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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안태선 취재팀장
  • 오피니언
  • 입력 2018.08.13 16:08

아버지의 일상

눈이 소복히 쌓인 2018년 1월의 신어산은, 이제 날씨는 어느덧 푸른색의 나뭇잎으로 뒤덮였다. 다가오는 휴가철을 앞두고 사람들은 더욱 박차를 가한다. 열심히 일하면서 미뤄두었던 휴식을 되찾기 위해서 사람들은 뜨겁게 움직인다. 휴식을 되찾으려 하는 이들의 일상에는 휴식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의 보이지 않는 행복을 위해서 모두가 현재의 행복은 챙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우리들에게 휴식은 일상 속이 아닌 일탈에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일상의 행복을 뒤로 미루는 것은 조직을 위해 당연한 것이 된다. 일상 속의 행복을 찾는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일탈이 되어버린 세태이다.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일탈에서 미뤄두었던 행복을 되찾는다. 동시에 우리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잊고 말았다. 과소비와 사치가 그 부작용이다. 조직을 위해서 일하던 이들은 행복마저도 타인의 기준을 채우기 위해 저울질한다. 어느새 통장 잔고와 행복의 양을 교환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비어가는 통장과 함께 마음속도 공허하게 변해간다.

일상 속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통장을 비워 사치를 부릴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찾는 것을 생애에 걸쳐 연습해야 할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음식을 먹거나,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날에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거나, 낮잠 자는 고양이의 털이 햇빛이 구워져서 나는 냄새를 맡는 것은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행복이다. 무릇 행복이란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향기와 색채, 소리와 맛이 가득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아버지는 일상 속에서 행복의 ‘맛’이라는 것을 훌륭하게 찾아내신 분이다.

얼마 전 퇴직하시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하신 아버지는 최근에 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나는 평생을 일을 하며 살아오신 아버지가 일을 놓지 못하고 다시 직장을 찾으실까 적지 않은 우려를 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해주신 김치찌개가 생각난다. 양을 조절하지 못하시고 한 솥 가득 끓여진 김치찌개는 결국 아버지와 내가 전부 먹기도 전에 상해서 버려지게 되었다. 라면과 김치찌개 정도를 할 줄 아셨던 아버지에게 그것은 큰 상심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반면에 한식학원에 다니시는 요즘은 능숙하게 육원전이나 북어 보프라기를 하얀 그릇에 플레이팅 하신다. 잔뜩 긴장하신 채 한식조리사 시험까지 응시하셨다. 그 육원전은 나에게 감회가 새로웠다. 아버지가 찾아내신 일상 속 행복을 목으로 넘긴다.

내 자신의 내부로부터 찾아 나선 행복을 이제는 가족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우선적으로 나의 여유와 행복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요리는 일탈이 아닌 일상이었다. 내가 바빠서 집에 내려가지 못하더라도 서운해 하시기보다는 요리 실력을 갈고 닦으시며 아들에게 실력을 선보일 기회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행복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그저 행복하다고 느꼈다. 고민하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아버지가 요리하신 맛있는 일상에 마음껏 몸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더 이상은 여느 사람들처럼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뤄놓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 일상의 행복은 마치 숨을 쉬는 것과 같아서 매 순간 들이 내쉬는 것을 반복해야지 한 달 치의 숨을 참아두었다가 한 번에 쉴 수는 없다. 여유를 가지면 자신을 둘러싼 작은 행복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행복이란 것은 무언가를 집어넣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안개와도 같은 은은한 일상 속에 자신을 적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노래의 제목이었던 비처럼, 음악처럼, 그리고 내 아버지의 요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