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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민아 기자
  • 오피니언
  • 입력 2018.10.28 14:30

[기자칼럼] 어른아이와 아이어른

요즘 어른 같은 아이, 아이 같은 어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아동복 쇼핑몰만 봐도 어른처럼 빨갛게 화장한 아이들이 섹시한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는가 하면, 아예 장난감이 아닌 아동용 화장품과 하이힐이 판매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어른에게 요구해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스타일을 아이들에게 입히는가 하면, 도리어 어른에겐 유아틱한 스타일을 강요한다.
스무 살이 넘는 여자 아이돌이 무대에선 턱받이를 하고, 뮤직비디오에선 젖병을 물고 우유를 마시며 인형 놀이를 한다. 또한 이들은 사회적 수요에 맞춰 의도적으로 ‘어린아이’를 강조하려고 양 갈래로 머리를 묶고 토끼 가방을 메어, 가끔 보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일곤 한다.
“나는 순진하고 아무것도 몰라요” 이런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어떤 감흥을 주기에 어른아이와 아이어른을 만드는 지경까지 온 걸까.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미지와 어린아이를 대칭 한다는 것은 일차원적이고, 아이들을 소비의 대상으로 정했다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
아이에게 어른의 옷과 화장을 시키는 것과 어른에게 아이의 옷을 입히는 것은 대상만 바뀌었을 뿐 모두 같은 유아 성적 대상화의 일부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로리타’가 있다. 로리타 또는 롤리타라고 불리는 단어의 어원은 러시아 망명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에서 비롯되었다. 이 소설은 마흔을 앞둔 남자가 열두 살 소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끝내 사랑의 도피를 한다는 소아성애자의 판타지를 담은 포르노그래피다. 어원만큼이나 현대에서 로리타는 소아성애증, 페도필리아와 동의어로 쓰인다.
이런 로리타, 소아성애를 ‘취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피하는 게 좋다. 소아성애는 노인, 동물, 시체에게 성욕을 느끼는 성적 도착증에 일부이며 정신병으로 분류된다. 경찰청에서 발표한 ‘최근 5년간 성폭력 범죄 가해자·피해자 현황’자료에 의하면 작년 기준, 소아성애와 관련된 성범죄 피해자는 총 1,261명으로 하루에 약 3명 정도가 피해를 보고 있다. 놀랍게도 이 수치는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만 포함한 것이고, 청소년까지 포함하면 9,298명으로 하루에 약 25명꼴이다. 이 자료만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어린아이들이 살아가기 버겁다는 것을 증명한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범죄가 절대 일어나선 안 되지만, 그에 비해 아동성범죄에 대한 우리나라 형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입에 담기에도 끔찍한 아동성범죄 가해자가 10년 전에 받은 형벌은 징역 12년이었다. 피해 아이가 대학생이 되는 해에 가해자는 출소하게 되고, 가해자의 출소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뜻을 함께했다.
해외 사례만 봐도 아동성범죄 형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싱가포르는 범죄자에게 태형을, 스위스는 사회 격리를 시킨다. 더불어 호주에선 성범죄자가 해외에서 범죄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출국을 금지함으로써, 아동성범죄자를 국민이 아닌 국가적 수치로 취급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동성범죄에 대한 형벌은 우리나라의 최대 15년형부터 중국의 사형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최소 형벌을 담당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아동성범죄는 흉악범죄에 속하고, 우리나라 역시 더욱 강한 형벌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매스컴에서는 오히려 아동성범죄를 독려하는 것처럼 유아 성적 대상화 수준을 넘고 있다. 아이들은 드러난 부위를 훑는 음습한 시선, 끈적한 시선이 아닌 아이로써 존중과 배려를 받으며 자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소아성애를 취향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사회에 수요가 있다고 해서 아이들과 아이돌을 어른아이, 아이어른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버건디가 유행할 수 있지만, 우울증이 유행할 수는 없는 것처럼 유아 성적 대상화를 매스컴에 더 드러내선 안 된다. 유아에게 성욕을 느끼는 건 취향이 아닌 정신병이다. 이 점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