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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채욱(신문방송.15)
  • 기획/특집
  • 입력 2018.10.28 14:11

[사진부문-당선] 할아버지의 작은 방

작품설명

할아버지는 우리가 어릴 적 모습을 차곡차곡 모아두셨다. 한 번씩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가서 어렸던 모습의 사진을 보곤 하는데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말을 못 하셔서 손짓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말을 하신다. 어릴 땐 그저 알아차리는 척하는 것에 그쳤지만 나이가 먹으니까 진짜로 알아듣는 신기술이 생겼다.
참고로 방사진을 보면서 할아버지 보고 웃으면서 엄지를 세우자 할아버지는 허허하면서 웃으셨다. 웃음소리는 할아버지나 나나 다를 것이 없었다.

수상자 소감

우리 할아버지는 말을 하지 못하신다. 듣지도 못하신다. 흔히들 말하는 농아이다. 올해 초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다행히도 할머니가 곁에 계셔서 병원에 빨리 갈 수 있었다.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쉬라고 당부했지만 할아버지는 한평생 해온 농사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는지 자꾸만 밭에 가곤 했다. 지팡이를 들고 밭에 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가 계실 때 최대한 많이 뵙자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의성에 올라가서 할아버지를 뵙고 온다. 할아버지를 기억 속에 많이 `담자는 생각에 시골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는다. 할아버지는 사진 찍는 것이 어색한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른 곳을 쳐다본다. 할아버지를 찍고 사진을 보여드리면 그제야 웃곤 한다.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는 나의 웃음소리, 그리고 우리의 웃음소리와 똑같다. 행복해지는 웃음소리다.
할아버지의 방엔 자식들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혼자서 붙인 것이라고 말해줬다. 사촌 형, 누나, 동생 들의 어린 사진을 보고 있자면 할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졌다. 내가 사진을 가리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할아버지는 호쾌하게 웃어주었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찍은 사진이 당선되어서 기쁘다. 사진을 예쁘게 찍진 못했지만 사진 속에 담겨있는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다. 할아버지가 살아생전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지고 계셨으면 좋겠다. 나도 할아버지의 마음속 예쁜 한 부분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겠다. 이번에 시골에 올라간다면 할아버지와 소고기를 먹으러 가야겠다. 할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듣고 싶은 날이다.

심사평(이찬훈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

2018년 인제문화상 사진 부문 공모는 주제가 한정되어 있지 않아서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주제의 사진들로 응모를 하였습니다. 모두 자기 나름의 시각과 주제의식을 갖고 의미 있는 장면들을 담아낸 작품들이라 좋았습니다. 그 중 당선작으로는 신문방송학과 권채욱 학생의 작품 ‘할아버지의 작은 방’을 뽑았습니다.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은 내리사랑’ 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자식에게는 오히려 쑥스러워 맘 놓고 사랑 표현을 하지 못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주들에게는 자상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들어 고향을 그리워할 때면, 어쩌면 부모님보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각이 먼저 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 할아버지의 방은 없는 게 없는 요술방과 같았습니다. 그곳은 구석구석 숨겨놓았던 맛있는 먹을거리들이 쏟아져 나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밤이면 할아버지의 옛날 얘기 속에서 온갖 신비로운 세계로의 시간여행을 즐기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곤 하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할아버지의 방은 그렇게 커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찾아가 본 할아버지의 방은 그렇게 작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너무 작고 초라해서 눈물이 왈칵 솟아날 지도 모릅니다. 그 모습은 흡사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늙어 작아진 할아버지 자신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는 그 속에 소박하지만 부끄럽거나 비루하지 않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방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다 보면, 우리는 할아버지의 성실한 삶의 자취와 자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됩니다.
권채욱 학생의 ‘할아버지의 작은 방’에는 할아버지의 인생이랑 자식과 손주들에 대한 사랑이 구석구석에 배어 있습니다. 한지가 발라져 있는 작은 출입문과 낮은 천장의 작은 방은 아주 작고 소박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전에는 화려했을 그러나 이제는 낡아버린 꽃무늬 벽지와 흐릿한 형광등은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해 줍니다. 벽면에 붙어있는 커다란 달력의 ‘삼성농약사’라는 글씨는 할아버지가 촌에서 농사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벽에 겹쳐져 걸려있는 모자와 낡은 수건들은 땡볕에서 힘들게 농사일을 하는 할아버지와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해온 친구임을 말해줍니다. 소박하게 생긴 티브이랑 선풍기랑 벽걸이 시계는 오랫동안 근근이 모은 돈으로 장만했을 할아버지의 성실한 삶을 얘기해줍니다. 그 위 두 벽면은 온통 할아버지의 가족사진으로 가득합니다. 인생을 함께 해 온 친구 같은 할머니랑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찍은 사진도 보이고, 많은 가족들이랑 함께 모인 즐거운 장면도 보이고, 무엇보다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귀여운 손주들의 어릴 적 모습이 하나 가득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가족과 자식, 손주들에 대한 할아버지의 깊은 사랑과 자랑스러움이 가득합니다. 어떤 사진은 강렬한 인상으로 특정한 사물이나 성질에 집중하도록 눈길을 사로잡기도 하고, 또 어떤 사진은 여러 가지 요소들로 다양한 얘기들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할아버지의 작은 방’은 얼핏 보면 어지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할아버지의 인생과 가족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들려주고, 그런 할아버지에 대한 손주의 속 깊은 사랑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사진이었습니다.
응모작 중에는 그 밖에도 좋은 작품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허리가 심하게 굽어 유모차에 의지한 채 걸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멀티미디어학부 김현수 학생의 ‘허리’ 역시 노년의 인생을 담아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우리 학교의 자그마한 연지의 모습을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담아낸 간호학과 조혜영 학생의 작품도 사랑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휴대폰으로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 모습으로 여행의 즐거움과 요즈음의 세태를 잘 표현한 인문학부 윤선아 학생의 ‘산토리니를 담다’도 좋았습니다. 시상이 제한되어 있어 아쉽지만 앞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여 인제문화상이 더 풍성한 인제인들의 축제의 한 마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