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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공선경(국제경상학부)
  • 기획/특집
  • 입력 2017.10.31 16:31

[수필/당선] 고흐를 그리는 길

공선경(국제경상학부)

고흐를 그리는 길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고 한다. 당신도 그런 순간을 가지고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묻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순간에 고흐가 존재한다고 말할 것이다.
 세상에 반 고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현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가이자, 자신만의 화풍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에 쏟아낸 사람. 누구든 고흐의 그림을 한 번 보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우리는 그 이름을 미술 교과서를 통해 대부분 접할 것이다. 나 역시 고흐의 그림을 미술 시간에 보았으며,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고, 이 사람의 그림을 꼭 내 두 눈으로 보고야 말겠다고. 어린 날의 나는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고흐를 보러 가겠노라 결심했다.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나는 어른이 되었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고흐였다. 어린 날의 내 꿈을 말이다. 나는 길을 잃은 미아였고, 깜깜한 밤하늘 속에서 고흐라는 별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홀로 한국을 떠나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으로 고흐의 작품을 직접 보게 된 곳은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였다. 미술 교과서에서나 보던 수많은 작품을 보며 놀라움과 감탄을 내뱉으며 도착한 끝에 고흐의 해바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너무너무 훌륭해서 한 번 보고 나면 두 번 다시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나는 마주하고 만 것이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본 순간 나의 시간은 멈추었다. 그 작품에 완벽히 빠져들어 주변의 사람들도 소음도 멀어져가 고요함만을 느낄 수 있었다. 멍하니 서서 떠오른 생각은 하나. ‘이 세상 최고의 기분이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여행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반짝이는 기억 중의 하나가 될 것이고, 나는 지금 삶에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있는 것임을.
 벅차오름을 느끼며 내가 간 곳은 네덜란드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이었다. 반 고흐 미술관은 내가 고흐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늘 꿈꾸던 장소였다. 가장 고흐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있으며, ‘꽃이 핀 아몬드 나무’, ‘자화상’, ‘까마귀가 있는 밀밭’, ‘해바라기’ 같은 유명한 작품부터 고흐가 이런 그림도 그렸구나 싶은 일본풍의 그림들과 정물화, 풍경화, 남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의 원본까지 그야말로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어디를 보든 고흐의 그림으로 가득 찬 이곳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데리고 와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이다. 무엇보다 고흐의 친필 편지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많은 사람이 잘 모르겠지만 고흐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굉장히 잘 쓰는 사람이었다. 편지를 읽어보면 고흐는 화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훌륭한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향한 열정, 고뇌, 우울, 절망 등 다양한 감정이 적혀있다. 그중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나는 이 편지를 읽고 고흐가 단순히 나약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저 우울에만 빠져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도 자신의 그림을 사주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고흐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다. 적어도 자신이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었다.
 세 번째로 간 곳은 독일의 뮌헨 ‘노이에 피나코텍 미술관’이었다. 마침 그 날 비도 내려 미술관에 못 갈 뻔한 나는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고, 이곳에서 나는 또 다른 해바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화병에 담긴 해바라기 작품은 총 7점으로 하나는 개인 소장, 또 다른 하나는 세계 2차 대전 때 소실되어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해바라기는 총 5점이다. 그중 하나를 뮌헨의 작은 미술관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그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고흐의 그림은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구나. 나는 너를 이해해. 우울함을 간직한 우리 둘이 서로를 위로해 주자.’ 나를 일으켜 주진 않지만, 내가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나라로 고흐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활동했던 프랑스로 갔다. 오르세 미술관의 반 고흐 전시실에서 아름다운 하늘빛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내가 간 곳은 프랑스 남부의 아를이었다. 도착한 기차역에서부터 폭우가 쏟아져 이대로 마을을 제대로 못 보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숙소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해가 쨍쨍하게 떠서 하늘이 도와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파리와 달리 조용하고 작은 이 마을은 곳곳에서 고흐 그림 팻말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고흐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었다. 