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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광대가 왕에게 묻는다

반갑수다~ 난 2주만에 돌아온 미역이오다! 오늘은 ‘연산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여러분들은 혹시 2005년 12월 29일에 개봉한 <왕의 남자> 영화를 아니? <왕의 남자>는 국내영화시장에서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브로맨스 영화로도 굉장히 유명하지.
본 영화는 <이(爾)>라는 연극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는데, 원작은 <연산군일기> 60권 22장에 기록된 “공길이라는 광대가 왕에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가 있으랴’ 하였다가 참형을 당했다”는 문장 한 줄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라고 해. 그렇다면 영화 속 다른 이야기는 다 거짓일까? 또, 공길이가 저렇게 말한 연산군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걸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평범했던 시절
조선왕조 500년간 재위한 27명의 왕 중 반정(反政)된 4명이 있어. 특히, 조선 제10대 왕이었던 ‘연산군’(燕山君, 1476~1506)은 음행과 희대의 폭군으로 알려져 있지. 그런데 사실 연산군이 즉위 초부터 폭정을 한건 아니야. 오히려 1494년 23세에 왕으로 즉위한 그는 재위 초기에 국정을 돌봤고, 정치개혁에 힘썼다고 해. 또한, 아버지 성종(成宗)이 대신들에게 밀려 왕권을 강화하지 못했다면, 아들 연산군은 왕권을 확립하고 국방에 주력하며 빈민을 구제했어. 그는 아버지처럼 휘둘리는 것을 원치 않아서, 신하들을 잘 통제했던 할아버지 ‘세조’를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해.

 

임금이 임금답지 않으니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가 있으랴

 

어머니와 왕권강화, 진실은?
영화에서 다루는 부분은 바로 갑자사화(甲子士禍)야. 극 중 광대들이 여인들의 암투로 인해 왕이 후궁에게 사약을 내리는 경극을 연기 했을 때, 연산군은 어머니를 떠올리고 눈물을 흘리며 성종의 두 후궁을 죽이고 궁궐을 피바다로 만들어. 그러나 이건 픽션이야.
 연산군은 1498년(연산군 4년) 음력 7월에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켰고, 1504년(연산군 10년)에는 폐비 윤씨의 추숭을 시도하였으나 대신들이 반대하자 갑자사화를 일으켜. 평범한 왕이었던 그가 갑자기 변하게 된 계기가 ‘친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하지만 폐비 윤씨 사건은 그의 나이 7살 때 일어난 일이고, 재위 1년에 그가 성종의 가족사를 적어놓은《행장록(行狀錄)을 읽고 밥을 물렸다는 기록도 있어. 즉, 이미 그가 비밀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현대에는 왕권강화를 위해서 두 번의 사화를 일으키기 위한 ‘명분’이었을 거라고 추측을 하고 있어.
 실제 갑자사화는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의 전말을 들은 연산군이 친모의 억울함을 풀겠다는 명분으로 239명의 비판세력 대신들을 숙청한 사건이야. 또한 어머니를 모함한 성종의 후궁들인 정 귀인과 엄 귀인의 얼굴을 가리고, 그녀들의 아들에게 ‘죄인을 매질하라’고 명령해. 이후 곧바로 조모인 인수대비에게 달려가 술을 권하면서 “대비는 어찌하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라고 물어. 결국, 계모 두명을 갈갈이 찢어 죽여 산에 버리고, 두 이복 형제를 귀양보내어 사사시켜. 이에 몸이 편치 않았던 인수대비는 연산군의 패륜에 큰 충격을 받고 얼마안가 눈을 감았어.

중종 반정, 왕에서 군으로
영화 속 연산군은 애정을 갈구하는 비운의 왕으로 나오지만, 그렇게 볼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어. 갑자사화 이후, 대신들과 토론하던 경연을 없애고, 성균관은 폐쇄하고 그곳을 사냥터로 만들었어. 또한, 향락에 빠져서 예쁘고 노래 잘하는 여자를 많이 뽑아서 ‘흥청’이라 불렀는데, 이는 ‘흥청망청’의 어원이 돼. 1504년 8월에는 금표(禁標)를 확대해 경기도 일원의 민가를 철거하라는 명을 내려서 왕의 사냥터로 만들어버려.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는 글이 한글로 쓰였다고 해서 한글 학습을 탄압하고 한글 간행 서적을 불사르기도 했지.
 결국, 1506년 9월 2일 박원종과 유자광을 중심으로 중종반정이 일어났고, 민가로 도망쳤지만 끝내 잡히고 말아. 그리고 왕에서 군으로 반정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가고, 몇 달 만에 병사했지. 연산군은 흥청망청 자신의 권력을 뜻대로 다루다가 끝내 비참하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