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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지강원 기자
  • 영화
  • 입력 2020.04.05 17:13
  • 수정 2020.04.06 15:42

(영화저장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패터슨'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

월요일. 미국 뉴저지의 작은 도시 패터슨에 거주하는 패터슨은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회사에 출근한다. 그는 정해진 버스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 기사다. 퇴근 후에는 아내 로라와 저녁을 먹고 반려견 마빈과 단골 주점까지 산책한다. 그리고 맥주 한 잔과 함께 그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은 그가 이러한 삶에 익숙해졌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자신의 비밀노트에 ‘시’를 쓰는 것이다. 출근 버스에서, 점심을 먹는 공원에서 그리고 자신의 지하 작업실에서 그는 시간이 되는 대로 시를 쓴다. 눈을 뜨자 화요일이 그를 찾아온다.

 

 

삶 속의 아이러니, 예상치 못함의 연속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패터슨의 하루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정해진 버스 노선을 반복한다. 하지만 일상이라는 시간과 공간만 반복될 뿐, 그의 삶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차별화된다. 같은 버스정류장에서 다른 승객이 탑승하거나, 산책로에서 우연히 마주친 래퍼 그리고 단골 바에서 다투는 커플의 모습을 포착할 때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제와 달라져 있다. 이때 패터슨은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짓는다.

관계뿐 아니라, 예측불허한 상황들이 그의 일상에 찾아오기도 한다. 버스가 운행 도중 갑자기 퍼져버리거나 마빈이 그의 비밀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기도 한다. 이 일로 패터슨은 단 한 줄의 시도 써 내려가지 못하는 최악의 주말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청객은 새로운 손님으로 그를 다시 방문한다. 벤치에 앉아 체념하고 있던 그에게 낯선 관광객이 다가온다.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패터슨에게.

 

“당신은 뉴저지 패터슨의 시인인가요?”

“아뇨... 저는 그냥 버스드라이버예요”

“패터슨의 버스 기사... 아주 시적이군요”

 

그는 헤어질 때 패터슨에게 공책을 선물한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그는 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다시 시를 쓸 용기를 얻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월요일은 다시 찾아온다.

 

평범함 속에서 발견되는 非평범함

반드시 극적인 전개가 펼쳐져야 하는 영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평범한 패터슨의 8일은 지루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무미건조한 그의 삶이 작은 에피소드들로 풍요로워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 에피소드는 가끔은 행복이라는 형태로 혹은 슬픔으로 매 순간 패터슨을 찾아온다. 어느 순간 우리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패터슨의 삶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앞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심 기대하게 된다.

  

일상의 반복이 지겹게 느껴지는 요즘, 이 영화를 통해 나의 소소한 행복을 다시 느껴보는 건 어떨까?

혹시 모르지 않는가. 영화 속 관광객이 전해준 순백의 텅 빈 노트처럼,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