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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

고종 황제가 사랑했던 커피의 진실

안녕~ 미역이야! 이번에는 특이하게 고종과 연관된 ‘커피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까 해.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건 커피가 발견된 지 100여 년 후의 이야기야.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의 남서부 ‘카파’에서 여러 나라로 커피가 퍼져나갔고, 각국의 언어로 커피를 부르는 명칭이 생겼어.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보급되었을 땐, 고위관리들이 영어(coffee)를 한자로 써서 ‘가비(加比)’, ‘가배(伽排)’ 등으로 불렀다고 해. 또한 색깔과 맛이 탕약과 비슷해서 서양에서 들어온 탕 ‘양탕(洋湯)’이라는 이름을 붙였어. 다만, 커피는 굉장히 비싼 서양물건이라서 고위층만이 마실 수 있는 최상급 상품이었지.
그렇다면 혹시 한국에 커피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들은 적 있니? 몇몇 기록에 따르면 고종 황제가 최초로 커피를 마셨고, 그때 한국으로 커피가 수입됐다고 해.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일까?

<가비를 마신 최초의 한국인 고종?>
혹시 영화 ‘가비’를 본 적 있니? 2012년 3월 15일(목) 개봉한 영화인데,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 고종과 커피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야. 여기서 고종은 1895년 일제의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이후, 일제의 삼엄한 감시에 목숨의 위협을 느꼈어. 그래서 1896년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도움을 받아 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어. 이는 영화의 원작 ‘노서아가비’ 소설책 배경이며, 내용은 개화기 커피를 즐기던 고종과 그의 여자 바리스타 따냐 그리고 그녀의 사기꾼 연인 이반의 이야기야.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잘못 전해진 한국 커피의 역사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어. 물론 고종이 커피를 굉장히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며, 실제로 커피로 독살당할 뻔한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커피를 접했다”와 “고종 황제가 외교 사절들과 함께 커피와 연회를 즐기기 위해 정관헌을 지었다” 등의 말은 그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사실 이미 궁중에서는 아관파천 이전에 커피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또한, 실제로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한편, 조선인의 커피 음용에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어. 여기서 그는 1883년에 조미수호통상사절단을 미국으로 수행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조선 고위관리와 함께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며 “우리는 다시 누대 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다”고 회상해. 이 기록은 아관파천보다 13년 정도 이전의 일이었어. 또 3년간 의료선교사로 일했던 알렌은 그의 일기에 “어의(御醫)로서 궁중에 드나들 때 시종들로부터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글을 남겼어. 이미 조선 왕실 궁중에서는 커피가 유통되고 있었고, 귀족들 사이에서는 최상급 상품이었던 거지.

<서양식 카페, 정관헌?>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관파천 후 1년 만에 환궁한 고종이 궁궐에 ‘정관헌(靜觀軒)’이라는 ‘서양식 카페’를 지었다고 알려진 것도 잘못된 사실이야. 역사 자료 중 어디에서도 정관헌이 커피를 마시거나 연회를 열었던 곳이라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아. 연구자의 말론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정관헌은 연유를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볼 수 없고, 확인된 기록으로는 역대 왕의 어진을 모시고 제례를 지낸 신성한 공간이었다고 해. 이러한 제례식 건물은 대체로 사방이 꽉 막혀있는 형태였지만, 현재 정관헌은 사방이 뚫려있는 개방적인 모습이라고 해. 그 이유는 일제의 궁궐 공원화로 인한 훼손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커.
세간에 떠도는 고종황제와 커피의 독특한 첫 만남은 근거 없는 헛소문이었어. 이미 예전부터 조선은 서양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천천히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였던 거야. 쇄국정책이 대체 무슨 소용이었을까? 이번에는 특이하게 인물이 아닌 커피의 진짜 역사를 알아봤어. 커피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커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