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민아 기자
  • 입력 2018.09.07 17:14

67년 전 역사의 현장,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111년 만의 최고 기온을 기록한 이번 해 여름, 무더운 날씨에 지친 관광객이 휴가를 즐기기 위해 거제도를 찾는다. 해수욕장과 바람의 언덕, 외도 같은 유명한 관광지로 가득 찬 거제도는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이 시원한 휴가를 보내고 가기에 좋은 섬도시다.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삼일 정도의 시간 동안 많은 관광객이 거제도에서 시원한 물놀이로 더위를 날리고, 명소에서 사진을 찍어 추억을 남긴다. 그리고 거제도를 떠나기 전, 그들은 마지막으로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해 역사의 현장을 찾는다.
6.25 한국전쟁이 남기고 간 민족의 아픔을 엿볼 수 있는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많은 사람이 방문했다. 주차장에는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가족들이 타고 온 승용차부터 단체 방문객이 타고 온 관광버스로 가득하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매표소로 향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에도 웃음꽃이 피어 있다.

시작된 전쟁
입장료를 지불하고, 매표소 옆 계단을 쭉 올라가면 시선을 확 사로잡는 탱크가 보인다. 북한군이 남침을 감행했을 때 선봉에 서있던 탱크의 외관을 가지고 있는 이 전시관은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김일성, 이승만, 맥아더 등 한국전쟁의 주요 인물들의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탱크 전시관은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으로 시작해 내리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매우 짧다. 대신, 멀지 않은 곳에 포로수용소 디오라마관이 있다. ‘디오라마’란 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하여 하나의 장면을 만든 것을 뜻하는데, 이 전시관은 디오라마를 이용해 그 당시 포로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근처 하천에서 알몸으로 씻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포로들 간의 갈등을 재현하는 영상과 전시관을 울리는 총소리가 긴박함을 전해준다.
디오라마관을 나오면 피난민 벽화가 그려진 경사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평지를 걷기도 힘든 이 날씨에 경사를 오르면, 똑똑 떨어지는 땀방울과 함께 벽에 그려진 피난민들의 고난을 느낄 수 있다.
한참 경사를 따라 걷다 보면 북한국의 남침 현장과 국군의 사수 현장이 마주 보고 있다. 나뭇잎을 덮어 위장한 탱크를 이끌고 지뢰밭을 진군하는 북한군과 쌓아 올린 모래주머니 뒤에서 고전하는 국군들. 군인의 표정까지 보일 정도로 크고 자세한 현장에 경사를 힘겹게 오르다가도 그 당시를 떠올리며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다.

흘러간 시간
기습공격의 현장을 지나오면 경사가 끝남과 동시에 이를 시작으로 발발한 6.25 한국전쟁의 역사를 담은 전시관, ‘6.25 전시관’이 보인다. 이 전시관에서는 1950년부터 시작된 전쟁의 역사를 우리나라 지도와 군함 모형, 화살표를 이용해 친절히 설명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숫자로 사상자, 잡혀 온 포로 수 등을 나타내 한국전쟁의 시작부터 휴전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6.25 전시관에서 전쟁의 큰 흐름을 이해하고 밖으로 나오면,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대동강 철교가 폭파되는 바람에 위험천만하게 휘어진 철제들과 그 위를 어떻게든 건너가 보려는 피난민, 다리에서 떨어져 대동강 물살에 떠내려가는 피난민의 모습은 전쟁과 관련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 어떤 마음으로 강을 건너고 있는지 대변해줘 안타까울 뿐이다.

