 5명의 행복이 한 명의 희생으로 인한 고통을 상쇄한다면, 정당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럼 다시 열차를 운전하던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자. 저 멀리 보이는 예비 선로 위 인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당신의 소중한 친구다. 소중한 친구가 예비 선로에 서 있어도 당신은 한 명의 희생을 선택하겠는가? 아마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밀의 ‘질적 공리주의’다. 기관사 입장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인부 5명보다는 내 친구를 지키는 것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5명과 1명의 인부를 똑같은 인부로 취급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질적 가치를 따지는 것이다.


마약을 하는 것과 독서를 하는 것이 같은 양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밀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경험했던 사람들이나 대부분의 사람은 독서를 하는 쾌락을 더 추구할 거야. 다수가 선택하는 쾌락이야말로 질적으로 높은 쾌락이지. 마약과 같은 질 나쁘고 일시적인 쾌락이 어떻게 진정한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겠어?” 인간이라면 품위와 고귀함을 당연히 추구하리라 생각한 밀은 육체적 쾌락을 중시하는 인간도 있다는 것을 간과한 듯하다. 그러나 인간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삶을 발전시키고자 함은 인정받아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당신이 행복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밀의 말대로 배부른 돼지가 아닌 배고픈 인간을 선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