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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문서영 기자
  • 입력 2016.03.02 19:56

오사카에 새기고 온 발 도장

적막감이 맴돌았던 대학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대학의 고요함을 깬 존재는 다름 아닌 개강이다. 대학의 문턱을 넘어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면 입가에 미소가 퍼지며 친숙한 질문을 하나 건넨다. ‘오랜만이다. 방학 때 뭐 했어?’라며. 3개월 만에 보는 친구들과 수다의 포문을 여는 대표적 물음이다. 필자는 이 물음을 들을 때마다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조금이라도 더 용기를 내 볼 수 있을 때 멀리 떠나보고자 매번 새로운 길을 선택하고 있다. 이번 방학은 일본 오사카 여행으로 결정했다.

몸과 마음이 함께 뜨는 여행
정신 줄은 잡고 즐기자

김해 공항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 1시간 만에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한다. ‘외국’이라 하면 장거리 비행시간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일본은 이웃 나라답게 짧은 거리를 자랑해서 만족스러웠다. 다만 의외의 복병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줄이었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일본 입국심사 줄은 기다리는데 장장 1시간 30분이나 소요됐다. 간신히 입국심사를 통과한 후, 필자는 간사이공항에서 난바 역까지 라피트 열차를 타기로 했다.

일반열차보다 라피트 열차는 내부가 고급스럽고, 의자도 푹신하며 수화물 보관 장소도 있고 화장실이랑 자판기도 갖춰져 있다. 심지어 이동시간도 짧아서 필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곧바로 표를 예매하기 위해 일본인 직원한테 다가갔는데 언어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사전에 준비하고 가지 않아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우선 ‘난바 스테이션 라피트 플리즈’라고 말했다. 내 발음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이 직원은 일반 표를 예매해줬다. 물론 이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됐다. ‘대책 없이 떠나는 여행만큼 재밌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호기로운 생각이 결국 일반열차를 타게 했다.

일반열차를 타고 창밖을 봤는데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에 나오는 2층 주택들이 정말 많았다. 한국은 죄다 아파트라서 그런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주택이어서 일본에 왔음이 물씬 실감 났다. 더구나 주택디자인도 하나같이 다 다르고 모든 건물을 새로 페인트칠했나 싶을 정도로 건물 외관이 정말 깨끗했다. 더 충격적인 건 길가에 쓰레기가 전혀 없었다.

일본인은 담배 피울 때 재떨이도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왠지 쓰레기를 버리면 일본사람들 모두가 필자를 째려볼 것 같았다.

 

추사랑도 홀린 사슴공원
여기 홀린 사람 한 명 추가요

일본에서의 첫 아침은 일본의 대표 메뉴인 스시를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예능프로를 통해 한국에서 이름을 펼친 일본 사슴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라 공원 안에 수십 마리의 사슴들을 풀어놔서 사슴 공원이라 부른다고 한다. 사슴공원에 도착해 150엔을 주고 사슴 간식을 샀는데 그 모습을 눈여겨 보던 사슴들이 필자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4~5마리가 갑자기 우르르 달려오는데 정말 놀랐다. 뿔을 제거한 상태였는데도 사슴이 웬만한 초등학생과 맞먹는 크기여서 뺏기다시피 간식을 줬다. 그랬더니 한두 마리씩 점점 늘어나기 시작해서 결국 소리 지르며 도망갔다. 일본에서 워커를 신은 채, 고함을 지르며 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무슨 피리 부는 사나이도 아니고 쥐보다 몇 배는 더 큰 사슴들이 따라오는데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사슴들과 눈빛 교환을 하며 간식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사를 어필한 후에야 사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많이 도망치다 보니 칼로리 섭취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해가 질 때쯤, ‘이치란 라멘’을 먹으러 도톤보리로 출발했다. 이치란 라멘가게 앞에는 큰 강이 있는데, 그 강 사이로 비치는 건물들의 휘황찬란한 불빛과 어두운 밤을 비추는 달빛이 뜻밖에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다.

