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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임상병리학과 김정락 교수
  • 오피니언
  • 입력 2016.04.05 12:41
  • 수정 2016.04.05 20:00

[교수칼럼] 혈통의 신화

혈통은 한 조상에서 비롯하여 그 피를 이어받아 내려오는 계통을 이르는 말이다. 혈통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고 자아와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자아는 그가 물려받은 본성과 양육의 결과이다. 혈연에 근거한 극단적인 가족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자신이 받아들인 이념과 사상들은 집단적 이익과 독단, 맹목적 추종, 증오와 보복으로 이어져 독재와 참혹한 전쟁과 대량학살로 귀결되었다. 

본성을 이루는 토대로 여겨지는 혈통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유전자는 생물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는 설계도이며 프로그램이다. 혈통이 이어진다는 것은 유전자의 흐름이다. 사람의 게놈은 한 벌이 2만여 개의 유전자들로 이루어진 두벌의 유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유전자 두벌 중 한 벌과 어머니의 유전자 두벌 중 한 벌을 받아 아이의 두벌의 유전자로 재구성된다. 따라서 한세대의 유전자의 절반만이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것이다. 남녀 두 사람의 유전자가 매번 한 사람의 자손의 유전자를 구성하므로 남녀 각자의 유전자 한 벌은 손실되고 상대방의 유전자로 채우게 된다. 같은 식으로 1세대에 전달된 조상의 유전자 1/2이, 2세대에는 1/4... 10세대에는 1/1000, 20세대에는 1/100만, 30세대에는 1/10억밖에 남지 않는다. 요컨대 며느리, 사위들의 유전자로 희석된다는 말이다. 사람의 유전자가 2만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20대가 지나면 본래의 유전자는 배우자와 며느리 사위들의 유전자로 대체된다는 말이다. 우리 성씨가 생긴 이후 30세대가 훌쩍 넘었으므로 동성동본이라 할지라도 가까운 친척이 아니라면 남다른 유전적 특질을 찾기 어렵다. 물론 예외는 있다. Y 염색체는 아들에게만 전달되므로 그 속의 유전자는 부인이나 며느리의 유전자로 대치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의 유전자는 남성의 성적 특징에 관여할 뿐 인간의 본성에 미덕이나 악덕을 지배하는 특성은 없다. 같은 Y 염색체를 가진 부자, 형제가 서로 다른 인격을 보이는 것이 이를 웅변한다. 칭기스칸의 Y 염색체는 카스피해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지역 남성의 8%에서 발견된다는 보고가 있다.

그렇다면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보다 우호적일까. 전통사회 왕가의 권력 다툼에서 부자간 형제 간 혈족 간의 살육의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일난성 쌍둥이 간의 살상, 친족 간의 재산 다툼은 일상적인 일이다. 새끼돼지들과 돼지의 젖을 먹고 자란 호랑이는 돼지를 잡아 먹지 않는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듯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재산과 권력에 중독되어 양심의 소리와 도덕적 판단과 반성이 마비된 자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자아가 있을까. 혈통에서 자아를 찾을 수는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은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그 고유성은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유전자의 독특한 조합에 있다. 사람의 자아는 본성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하는가를 선택하는데 있다. 의식이 있는 이는 자율을 얻을 것이고 생각이 없는 이는 종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