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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안태선 취재팀장
  • 입력 2018.03.28 18:30

울리는 메아리가 작은 목소리를 매장하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옷 사이로 애써 가리려는 흉터처럼 보였다. 수많은 생채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물었다. 그 때문에 권위에 의한 폭력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생각돼 왔다. 그 상처는 진물을 내며 곪아왔다. 더럽다고 손가락질 받을까 두려워 깨끗한 옷가지 속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해시태그의 물결을 타고 소외당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곪아 터지다 못해 옷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진물을 보고 사람들은 더 이상 더럽다고 욕하지 않았다. 그 상처를 보고도 혐오스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감은 수많은 생채기를 옷 밖으로 보이지 못하도록 억압했던 권위자들에게 향했다. #Me too와 #With you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방증했다. 그 변화의 바람을 타고 우리 사회 속의 수많은 생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속삭임은 수많은 사회관계망에 부딪히며 메아리를 낳았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고래가 울 듯 서글픈 울음소리들은 인터넷이라는 바닷속으로 여과 없이 퍼져나갔다.
 그 진한 목소리가 가해자들에게도 깊은 바닷속에 남겨진 기분을 주었던 것일까. 성추행 혐의로 비난받던 조민기 씨가 목을 매고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여론의 시선과 손가락질에 의한 명백한 질식사였다. 명예를 회복할 기회도 가지지 못한 채 죄인이 스러졌다. 그 깊은 수압과 고래와도 같은 목소리에 위압되어 질식한 것이다. 목숨을 잃은 후에도 그는 편치 못했다. 가해자를 향하던 손가락은 방향을 잃고 사자의 가족까지도 깊은 바닷속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딸에게 불특정다수가 묻는다. 그가 딸에게도 성추행을 했느냐고 말이다. 이쯤 되면 누가 가해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그 공격성으로 인해 미투 운동은 정당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미투 운동 자체만으로는 사회를 치유하지 못한다.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기 전에는 아직 환부를 드러낸 것일 뿐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시급하다. 환부를 절개해 박혀있던 가시를 뽑아내고 다시 봉합, 소독한 후 아무는 것을 기다려야한다. 진통제도 먹어야 하며 정기적으로 잘 낫고 있는지 병원에도 가봐야 한다. 상처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그것이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안일하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도 평생 지고 가야할 흉터가 남을 수도 있다.
반면에 작금의 미디어는 어떠한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법적 공방과 같은 자극적인 아이템만 내보내고 있다. 그보다는 미투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제시해야 할 것이다. 흥미 본위로 관심을 가지다가 이내 질리자 이 화제를 내던져 버리는 것이야말로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2차 가해가 될 것이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미투 운동에 대한 한국의 지난 90일간의 검색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미투 운동이라는 화제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용감한 목소리들이 희미해지기 전에 화제에 대한 신속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동시에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과 이러한 사회문제의 원인을 해결할만한 법제화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미투 운동은 권위에 항거하는 위대한 사회적 운동이다. 부조리했던 사회에서 약자가 용기내어 목소리를 높였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진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분별한 여론은 드러낸 상처에 공감하기보다는 가해자를 공격하기를 원하고 있다. 수많은 벽에 튕겨진 메아리는 어느새 원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울리는 메아리를 뚫고 들어가 가장 처음 열렸던 입을 바라보자.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억압받던 생채기들이 진정 뭐라고 외치고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