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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폭동이라 불렸던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

 

반갑구먼 반가워요 미역이야! 어느덧 벌써 개강한 지 두 달이나 지나 5월이 찾아왔어.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도 불리지? 하지만 그 이름처럼 마냥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야. 대표적인 예로 1980년에 일어난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어. 광주민주화운동은 조속한 민주 정부의 수립과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를 요구한 민주화운동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이를 주제로 제작된 ‘화려한 휴가(2007)’라는 영화를 소개해줄까 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지만, 몇 가지 잘못된 사실과 왜곡이 숨어있어. 또한 오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누구의 희생으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 가슴 아픈 과정도 살펴보자.

서울의 봄, 피어나다
우리나라에선 1980년에 전국적으로 ‘서울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산발적인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어. 이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있었던 민주화운동인 ‘프라하의 봄’에 비유한 거라고 해. 유신체제가 붕괴하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12ㆍ12사태(신군부 쿠데타)가 발발했고, 그들은 신군부 세력에 저항하는 국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계엄령(戒嚴令)을 발령했어. 그러나 다수의 시민이 이를 반대하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지. 특히 광주에서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고, 이에 신군부는 5월 14일부터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집회와 시위를 진압하기로 결정해. 이후 신군부가 5ㆍ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하자, 다음날 광주의 대학생들은 계엄령과 휴교령 해제를 외치며 저항했어. 그러나 시위진압이라고 치기엔 너무 무자비한 계엄군의 폭력진압에 모두 끌려가거나 도망갈 수밖에 없었지. 또한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공수부대 일명 ‘계엄군’들은 길을 가던 사람들도 붙잡아 구타했고, 그 대상은 행인, 노약자, 여성을 가리지 않았어.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자 분노한 광주의 일반 시민들과 고등학생들까지 민주화 요구 시위에 합류하기 시작했어. 시위대의 규모는 점점 커져갔지.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몇 가지
영화에선 생략됐던 몇 가지 사건들이 있어. 먼저 20일 밤 언론은 계엄군의 무차별한 학살이 아닌 시위대를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으로 보도했고, 이에 격분한 사람들이 광주 KBS 방송국을 방화했어. 이때 바로 계엄군들이 시위대를 상대로 최초 발포를 했다고 해.
그리고 두 번째는 21일 아침에 전남 도지사가 당일 정오까지 계엄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는데, 계엄군이 정오가 되어도 물러나질 않자 일부 시민들이 아시아자동차의 공장에서 군용 트럭과 장갑차를 탈취해 광주시내로 몰고 들어온 사건이야. 시민들이 끌고 온 이 장갑차에 계엄군 한 명이 깔려 죽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 사건은 계엄군이 후퇴하면서 발생한 사고라고 밝혀졌어.

열흘간의 투쟁, 화려한 휴가
1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위대와 계엄군의 대치는 21일에 절정에 달했어. 21일 오후 1시 상부에서 발포명령이 떨어지자 도청 앞 계엄군은 시위대를 향해 집단 발포를 시작했고, 이로 인해 54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치는 끔찍한 참상이 벌어졌어. 병원은 환자들과 헌혈자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지.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경찰서와 파출소의 예비군 무기고를 열어 무장했고, ‘시민군’을 결성해서 싸웠어.
그러나 22일부터 계엄군은 광주외곽봉쇄작전을 펼치며 광주를 완전히 고립시켰고,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사건, 송암동 학살 등과 같이 무차별적으로 시민에게 총을 쏴댔지. 끝까지 투쟁하기로 결심한 시민군 200여 명은 5월 27일 도청에서 마지막까지 항전했어. 그러나 1시간 만에 도청은 진압됐고, 도청 작전 당시 사망자는 여전히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해.
이렇게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은 국내 신문과 방송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고, 단지 불순분자들과 이에 동조하는 불량배들이 벌인 책동으로 보도됐어. 그리고 같은 해 9월 1일 전두환은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지. 오늘날 벌을 받아야 마땅한 가해자는 자신을 피해자라며 회고록을 내고, 진짜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오히려 고통받고 있다는 게 바로 우리나라의 현실이야.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거고 그날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나는 믿어.    장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