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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장수정
  • 미역(美曆)
  • 입력 2016.11.09 18:32
  • 수정 2017.02.02 22:16

<광해군>

엇갈리는 평가, 선군인가 폭군인가?

안녕! 일주일 만에 찾아온 미역이야! 나라가 시끌벅적하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지? 오늘은 광해군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2012년 9월 13일에 <광해 :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어. 영화와 달리 역사적 기록 속의 광해군(光海君, 1575~1641)은 연산군처럼 폭군으로 알려져 있는 조선의 제15대 임금이야. 『조선왕조실록』에서 그는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왕후를 유폐시킨 ‘폐모살제(廢母殺弟)’ 같은 폐륜적 행위와 사대의 예를 지키지 않은 외교정책을 펼쳤다는 명목으로 폐위되었다고 나와 있어. 심지어 왕이 죽고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붙이는 묘호조차 논의되지 않았어. 하지만 그 당시의 기록은 승자의 시점에서 쓰여진 기록이며, 역사적 왜곡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아들이 부담스러워요>
선조는 40세가 넘도록 세자를 책봉하지 않다가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급한 마음에 결국 후궁 소생의 처남이었던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게 돼. 그러나 광해군이 국정을 적임하자 전쟁의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어. 전쟁 기간 중 의주로 도망간 선조가 조정을 둘로 나누고, 광해군은 함경도·경상도·전라도를 돌면서 민심을 수습했어. 또한 직접 군량을 모으고 군기를 조달하는 등 도탄에 빠진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온 힘을 다했어.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기량을 보이면서 입지를 단단히 다졌음에도 정작 아버지 선조는 그런 광해군을 못마땅하게 여겼어. 선조는 광해군의 활약이 클수록 그 존재감을 부담스러워 했고, 세자를 견제하고 경계했어. 또한 선조는 후궁 인빈 김 씨를 총애했고 그녀의 아들 신성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싶어 했어. 광해군이 똑똑하고 세자의 자리에 적임임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신성군에게 있었던 거지. 선조는 신성군이 피난길에 병사하자 1606년 인목왕후가 낳은 영창대군을 세자로 옹립하는 등 광해군에 대한 적대심을 계속해서 보였어.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곱절
천곱절 더 중요하단 말이오!

 

<실리적 외교 vs 사대의 예>
현대에 광해군이 재해석되면서 그가 이룬 업적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부분은 ‘외교활동’이야. 1616년에 후금과 전쟁 중이던 명나라에서 조선의 군사를 요청해. 조선의 입장에선 동북아시아 패권을 장악한 명나라를 거스를 수도, 엄청난 군사력을 앞세운 후금과 맞설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지. 조정에서는 광해군에게 명에 대한 사대의 예를 다해야 한다며 출정을 요청했어.
하지만 임진왜란 때 백성들의 삶과 무너지는 나라의 참상을 본 적 있던 광해군은 통역관 강홍립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군사 2만 명과 함께 은밀한 서신 하나를 전해. 그 밀서엔 “때를 보아 투항하라”라는 내용이 적혀있었어. 그래서 명군과 함께 싸우다 적에게 포위된 조선군은 후금의 강화요청에 순순히 항복하여 ‘후금과 싸우기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표해. 광해군의 중립적 외교를 통해서 후금은 조선침공을 유보하고, 조선은 극적으로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이외에도 대동법 시행, 정비 궁궐과 종묘 재건 등 많은 업적을 남겼고 백성들로부터 마음을 얻었지.

<무너진 도덕성, 무너진 광해군>
이런 그가 가장 비판받는 부분은 왕권을 위협하는 자들을 모조리 처단했다는 점이야. 심지어 그는 자신의 형 임해군이 왕권에 욕심을 보이자 유배를 보내어 사사시켰어. 또한 인목대비의 친아버지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만들려 하자 역모죄로 처형하고, 영창대군을 교동에 유배 보내어 어린 나이에 죽게 만들어. 인목대비 역시 폐비가 되어 서궁에 유폐되었어.
또한 궁궐 건설로 민생을 어지럽혔고, 이이첨 세력을 총애해 그들의 전횡을 막지 못했어. 이때부터 민심과 광해군 정권의 도덕성이 무너져버렸지. 결국 1623년 인조와 서인세력을 중심으로 인조반정이 일어나 아들과 함께 강화도를 거쳐 제주도에 유배되고 그곳에서 죽고 말아.
그 당시에 왕권에 대한 위협은 왕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었어. 어떻게 보면 그가 살기 위해선 그들을 죽여야만 했던 걸지도 몰라. 여전히 현대적인 관점에서 광해군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해. 그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 각자에게 맡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