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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문화상-수필 가작] 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김채경 바이오식품과학부
인제대신문 | 승인 2017.12.21 17:18

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김채경 바이오식품과학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니는 길은 그 길 위를 걸어가는 수많은 누군가에게 늘 밟히는 존재이다. 밟히고, 상처가 나고, 덧나고, 흉터가 남고 그러다 보면 그 자리를 새로운 길이라는 존재가 채우게 될 것이다. 길은 늘 이렇게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가 누군가를 돕고 지지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우리가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오르막길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이 길이 내리막길 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길은 그들이 이 힘든 오르막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좀 더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내려오는 내리막길에서는 행복한 미소를 띠며 웃을 수 있기를 늘 돕는다.

길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사연을 알고 있을 것이다. 늘 누군가를 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 위에서 축 처진 어깨를 보이며 흘리는 당신의 눈물을 받아주기도 하고,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당신이 넘어지지 않게 받쳐주기도 한다. 때론,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당신에게 나무 위에 있는 새와 상의하여 맑은 응원의 소리를 전해주기도 하고, 떨어져 있는 자그마한 나뭇잎과 상의해서 고요한 밤 외로이 걸어가는 당신에게 생동감 있는 위로의 소리를 전해주기도 한다. 길에게 있어서 자신의 자그마한 위로가 당신의 마음에 깃든 걸 알게 된다면 그것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당신의 표정에서 슬픔과 힘듦이 보이지만, 원하는 것을 이룬 뒤 내려오는 당신의 얼굴에서는 행복함과 기쁨이 나타난다면 길은 얼마나 기뻐할까. 그렇기 때문에 길은 자신이 밟히는 상황이라도 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길은 매일매일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만큼 알고 있는 게 많을 것이고 들은 것 또한 많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르게 생겼듯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연 또한 다를 것이다. 하지만 길은 그 모든 기쁘고, 슬프고, 아픈 사연을 어느 것 하나 묻지 않고, 투정 부리는 누군가를 한번 나무라지도 않고 다 들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길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때론, 많은 것을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길은 나에게 그 사람들에게서 들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며칠 전에는 고등학생이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수능과 대학입시가 코앞이어서 힘들어하는 수험생이라고 했다. 늦은 새벽 걸어가는 이 길에서조차도 졸음을 쫓으며, 하나라도 더 외우기 위해 손에 책을 들고 애쓰는 학생의 마음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나에게 말해주었다. 부모님의 기대, 선생님의 압박, 주변 친구들의 눈치, 12년 동안 자신의 노력에 눌린 학생의 어깨를 펴주고 싶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학원과 독서실을 갔다 오면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럼 스트레스를 풀 겨를도 없이 씻고, 자고, 다시 일어나 학교를 가기 바빴다. 그때는 모든 게 다 힘들었던 것 같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은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 정도인 삶을 살았을 때는 모든 것이 싫고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가 제일 힘들었지만, 제일 재밌고 행복했던 기억이기도 하다. 힘들어도 친구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면서 서로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공통적으로 힘든 부분을 찾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교복을 입었던 때가 그립게 되었고, 급식이라는 말이 추억으로 남아버렸으니 그때가 그리울 만도 한 것 같다.

어제는 취업준비생이 다녀갔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이 전부일 줄 알았던 학생이었는데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또 다른 장벽에 부딪혀 좌절해보였다고. 오늘 본 면접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문든 울리는 벨소리에 휴대전화를 본 그 사람이 갑자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고, 힘없이 툭 떨어진 손에 잡혀있는 휴대전화 적힌 이름은 ‘엄마’였다고 했다. 울리는 휴대전화 속 적힌 엄마라는 단어에 숨죽여 우는 당신을 보며 길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팔이 있다면 당신을 안아줬을 텐데.’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흐르는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며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아 라는 말을 해주었을 텐데’ 그러나 길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당신의 발을 지탱해주는 것. 가만히 그리고 묵묵히 당신을 지지해주는 것밖엔 없지만, 이것만이라도 당신에게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음식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주변 사람이 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길이 만난 취업준비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없이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늘은 약간 술에 취한 아버지가 들렸다고 했다. 아무도 자신을 반겨주지 않는 컴컴한 집으로 들어가기 싫었는지 가만히 서서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회사에서 쌓인 큰 스트레스를 가족과 함께 지내며 풀고 싶다는 바람은 이미 떠나간 지 오래인 듯, 외로이 길 한쪽에 서 있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다 이해해야할까. 아버지도 어렸을 때가 있었을 텐데, 힘든 날이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울며 위로받던 때가 있었을 텐데, 가장의 무게라는 게 아버지의 마음속에 큰 돌멩이처럼 들어 앉아 자꾸만 커져가는 게 보일 때마다 걱정이 든다며 말을 했다. 언제까지 저 돌이 커질지, 이러가 몸이라도 상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이건 아마 세상 대부분의 아버지가 공감할지도 모른다.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높은 위치로 올라가기 위해 청춘을 바치고, 이제야 겨우 안정이 되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할 때는 이미 늦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아버린 아버지. 그 마음은 깨달은 아버지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 우리 아버지도 이런 감정을 가지고 계셨구나.’라고. 그리고 어느 날 아버지의 어깨를 보았을 때 너무 작고 초라해진 모습을 보며 잘 해드리지 못한 미안함에, 너무 늦게 깨달은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길은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 이루고 내려오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세상의 모든 욕심과 힘든 일에서 벗어나 더 바랄게 없다는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오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면, 최선을 다했으니 잘 했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그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다고. 그것이 젊은 사업가든, 노부부의 모습이든 행복한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했다. 사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고, 원하고, 욕심내고, 그러다보면 결국 자신의 위치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는 것이 아니라 끌려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끌려 내려오는 사람 중에 웃으면서 내려오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니, 과연 웃으면서 끌려 내려오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고 내려오는 사람을 찾는 것은 그만큼 드문 일이기에 길은 그런 사람을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그 오랜 세월을 밟히는 것으로부터 견뎌가며 웃으면서 내려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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