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인문문화융합학부 심지원
  • 입력 2017.05.29 15:13
  • 수정 2017.06.02 13:23

쉐프가 주방장보다 대우받는 나라

학창시절 선생님들은 ‘서양은 안 그러는데 우리나라는 … ’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더 나은 세상이 그곳에 있고, 더 많은 걸 배 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독일유학길에 올 랐다. 막상 경험하게 된 독일은 ‘더 나은 나 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 였을 뿐이었다. 20 년 전에 선생님들에게서 들었던 같은 말을 20년이 지난 지금 학생들에게서 듣곤 한다. ‘서양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 ’ 수업 시간에 학생의 질문이나 발언을 보면 우리 는 이류시민이라는 굴레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우리는 여 전히 서양으로부터 배우기만 해야 하는가?

내 견해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편견도 많다. 서양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 고 우리나라 학생들은 불평이 많다는 것이 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매일 토익과 토플 에 매진해야 하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번 역서로 외국 문화적 배경을 전제로 하는 글을 읽어야 하는 것은 왜 고려하지 않는 가? 다른 한편에서는 서양 학생들에겐 공 부가 중요하지 않단다. 자신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산단다. 미국의 사 교육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 면서도 말이다. 미국의 인종차별, 독일의 극우단체, 프랑스의 이슬람문화에 대한 탄 압을 매일 뉴스로 접하면서도 우리는 서 구의 비차별적인 문화를 배워야한단다. 인 구 30, 40만인 유럽 도시를 구경하고 천만 이 넘는 서울에 살면서 그들은 경적을 내지 않는단다. 우리나라 인구 30, 40만이 사는 곳의 여유로움은 잊은 채 말이다. 그린워싱 (Greenwashing), 업싸이클링(Upcycling)과 같은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학문을 한다고 착각하고, 도깨비대신 좀비가 다보탑보다 에펠탑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우리에게 서 유럽이나 미국에는 유토피아가 있을 것 이라고 믿는 헛된 환상이 깨지지 않는 것이 위안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느닷없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자는 것이 아니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매일 일 어나는 나라이기에 분명 고치고 개선해야 할 것들이 많다. 비판적 시각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림대중이나 환상에 근거한 서양을 기준으로 한 비판은 한국에 대한 단순 한 매도일 뿐이고, 그 이면에는 맹목적인 추종이 자리 잡고 있을 위험성이 있다. 단 순한 매도와 맹목적인 추종 사이의 좁은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검은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회색에 머물 러야 하는 것은 고통일 수 있다. 하지만 아 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그 외롭고 좁 은 회색의 길을 당분간 걸어가야 할 운명 이 우리 학생들이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 다. 그 힘든 길을 걸어가야 하는 학생들의 고단함을 알지만 건투를 비는 마음에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쉐프와 주방장은 같은 직종을 표현하는 다른 말이다. 쉐프 가 주방장이고, 주방장이 쉐프다. 그걸 이 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어렵지도 않다. 조선시대에도 한자어가 한글보다 대 우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보면 얼마나 어처구니없었는지는 너무나 자명하고 부 끄럽기까지 하다. 또 시대가 흐르면 누군 가는 쉐프와 주방장을 다르게 썼던 우리를 보며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