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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황승현 기자
  • 입력 2014.12.09 22:20

문화가 녹아있는 삶, 어렵지 않아요

문화와 삶은 떼어낼 수 없다. 문화가 있기에 삶이 있으며 삶이 있기에 문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화가 녹아있는 삶’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언뜻 보기에 문화가 녹아있는 삶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도 알게 모르게 문화가 녹아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문화가 녹아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문화는 또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에 다가오는 걸까.

지난 11월 14일(금)부터 16일(일)까지 김해문화재단(이사장 김맹곤)에서 진행한 공감투어 <문화도시와 삶>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시장 속 벽화 찾는 재미 쏠쏠
광주 대인예술시장


시장은 생계와 관련이 깊은 장소다. 상인들은 시장에서 내다 판 물건들로 수입을 만들고 고객들은 시장에서 산 식료품으로 그날 끼니를 해결한다. 사람들은 그저 시장을 물건을 사고파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전라남도 광주에는 특별한 시장이 있다. 상점 앞에 선 상인들이 고객들을 현혹시키는 말을 끊임없이 꺼내며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도록 유도하는 모습과 고객들이 상인과 물건 값을 흥정하는 모습들은 영락없는 재래시장의 친숙한 모습이지만 이 시장, 보통의 시장과는 무언가 다르다.

골목 구석구석을 잘 살펴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시장 곳곳에 위치해 있다. 사람들의 소비패턴 변화로 인해 전통시장이 점점 쇠퇴하면서 상인들이 자리를 비운 상가에는 예술가들의 손길이 미쳐 텅 비어있던 벽면이 아기자기한 그림과 색색의 빛깔들로 가득 들어차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됐다.

그리고 ‘한 평 갤러리’라는 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그림을 전시해 지나다니는 고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그림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이곳은 바로 광주 대인동에 위치한 대인시장이다. 대인시장은 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 변하면서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시장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08 광주 비엔날레’를 계기로 ‘복과 덕이 넘치는 방’이라는 의미의 ‘복덕방 프로젝트’가 도입되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대인시장에 흘러들어와 예술작품을 만들어 오랫동안 끊겼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다시 불러들이는데 성공했다.

이에 탄력을 받아 대인시장은 시장을 부흥시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앞서 말했던 한 평 갤러리를 통해 작품 전시 공간을 제공하면서 전통시장의 색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현재는 그림뿐만 아니라 장터 내에서 문화예술투어를 하거나 상설공연을 등을 펼쳐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한편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대인시장을 대표하는 스타브랜드 발굴에도 힘쓰고 있으며 청년 상인을 육성함으로써 시장 안에 젊은 생기를 불어넣어 시장이 더욱 활기를 띌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대인시장의 매력적인 점은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시장 골목을 걷다보면 ‘장터국수 1천원’, ‘백반 1천원’이라는 현수막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대인시장의 명소로 널리 알려진 천원거리. 천 원짜리 한 장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 수익금을 기탁해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고 하니 마음도 살찌우고, 배도 불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다.

대인시장에 문화가 덧입혀지면서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만이 아니라 관광객들의 소중한 추억이 하나씩 쌓여가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위 사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던 전통시장에 대한 관심을 다시 이끌어내 전통시장도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늙은 시인들이 모인 작은 마을
경남 거창 왕암마을 ‘하성초등학교’


80대 노인이 글을 짓고 30대 귀농인이 그 글로 노래를 만들고 10대 꼬마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곳이 있다면 당신은 무슨 반응을 보일까? 당신은 노인이 시를 쓴다는 사실부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글만 쓰는 게 아니라 그걸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 까지 하다니.

경상남도 거창에 위치한 왕암마을은 마을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노인들 밖에 남지 않은 작은 마을이다. 젊은 인구가 없다보니 학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왕암마을의 하성초등학교가 폐교할 위기에 처한다. 하성초등학교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라면 누구든 한 번씩은 발을 들였던, 마을 사람들의 오래된 추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다. 한 때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장소가 마을의 흉물스러운 건축물로 방치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하성초등학교 살리기’ 주민모임을 꾸려 본격적인 활동을 알렸다.

하성초등학교의 구호는 ‘할매, 할배 학교갑시다’. 이에 걸맞게 이 곳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백일장이다. 처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시 한 편을 써보라고 해도 노인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시를 쓰는데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씩 노인들은 지난 달력의 뒷부분이나 공책 귀퉁이에 시를 한 편씩을 써오기 시작했다.

노인들의 시에는 인생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차마 말로 풀어내지 못한 한을 시에서 대신 풀기도 했으며 옛 고향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시 한 편에 담아내기도 했다. 노인들이 쓴 시를 엮은 책 한 권을 눈으로 훑으며 필자는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어르신들을 위한 백일장이 계속 되던 어느 날, 귀농인들이 그 시들로 노래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 늙은 시인들의 삶이 녹아있는 시에 음이 붙고 박자가 붙으면서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로 변했다. 그리고 마을의 아이들이 그 노래를 불렀다. 창작문화가 주민들 삶에 녹아든 순간이었다.

거창군 농업회의소 사무국장 김훈규 씨는 “주민들이 직접 쓴 시로 만들어진 노래가 매일 아침 학교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날이 온다면 그때 비로소 학교가 살아난 것”이라며 시 하나로 전 세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을 보며 미래를 가늠했다.

보통 시는 시인들이나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 거창의 작은 마을에는 늙은 시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세련된 미사어구 하나 없이 투박하고 서툰 표현들로만 이루어진 시지만 그런 꾸밈없음에 오히려 더욱 마음에 와닿는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노인들은 이제 틈이 날 때마다 시를 쓴다. 자신들과는 멀게만 느껴졌던 창작이 이제는 하루 일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도 왕암마을의 늙은 시인들은 덤덤하게 달력 뒷부분에 자신들의 일생을 남기고 있다.

김해 또한 문화를 살려
새로운 가능성 창출해 내야


김해에도 위의 사례와 같은 부분이 많다. 예시 중 하나로 동상동은 한 때 김해의 가장 큰 상권이었지만 현재는 쇠퇴해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동상동은 외국인근로자의 주요 생활지역이다. 이미 외국인근로자를 통한 이국 문화가 발전하면서 동상동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해에도 잘 살펴보면 많은 문화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가야 유적지를 들 수 있고 한옥체험관도 자리해 있다. 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진 듯 하지만 새단장을 기다리고 있는 가야랜드 또한 빼먹을 수 없다.

김해에 숨어있는 문화적 요소와 빈 공간들, 그리고 김해만의 강점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김해 또한 문화가 녹아있는 관광지를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