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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서현(경북대학교) 국장
  • 입력 2017.11.27 17:06

불평을 허락하라

페이스북 페이지 ‘대신 말해드려요’에 동기, 선배, 교수 또는 대학 내 지인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연이 종종 올라온다. 사연을 읽은 학생들은 댓글로 분노하고, 모두 어디 과에서 발생한 사건인지 추정해본다. 신문사에서도 피해자를 만나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넣는다. 가까스로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지인에게 연락이 닿으면, 이미 피해사실이 주변에 알려지고 사후처리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이다. 그 또는 그들은 말한다. 이미 너무 지쳤다고. 학교도, 교수도, 학생 대표들도 피해자의 편이 아니었다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것이 없지만, 이 일이 다시 공론화돼서 더 큰 피해를 입을까 두렵다고 얘기한다.
이런 상황을 몇 번 마주할 때마다 속이 쓰리다.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이에 대한 조치를 원하면, 관련자들은 피해자를 우선으로 해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이 당연한 규칙이 대학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대학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인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외하고 대학 본부, 교수, 학생회, 그 외 지인 등은 관련자가 된다. 그런데 대학사회라는 이 유기적이고 내부적인 조직 내에서, 관련자들은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서둘러 덮고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다. 피해자는 주변으로부터 이러한 말들을 듣기도 한다. ‘아직 젊은 학생이니(네 스승이니) 네가 참아라’, ‘일을 더 키워봤자 법으로는 제대로 처벌도 안 될 텐데 너만 힘들 뿐이다’, ‘피해상황이 일어난 데에 네 책임도 어느 정도 있지 않느냐.’ 작년 11월, 고려대에서 “잘 살 것이다”라는 대자보가 붙었었다. 2년 전 초범에, 어린 대학생이고 지도교수와 선배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형을 감형 받은 가해자가 복학해 피해자와 함께 학교를 다니게 됐다는 사실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피해자가 조직에 안전하게 복귀하지 못하고 숨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어느 피해자가 대학에서 자신의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는가?
최근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이 지속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동안 쉬쉬했던 문제들이 표출되고, 여러 대학에 인권센터가 설립되고 있다는 건 그나마 긍정적인 현상들이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인권센터는 대학 본부에 속해 학교 측의 입장이 반영되기 쉬우며, 처벌 등에 대해 권한이 약하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인권을 침해 받거나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제대로 의지할 수 있는 기관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 성폭력 예방 교육도 선택적, 소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학 내 성폭력은 선후배 간, 사제 간에 발생하는 비율이 높은데, 대학생활, 성적, 취업 문제가 엮인 관계에서 많은 ‘권력형 성폭력’이 여전히 물 밑에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대학생 인권의 현주소는 열악하기만 하다. 대학이 바뀌려면 학생들이 본인의 권리를 당연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권리를 주장했을 때 불이익을 받거나 졸속적인 행정 처리 속에 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 이상 피해자가 숨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대학은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라. 학생들이 대학에 자유롭게 ‘불평’할 수 있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