더구나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알록달록한 머리카락 색과 숙취 화장(술에 취한 듯한 화장)을 한 여성들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패션도 독창적이라 정말 개성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이치란 라멘을 맛봤는데, 차슈 3장과 삶은 달걀을 추가해서 먹으니 정말 감격이었다. 밥 한 공기 말아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입에 물면 정말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기다림마저 잊게 하는 유니버설
그 속에서 발견한 신세계

일본 오사카에 가면 한 번씩은 무조건 들른다는 그곳. 바로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다. 이곳은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들을 테마로 한 놀이공원이다. 놀이동산 규모가 54만 ㎡나 되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한 만큼 덩달아 입장하는 사람도 수천 명에 달한다.

유니버설에 발을 내딛는 순간 '아, 내가 여태 가본 놀이동산 중 최고겠구나! 유명한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하루 내도록 돌아다녀도 다 못 돌아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맨 처음으로 향한 곳은 인기가 제일 많아서 기다리는 줄이 길다던 ‘해리포터’로 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상점, 호그와트, 기차 등 건물 이외에 소품까지도 완벽하게 똑같이 재현시켜 놨기 때문이다. 정말 해리포터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아서 헤르미온느가 달려와 팔짱을 껴도 전혀 놀랍지 않았을 정도였다. 마법 지팡이와 빗자루, 교복을 파는 상점부터 시작해 부엉이가 있는 동물가게까지 모든 것이 다 있었다. 필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해리포터 일기장도 구매했다.

일기장을 딱 보자마자 '어머 이건 사야 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서 ‘선 결제, 후 생각’을 이행했다. 이어서 롤러코스터라고 불리는 ‘할리우드 드림 더 라이드’를 타러 갔다. 필자가 웬만한 놀이기구는 섭렵할 수 있을 정도로 겁이 많지는 않은데 이 롤러코스터는 보자마자 ‘죽진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타자마자 '와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이 뇌를 스쳐 지나갔다. 놀이기구 타면서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이날 처음으로 울었다. 만약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추천한다.

아마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할 것이다. 이외에도 ‘어메이징 어드벤처 오브 스파이더맨 더 라이드’, ‘백 투 더 퓨처 더 라이드’도 즐겼다. 4D 입체 영상으로 만든 놀이기구인데 여태 필자가 즐겼던 한국에서의 4D는 ‘유아용이었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만큼 훌륭했고 너무 실감 나서 ‘세상에 이런 4D가 존재하는 걸 왜 이제야 알았지?’라는 탄식도 흘러나왔다.

반면에 죠스는 기다린 시간에 비해 그리 흥미가 돋진 않았지만, 왠지 밤에 타면 무서움이 제대로 발휘될 것 같았다. 음향이나, 특수효과 등을 현실감 있게 나타내서 어둑어둑해질 때 보트를 타고 조스를 만나러 가면 공포감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유니버설은 정말 아이들의 천국인 것 같다.


실수라는 자그마한 바람이 불어
추억이라는 큰 폭풍을 만든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첫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간사이역까지 가는 건 무조건 라피트 열차를 타기로 했다. 다행히 1,130엔을 주고 열차표를 예매하는 걸 한 번에 성공했다. 일반열차표와 다르게 좌석 번호와 시간까지 적혀있었고 라피트 열차표인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마지막 날이라고 여유를 부려서일까, 9시 30분에 타야 하는데 시간을 착각해서 10시 8분에 열차를 탔다. 마지막인 만큼 아쉽지 않게 자그마한 사고를 냈다. 정해진 좌석에 앉아있는데 외국인 두 명이 필자에게 다가와서 멈추더니 그 자리 앞에 서서 열차표와 좌석번호를 비교해보고 있었다. 뭔가 필히 잘못된 것이 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남자승무원이 오더니 필자에게 ‘타임 오버’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어나야지. 열차 밖으로 나가는 동안 다른 좌석에 앉아있는 외국인들이 모두 필자를 쳐다보는데 너무 민망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행히 필자가 한국인인 걸 고려해서 시간대를 바꿔주겠다고 했고 10시 35분이 돼서야 라피트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 라피트 열차를 두 번이나 올랐으니 첫날에 라피트 열차를 못 탄 건 이걸로 대신하기로 했다. 공항으로 가서 짐을 받으니 드디어 한국으로 간다는 게 실감이 났다. 고작 4일이었지만 일본 오사카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고 인제 학우들도 이곳에서의 매력을 함께 맛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