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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소진 법학과 박사
  • 입력 2018.08.13 16:07

그리고, with you.

낙태죄 폐지 측의 주장은 “성관계는 가지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자의에 의한 성관계는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원하지 않는 임신이라 보기는 어렵다.” 지난 5월 24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1항의 위헌여부를 심사하는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에서 법무부가 제출한 의견서의 일부이다. 한편 25일(현지 시각),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는 낙태를 금지하는 수정헌법 제8조의 폐지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66.4%의 찬성으로 낙태죄가 폐지되었다. 따라서 낙태한 여성을 최고 14년의 징역형에 처하는 헌법 조항을 폐지하고 정부는 임신 12주 이내 중절수술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 의견서에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은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과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 즉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으로 이해된다. 임신과 출산이 과연 개인의 책임 문제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은 차치하고, 법무부의 이러한 태도는 원하지 않는 임신일지라도, 낙태를 ‘원해서’ 하는 여성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데서 비롯된다. 모자보건법상 허용사유를 제외하고 낙태가 원칙적으로 형법상 죄인 나라에서 낙태로 인한 신체적 위험과 정신적 고통, 그리고 경제적 부담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더라도, 장담컨대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없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지를 묻고 들어야 한다. 그러나 법무부 의견서에는 임신을 하는 몸의 주체로서 여성의 목소리는 완전히 소거되어 있다. 아일랜드의 낙태죄 폐지운동은 사비타 할라파나바르(Savita Halappanavar)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촉발되었다. 2012년 유산 위험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사비타는 낙태시술을 거듭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채 숨을 거두게 되었다. 살고 싶은 사비타가 결국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말은 분노가 되었고 여성의 목소리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터져 나왔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미투(#Me Too)운동의 출발은 젠더폭력을 고발하고 증언하는 ‘말하기’였다. 한국에서 그 시작은 2018년 검사 서지현, 2009년 죽음으로 항변한 배우 장자연, 그리고 1991년 ‘위안부’ 피해를 처음으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까지, 여성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거슬러 가면 더 오래된 역사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여성의 말하기는 계속 되어왔지만 듣지 않았고, 또한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목소리를 우리가 함께(#With You)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 알베르 까뮈의 말을 빌려 다시 말하자면, “삶에는 두 가지 순간이 있다. 그것은 증언을 해야 할 때와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이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그 순간, ‘인권을 부르는 민주주의’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