신기한 점은 바닥에 여행자의 모습이 그러진 이정표를 따라가면 고흐의 작품 배경이 등장하는 것이었다.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인 그 유명한 노란 카페부터 고흐가 스스로 들어간 노란빛의 정신병원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배경 론강, 고흐와 고갱이 함께 살았던 지금은 사라진 집터 등 고흐가 지나갔었던 길에 살며시 나의 발자국도 남겼다. 걷다 보면 드문드문 나와 같은 고흐를 보러 온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다들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꿈꾸던 고흐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며 죽음은 천상의 운송수단이라고 했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거라고. 비록 그는 어떤 운송수단으로도 별에 닿을 수 없어 가장 빨리 나는 비행기를 타고 가버렸지만, 저 하늘의 수많은 별과 같이 빛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대신 고흐가 남긴 그림이 어두운 밤에 보이지 않는 별을 찾는 우리에게 끝없는 별들을 보여주며, 감동을 준다. 마지막 일정으로 파리 북쪽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 고흐가 37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작은 마을이다. 가이드와 함께 간 이곳에서 고흐가 머물던 곳이자 마지막 숨을 거둔 ‘라부 여인숙’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지금은 여관이 아닌 고흐의 집으로서 관광객들이 방문하는데, 실제로 고흐가 머물렀던 방이 그대로 보존되어있었다. 가난했던 고흐는 가장 싼 방에 머물 수밖에 없었기에 침대만 달랑 있었던 아주 좁은 다락방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작은 마을 곳곳에 고흐가 배경으로 삼아 그림 그렸던 장소에는 고흐의 그림이 팻말로 세워져 있었다. 그때 당시의 그림과 거의 변화가 없는 풍경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닌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건 또 다른 특별한 순간이었다. 오베르 시청, 오베르 교회, 까마귀가 있는 밀밭 작품들의 풍경을 지나면 마을 공동묘지에 도착한다. 여기에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무덤이 나란히 안치되어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고 조용한 장소에 그가 있었다. 말 없는 그에게 속삭이듯 말해본다. “당신을 사랑해왔다고 말할 순간을 기다려왔어요.”
 소중한 추억을 안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가까운 일본 도쿄에 고흐의 해바라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6월 도쿄로 떠났다. 신주쿠 손보재팬 건물 42층에 있는 ‘도고 세이지 미술관‘. 이 미술관의 가장 마지막 유리관 속에 세잔, 고흐, 고갱의 작품 3점이 나란히 전시되어있다. 약 1년 만에 만난 해바라기는 유럽에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한참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오랜 세월 사랑받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볼 때마다 그 감회가 새롭고 느끼는 바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흐의 그림처럼 말이다. 작년, 올해, 그리고 미래에 다른 시간, 다른 경험을 토대로 나는 또 고흐의 그림을 만날 것이다.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그 느낌은 모두 똑같이 소중하며, 여전히 고흐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수필 당선 소감>

공선경 국제경상학부

먼저, 인제대신문사에서 주최한 제34회 인제문화상 수필부문에 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고흐에 대한 글로 좋은 소식을 얻어서 기쁘고,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주제인 ‘길’을 처음 보았을 때 여러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작년 고흐를 만나러 유럽에 갔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고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무것도 몰랐을 때 오직 그림 하나가 좋아서 그에게 반하고, 그 뒤로 고흐를 알아가며 헤어날 수 없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다 작년 고흐를 만나며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고흐를 만나러 가기 전의 저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인지 고민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넓은 세상 오직 한 사람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는 것을 통해 단순히 그가 걸었던 길을 되밟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여행을 통해 우리에게 때로는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고흐의 길을 따라 걸으면 느꼈던 감정은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담아 글을 써 내려갔지만 아름다운 고흐의 그림과 삶을 완벽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말을, 고흐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문장을, 글을 적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조금 더 저의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이 수필을 쓰면서 저의 여행을 되돌아보며 설레었던 저의 감정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마음속에 되돌아볼 수 있는 반짝이는 특정한 추억을 여러분도 가지고 있길 바랍니다. 또 저처럼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고흐를 보러 떠날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이 공감과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큰 상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더더욱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