수용소에서 생활
걸을 때마다 철 울리는 소리를 내던 M.P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포로생활관이 보인다. 이 전시관에는 손가락만 한 인형들이 목욕, 이발 등 포로들의 평범한 생활을 재현하고 있다. 투명 유리막 안에 멈춰있는 그 당시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곳에 살았던 포로들과 평소 생각하던 포로의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포로들은 수용소에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대접받았으며 심지어 그들이 먹는 급식은 한국군 전투 요원보다 더 좋았다고 한다. 병사보다 나은 포로의 삶이라니. 팔만한 나무 주걱을 들고 포로들에게 줄 밥을 하는 병사가 안타까워 보였다.
‘포로수용소에 살던 포로들도 뜨개질 같은 취미를 즐겼을까?’ 같은 생각을 하며,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포로생포관이 보인다. 포로생포관은 조금 전 들렸던 포로생활관과 분위기가 정반대다. 전쟁 속에서 항복한 포로를 생포하는 과정을 실제 사이즈의 인형들로 재현했는데, 총을 겨눈 국군과 항복의 의사를 표시하며 걸어오는 북한군. 부서지고 불에 탄 건물들과 시민이 없는 거리는 전쟁의 참사를 보여준다. 떨어진 시멘트 가루까지 재현한 포로생포관은 빨간 불빛이 번쩍거리며 고통에 찬 신음, 살 떨리게 하는 서늘한 에어컨 바람을 통해 금방이라도 포로가 되어 잡혀갈 거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잊지 못하고 심란한 마음으로 포로수용소를 나오면 그 마음을 달래주듯이 탁 트인 광장이 보인다. 유적공원 주변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선 이 자리에서 보는 1951년 전경과 현재의 전경을 사진으로 비교했다. 논과 산, 막사밖에 없던 곳에 아파트가 들어선 모습을 보면, 산을 제외한 나머지 풍경이 같은 곳인지 몰라보게 변해있어 세월의 힘에 감탄하게 된다.

전쟁 속의 포로
다시 길을 따라 내려오면 포로생포관에서 생포된 포로가 이송된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LST에 승선하여 해상으로 옮겨져 거제 포로수용소까지 오는 포로들의 얼굴은 빛바랜 사진 너머로 잘 보이지 않지만, 살기 위해 억지로 힘내는 것처럼 보인다. 암울한 사진 전시 옆에는 이와 반대되는 분위기로 개천에서 시원하게 목욕하는 포로들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찍은 사진을 가지고 누가 잘 나왔고, 못 나왔고 떠들고 있으면, 그 아래에서 예상외의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지금까지 재현된 장면이 모두 남자 포로였기 때문에 여자 포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부 여자 포로도 남자 포로와 별다르지 않은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다시 밟은 고향 땅
여자포로관과 붙어있는 포로사상대립관은 조직화된 포로들 사이에서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대립을 보여준다. 이는 포로폭동체험관, 포로설득관으로 이어지며, 포로설득관에서는 포로 교환을 하기에 앞서 북한이 포로들에게 집요하게 귀환 압박을 가했단 것을 보여준다. 이 세 개의 전시관은 디오라마를 이용해 많은 포로를 데려가기 위한 양측의 싸움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넓기만 하던 전시관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시관을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웬 검은 기차가 보인다. 기차 모형에는 북측에 잡혀있던 포로들이 귀환하는 모습이 찍혀있다. 옛날 사진이라 특유의 칙칙한 느낌이 남아있지만, 귀환한 이들의 얼굴이 밝기만 해 내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이제 귀환한 이들은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로써 포로들이 잡히고, 생활하고, 싸우고, 돌아가기까지의 모든 전시 감상을 마쳤다.
이후로는 포로들의 야외 화장실과 야외 막사가 재현된 복원 ZONE, 평화파크 체험시설이 존재하는 평화 ZONE이 준비되어 있다. 평화 ZONE에서는 다른 구역에선 즐길 수 없었던 모노레일, 4D 영상관 무료상영, VR 체험, 어린이 평화 정원 등이 실내에 준비되어 있으니 꼭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전쟁 이후 누구도 알지 못한 포로들의 생활과 포로들 사이에서 일어난 유혈사태, 전쟁이 끝나고 포로에서 해방되었을 때의 기쁨은 이 유적공원에서밖에 볼 수 없다. 전시관을 통해 6.25 한국전쟁부터 포로들이 무사히 되돌아가기까지 과정을 보고 느끼면, 전쟁 뒤에 숨어있던 새로운 아픔을 발견할 수 있다. 전쟁은 시민들에게 아픔을 준다. 이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쟁에서 잡힌 포로의 아픔을 떠올릴 수 있다.
넓은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오늘도 새로운 걸 배웠다는 포만감과 별개로 처음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매점이 더위에 지쳐 겨우 보이기 시작한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러 홀린 듯 들어갔다가 나는 유적공원에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서 만난 아이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결제하면서 살짝 본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면서도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던 모양인지 처음과 같은 얼굴로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