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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정치외교학과 김민주
  • 미분류
  • 입력 2017.03.02 16:31

가을의 기억

캐나다에서의 여름과 가을, 미국 에서의 겨울을 보내고 한국 에 도착하니 설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는 감격의 순간에 그동안의 기억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간다고들 하지만, 나의 기억은 나를 비껴 지나갔나보다. 아쉬움이 온점으로 찍혀있다.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오는 만큼, 그 이면에 가려져있던 기대감은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마주 한 괴리감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떠올리 자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 반.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 반.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한국에서의 생활과 다 르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표를 따라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을 이동해야 했고, 떨림과 역 시 동반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처 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 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 만큼 많은 친구를 만나고 경험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마음 맞았던 친구 를 만나 정말 즐겁게 생활했다. 돌이켜보면 절대로 잊지 못할 만큼.

 

▲ 퀘벡 시티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샤토 프롱트낙 호텔 / 가운데 김민주 (정치외교ㆍ14)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와 달랐던 점은, 학교를 마친 오후시간에 취업을 걱정하지 않 아도 되는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하루 일 과 중 하나가 오늘은 무엇을 하며 지낼까하 는 고민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주로 집 뒤 편 강으로 갔다. 혼자 강을 따라 난 산책길 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그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날이 좋은 날엔 햇빛을 쬐고 카약을 탔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립다. 가족과 함 께 산책 나온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나 또 한 그들과 다르지 않은, 그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처럼 그곳에서 보 내는 시간들을 특별한 무언가로 채우기 보다 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나를 채워주기를 바랬던 나날들이었다.

 

▲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여행 중, L'atelier-퀘벡 시티에 있는 펍 가게


 어느 나라를 가던 분명 그건 값진 경험이 겠지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그 곳에서 보낸 경험의 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 다. 만약 나와 같이 어학연수를 통해 외국에 서 생활하게 된다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 다. 분명 교환학생과 어학연수는 그 나름대 로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교환학생은 현 지 학생들과 전공 수업을 함께 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실력을 미리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학연수에 비해 본국의 언어와 문화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어학연수의 경우, 보통 학교 나 어학원을 통해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현지 학생들과 수업을 함께 듣는 것이 아닌, 자신과 같이 언어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 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다. 현지 대 학에서 개설한 어학 프로그램이나 어학원에 서 운영하는 학원에서 자신의 실력에 따라 나뉜 반에서 함께 언어를 배우게 된다. 전공 수업에 비해 본국에서 언어를 중점적으로 배 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도 현지 학생들과는 수업을 듣지 않기 때문 에 현지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단점이 있 다. 나의 경우에도 당시 환경에서 영어를 모 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학교 선생님과, 홈 스테이 주인밖에 없어 한계를 느끼기도 했 다. 이렇듯 두 방법 모두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지만, 직접 어학연수를 경험해본 나의 입장에서는 어학연수보다 교환학생을추천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을 현지에 가서 배우기보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 다음, 현지에서 활용 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모두 효과적으로 사 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어 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배우러 간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가진 능력을 활용하 러 간다는 마인드를 가진다면 자신이 바라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토론토 중심에 위치하는 구시청 건물


  캐나다에서 머무를 당시 학교를 통한 홈스테이 가정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어학연수생일 경우 현지 문화와 언어를 쉽게 접하고 공유 할 수 있다는 점에선 분명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하지 만 홈스테이를 신청하는 가 족 중 많은 가구가 생계를 보태기 위해 학생을 받는 경우가 많아, 홈스테이 학생을 가족이나 친구로 생각하기 보다는 단 지 생계 수단으로 여길 수 있어 이에 기대했 던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나또 한 내가 지냈던 가정에서 나를 가족의 일원 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수단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의 경우, 학생 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거나 호스트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등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홈스테이를 신청하지 않는 경우, 학교 의 기숙사나 자취를 할 수 있는데, 이때에는 홈스테이와 같이 집을 공유해야 하는 대신 개인의 공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하지만 홈스테이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 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 어 외로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부 터 기숙사나 자취를 시작하기보다, 홈스테이를 선택할 수 있다면 직접 경험한 뒤 판단하 는 것이 좋은 결정이라 말해주고 싶다.

 

▲프티샹플랭으로 가는 계단에서 바라본 샤토 프롱트낙 호텔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중간고사가 끝난 뒤, 수업을 시작하기 전 1주일간의 휴가를 준다. 이를 “Reading week” 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책을 읽으며 관심 이 있는 분야를 공부하거나, 미뤄왔던 것들 을 할 수 있는 여유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 주간동안 “퀘벡”을 다녀오게 되었 다. 하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느라, 책을 읽기는커녕 그대로 들고 오게 되었다. 아마 학교생활을 떠나, 캐나다에서 보낸 시간 중 가장 좋았 던 순간을 꼽자면, 이때를 꼽을 수 있지 않 을까. 캐나다의 가을을 직접 느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 던 건 행운이 아니었을까. 그곳을 계속 기억 하고 싶은 건 퀘벡이라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들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5달이란 시간은 그 결과가 마음에 들든 들 지 않았든, 내겐 너무나도 값진 경험이 되었 다. 모든 것이 계획된 대로 흘러가진 않는 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내 나 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모습들 이 있었기에 또 하나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유학 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수많은 외국인 친구 들을 사귀고 항상 파티에 초대되는 생활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 핸드폰을 개통하는 것, 계좌를 개설하는 것조차도 모두 낯설고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 모험이 된다. 막상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지만, 이런 일들이 또 다른 새로운 모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일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활이 었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던 고마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