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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양민주 문리과대 행정실 과장
  • 입력 2016.09.12 16:56
  • 수정 2016.09.12 17:38

[모니터링]신문읽기의 즐거움 또는 괴로움

신문이란 어느 것을 막론하고 큰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설령 정보와 지식을 줄지언정 다감한 정을 느낄만한 구석을 찾기란 쉽지 않다.

큰 즐거움을 주지도 않는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충이야 오죽하랴 싶다. 또 그것을 붙들고 모니터링을 한답시고 횡설수설하는 나도 그리 즐거운 편은 아니다. 하여 내 의견이 전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도 없고 의견을 반영해 달라는 말은 죽어도 못하겠다. 그저 적당한 깜냥의 개인 의견으로 치부해도 좋을 터, 무시해도 무언으로 대답할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각설하고 현재 인제대신문은 변하고 있다. 제호의 로고가 변했고 일부 신문을 만드는 기자들이 바뀌었으며 성향도 어딘지 모르게 새로운 감이 든다. 이러한 감이 좋고 나쁨의 기준은 아니다. 379호와 380호의 차이로 봐야 한다. 신문이란 이렇게 알게 모르게 변해가는 매체이다.

그래서 신문을 만드는 기자도 읽는 독자도 함부로 내용을 간과하기가 어렵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즐거운 기사도 있고 괴로운 기사도 있을 것이다. 이 감정에 따라 380호를 차례대로 읽어 볼 참이다. 혹 엉터리로 읽는다 한들 앞에서 밝혔듯이 개인의 의견이며 이 또한 나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1면의 ‘일그러진 수강전쟁’ 나름 즐거웠다. 수강신청은 매 학기 치르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있을까? 이러한 과정에서 삶을 터득하는 법이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꿀강의’가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 “수강신청에 있어 지성인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 달라”는 것, 이게 답일지도 모른다.

2, 3면의 보도도 즐겁게 읽었다. 발로 뛴 기사작성으로 땀이 스며들어 살아있는 기사로 읽혔다.

4, 5면의 대학기획은 ‘신토익’과 ‘3D 프린터’에 관한 기사로 약간의 괴로움이 있었다. 이유는 내가 기성세대이면서 영어와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과 문학을 좋아한다는 편향된 생각일 수 있다. 이점을 고려하더라도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무거운 느낌을 받은 건 사실이다.

6, 7면의 총장 간담회는 가장 즐겁게 읽었다. 프라임사업 선정 내용과 대학 구성원의 소통을 논하고 우리 학교의 동향을 알려주어 재미가 있었다. “앞으로도 초심 잃지 않고 학생들과 원활한 소통을 해나가도록 노력하겠다”는 총장님의 말씀처럼 간담회 자체가 소통의 장이었고 그 소통의 장으로 말미암아 신문사에도 큰 이득이 있었으리라고 짐작해 본다.

8, 9면의 특집과 문화면은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무한도전, 얼만큼 알고 있니?’에서 대학생 또래의 관심사항으로 이 기사를 썼다고 본다. 그러나 제목에서 ‘무한도전’ 대신에 최근 이슈가 된, 걸 그룹의 역사의식을 고려한 ‘우리 근대사’나 입시 철을 맞은 ‘우리 학교’나 ‘핵’, ‘기후’ 등 시의성(時宜性)이 있는 내용으로 치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이 정도의 기사작성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얼만큼’은 ‘얼마큼’이나 ‘얼마만큼’이 맞다. ‘내 돈, 내 시간, 내가 쓰며 즐긴다’에서는 ‘혼족’에 대해 썼다. 작은 제목에서 ‘혼족은 혼자만의 자유를 즐기는 사람이다’와 ‘혼족은 외롭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다’를 두고 보았을 때 ‘혼자만의 자유를 즐기는 사람을 위로해야 한다’라고 읽힌다. 이는 모순이다. 기사를 꼼꼼히 다 읽고 나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바른 의견과 반대된 의견을 썼다면 그다음은 합일에 이르는 의견도 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 상치되는 제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10, 11면의 여론은 내가 선호하는 면으로 즐겁고 유익하게 읽었다. 한마디만 하면 문장에 대해서다. 사설에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 계층에 대해서는”을 “에너지 사용이 많은 계층에 대해서는” 정도로 쉽게 읽히도록 하는 기사작성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일찍이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어떤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다. 즐기며 읽으려 했다. 즐기며 신문을 만들길 바라며 수고하는 기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