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학교는 감옥 같은데 여기는 안 그래요""선생님이 친아빠 같아요"
경남 마산시 진동면 태봉리에 위치한 들꽃온누리고등학교. 이 곳에 재학중인 학생들에게 학교는 집보다 편한 곳으로 자유가 넘치는 해방세상이다.
"원래 다니던 학교 수업일수가 모자랐거든요. 담임이 자퇴서쓰고 학교 그만두라고 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이 학교로 전학 왔어요"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 보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입학했는데 실제로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말하는 1학년 강영민 군 등 학교에 진학한 동기부터 천차만별인 그들에게서 각자가 뿜어내는 고유의 빛깔을 볼 수 있었다.
학생의 잠재력 표출 도와줘
들꽃온누리고등학교는 지난 97년 학교교육에 관심이 많던 교사들이 모여 옛 태봉초등학교의 폐교 부지를 임대하여 설립한 것으로, 입시위주의 교육제도에 적응하지 못해 학업을 중도 포기한 학생들에게 잠재력 표출을 도와주는 대안학교이다.
입학한 후 처음으로 음악을 접하게 되면서 음악과 사랑에 빠진 3학년 최우람 군은 쉬는 시간이면 키보드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한다. 최 군은 "이 곳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자신만의 특기를 기를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이 학교는 기존의 학교 교육 형태와 내용이 다른 독자적인 교육이념에 따라 새롭고 대안적인 교육을 실현하고 있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처럼 7차 교과서를 중심으로 수업을 하지만 내용을 변형, 첨가, 삭제해 가르치기도 하고, 일률적인 교과과목 편성에서 벗어나 연극, 풍물, 효경 등을 정규교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특히 바다사랑 바다 살리기 등의 체험활동, 국토순례 도보여행 등의 야외학습, 교정 주변 텃밭을 이용해 손수 농작물을 키워나가는 농작활동 등을 통해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고자 한다.
98년 3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로 인가받아 6명의 학생으로 첫발을 내딛은 들꽃온누리고등학교는 지금까지 64명의 졸업생을 배출, 현재 12명의 교사가 재직, 35명의 학생(40~50대 학생 포함)이 재학 중이다. "일반적으로 대안학교 학생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색안경을 쓰고 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개성이 강한 학생들 이면의 다양한 모습을 간과한 것"이라며 선입견을 가지지 말라고 엄재춘(윤리)교사는 당부한다.
수업, 개성존중 필수
오전 8시 50분.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학생들이 복도에 삼삼오오 모여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여느 10대들이나 마찬가지이다. 1학년 영어시간. 보통 수업은 20~30분 진행된다. 교사가 퍼즐을 빨리 푼 학생에게 닭꼬지를 사주겠다는 내기를 하자마자 모두들 열심히 문제 풀기에 여념이 없고, 교사는 학생들이 문제 푸는 것을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봐준다.
"성의를 가지고 해! 잘하고 못하고는 그 다음 문제야!"연극 수업에서 직접 연출을 맡은 극단 객석과 무대 대표 문종근 씨의 언성이 높아진다. '불타는 별들'이란 이름을 내걸고 올해 처음으로 개천예술제의 무대에 서기 위해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는 이들은 꽤나 진지하다. 이보람(2학년) 양은 "힘들지만 일반 학교에 비해 적은 공부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문종근 씨는 "의지가 있는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제도에 꺾여 꿈을 묻어가고 있다"며 "연극을 통해 자신의 빛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일반 고등학교의 경우 교사 한 명당 담당해야 하는 학생이 수십 명에 달하지만 들꽃온누리고등학교의 경우 1학생 1교사제를 실시하고 있어 교사와 학생간의 유대관계 폭이 깊다. 대부분의 수업은 토론과 발표로 진행, 학생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학습이 요구되며, 이 때 상호간의 개성 존중을 필수로 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은 절대평가를 받는다.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지 묻자 이동형(수학)교사는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누구에게 바라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사회의 테두리 속에서 스스로 다듬어 나가는 것"이라며 "시기에 맞게 조정하면서 함께 고민하고 학생들과 노는 것이지 교육에는 답이 없다"고 말하는 교사를 보며 진정한 학생 사랑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일반 고등학교와의 차별성
학교 시설은 1학년~3학년 교실, 미술실, 체력단련실, 시청각실, 남여 기숙사, 식당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흡연실로, 흡연실은 긍정적인 흡연문화 형성을 위해 마련되었다. "몰래 숨어서 담배 피우는 것보다 낫잖아요""우리는 흡연실에서만 담배 펴요"
수업시간만큼 긴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교무실로 몰려와 잡담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교무실은 놀이터이자 만남의 장소에요"라는 엄 교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늦잠을 잔 한 여학생이 살포시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자신의 머리를 묶어달라며 여 교사에게 자신의 머리를 내민다. 일반 고등학교의 딱딱하고 경직된 교무실과 사뭇 다른 풍경이 마냥 부럽게 보인다.
학생들은 오전 7시 30분 기상, 학교를 둘러싼 마을산책을 다녀와 조식을 먹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받는다. 또한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한 달에 2번 외출이 가능하다. 이상현(2학년) 군은 "다른 학교는 타이트하게 정해져있는 생활이 감옥같고 군대만큼 힘들었는데 이 곳은 그렇지 않다"며 여기서 처음으로 1백점을 받았다고 웃으며 자랑한다.
들꽃학교, 폐교 위기 처해
24만8천2백원. 재직교사의 한 달 임금이다.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해 two-job인 교사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교육청으로부터 한 해에 4백만원의 지원금을 받는데 그쳐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외부 기부금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기숙사 사감이기도 한 엄 교사는 "경제적으로 힘들고 미래가 불투명해 사명감만으로 재직하기는 힘들지만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서로를 통해 배우고 그 속에서 적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타 대안학교에 비해 기자재도 부족하고 시설이 노후, 열악해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한편, 현재 학생들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들꽃온누리고등학교는 폐교위기에 처해있다. 지난 2003년 임대시설로는 학력인정학교를 운영할 수 없도록 평생교육법이 바뀌면서 태봉분교 폐교를 임대해 교육하고 있는 들꽃온누리고등학교가 이 법에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올해 안까지 임대 시설을 매립해 소유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내년부터 학력인정이 취소되고 신입생을 모집할 수 없게 된다. 설립 당시부터 학교와 함께한 행정실장 김종우(43)씨는 "시행령에서는 임대시설도 가능했는데 같은 법 아래에서 소급처벌을 하는 것은 법률상 맞지 않다"며 "제도의 틀에서 배척받아 여기까지 온 학생들이 꿈,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소유권 확보에 힘쓰겠다"고 전했다.
또한 마산시의회는 제도권 교육에서 이탈한 학생들에게도 최소한의 교육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인식, '들꽃온누리고등학교 경상남도 관리운영에 관한 건의안'을 채택했다.
경남지역에서 매년 2천여명의 고등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한 채 이탈하고 있다. 들꽃온누리고등학교는 이들을 두 팔 벌려 보듬어줌으로써 배움의 새 희망을 주었고, 학생들은 그 속에서 숨겨둔 자신의 빛깔을 비로소 발휘할 수 있었다.
마산시의회가 지역 내 유일한 대안학교를 살리기 위해 경남도에 건의를 한 만큼 들꽃온누리고등학교가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앞잡이가 될 수 있도록 경남도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 여부가 주목된다.
들꽃온누리고등학교가 조속히 소유권을 확보해 지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름없는 들꽃이지만 세상 어느 꽃보다 아름다운 향과 꽃을 피울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