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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민아 기자
  • 입력 2018.05.14 20:39

재벌 갑질의 근본적인 원인, '돈이면 다 된다'

끊이지 않는 재벌 갑질
원인은 황금만능주의
갑질 근절 '을의 반란'

최근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인 조양호의 부인이자 일우 재단 이사장인 이명희가 자택 리모델링 공사 작업자에게 “씨X 놈의 개XX 어유 X! 죽어라.”라고 폭언하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갑질 논란이 뜨거워지는 상황이다. 이는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전 전무 두 딸을 이어 대한 항공 총수 일가에서 세 번째로 일어난 갑질 사건이다. 첫째 딸 조 전 부사장은 4년 전 견과류 서비스 문제로 비행기를 회항시킨 ‘땅콩 회항’을, 셋째 딸 조 전 전무는 3월 16일 광고대행사 직원 두 명에게 음료를 뿌리고 업무 방해를 한 ‘물벼락 갑질’을 일으켰다.
세 모녀는 폭행·폭언을 일삼은 1차 갑질에서 멈추지 않고 사건을 막기 위해 갑이 가진 권력으로 을의 입을 막으려는 2차 갑질을 저질렀다. 땅콩 회항의 피해자인 박창진 전 사무장은 회사 측으로부터 거짓 진술을 강요당했으며, 불이익이 없을 거라는 대한 항공의 말과는 달리 수석 사무장에서 신입 승무원과 같은 위치까지 강등되었다. 물벼락 갑질 피해자인 두 직원 중 한 명은 처벌을 받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했으며 다른 한 명은 처벌을 받길 원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져 대한 항공에서 손쓴 게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또한, 이명희 갑질의 피해자인 운전기사의 입을 막기 위해 거액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라며 분노했다.
이와 같은 재벌의 갑질은 대한 항공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영화 ‘베테랑’의 기반인 물류회사 M&M 전 대표 최철원이 한 대에 100만 원, 살려달라고 말하자 한 대에 300만 원을 준다며 폭행을 한 ‘맷값 폭행’ 사건, 미스터 피자 창업주 정우현이 가맹점주에게 자신의 친인척 업체의 비싼 치즈를 팔아넘긴 ‘치즈 통행세 갑질’ 등 부조리한 일이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난다.
이런 재벌 갑질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근본적 원인으로는 환경적 요인, 사회적 분위기, 개인의 결함을 뽑을 수 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재벌이라는 ‘갑’의 환경에서 타인을 자신보다 인격적으로 아래로 대하는 것을 보고 자라와 당연하게 상대를 낮잡아 보는 행동을 한다. 또는 높은 위치까지 단숨에 올라와 주변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껴 자신이 가진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다. 재벌이 ‘슈퍼 갑’이 되는 것 역시 돈이면 다 된다는 사회의 황금만능주의가 영향을 끼친다. 이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백화점 고객은 직원에게 ‘내가 돈을 주고 물건을 샀다’, ‘네 월급이 나한테서 온다.’ 등의 이유로 갑질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연장자를 높이는 유교 사상 때문에 상사, 선배라는 위치가 존중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이는 직장 갑질, 군기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분노 조절 장애, 공감 능력 저하와 같은 개인적 결함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에선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하고 뒤에선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말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현재, 땅콩 회항으로 집행 유예를 받았던 조 전 부사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경영선에 복귀했다가 조 전 전무의 갑질 사건이 터지면서 두 자매 모두 직책에서 사퇴했다. 청원 사이트에서는 대한 항공의 ‘대한’과 태극 마크의 사용을 제지해야 한다는 청원이 지난 7일 기준 13만 명이 넘는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지난 4일 광화문에선 저항을 상징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대한 항공 직원과 시민들이 ‘조씨 일가 욕설 갑질, 못 참겠다 물러나라’, ‘자랑스런 대한항공, 사랑한다 대한항공, 지켜내자 대한항공!’를 외치며 대한 항공 총수 일가 퇴진을 외쳤다.
한편, 대한 항공 총수 일가는 갑질 논란에 이어 밀수 의혹까지 일면서 끝이 없는 물의를 빚는 상황이다. 부족함 없이 자란 ‘갑’의 횡포가 속속히 밝혀지고 재벌 갑질을 근절시키기 위해 그 누구도 아닌 ‘을’이 먼저 앞장서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을이 모여 일으킨 갑을 향한 반란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