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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황승현 기자
  • 입력 2014.09.23 18:49

[영화]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자신의 꿈은 접어둔 채 16년째 ‘라이프’ 잡지사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월터 미티. 해본 것도, 가본 곳도, 특별한 일도 없는 월터의 유일한 취미는 바로 상상! 상상 속에서만큼은 ‘본 시리즈’보다 용감한 히어로, ‘벤자민 버튼’보다 로맨틱한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 어느 날, ‘라이프’지의 폐간을 앞두고 전설적인 사진작가 숀이 보내온 표지 사진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당장 사진을 찾아오지 못할 경우 직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 월터는 사라진 사진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연락조차 닿지 않는 사진작가를 찾아 떠난다. 월터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상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많은 어드벤처를 겪으면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최진화 기자 : 평범한 삶을 사는 월터 미티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상상 속에 빠져들어 타인의 말을 놓치기 일쑤다. 현실 속의 사람들은 자주 멍을 때린다며 그를 한심하게 생각하지만 상상 속에서만큼은 그는 멋진 인물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를 때리기도 하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며 고백하기도 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에서는 감히 그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실현하게 해 주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정준용 기자 : 영화는 월터가 근무하던 회사가 다른 회사에 인수되면서 시작된다. 새로 부임한 이사는 대대적인 인사이동과 건물 리모델링을 시작한다. 인사이동 과정에서 해고도 이루어지는데 이 때문에 많은 직원이 불안에 떨게 된다. 해고는 월터 또한 피해갈 수 없어서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꼭 이번 ‘라이프’지의 표지로 썼으면 좋겠다고 한 25번째 사진이 사라지자 그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황승현 기자 : 처음 월터의 태도는 소극적이다.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이사를 마주할 때마다 이사는 그에게 사진 인화가 다 되었느냐고 묻는다. 숀은 필름 카메라만 고집하기 때문에 필름을 현상 부서에서 근무하는 월터의 도움이 필요하다. 월터는 이사의 물음에 아직 작업 중에 있다고만 할 뿐 그에게 사진을 잃어버렸다고 하지 못한다. 아마 그 또한 해고가 두려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서영 기자 : 누구에게나 해고는 두려운 것이다. 직업이 없다는 것은 안정적인 생활이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사진 속에 있는 숀이 얼른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숀이 있다고 추측되는 그린란드로 떠나버린다.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든 사진을 찾아야겠다는 간절함이든 월터는 이때부터 조금씩 변했다고 생각한다.

최 : 모험을 싫어하는 월터가 변화를 겪는 시발점은 그린란드에서의 헬리콥터 탑승일 것이다. 월터는 숀이 보내준 사진을 통해서 단서를 찾아가는데 숀의 행방을 알아내려면 헬리콥터를 타야만 하는 장면이 있다. 그래야만 그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인데 헬리콥터 조종사는 이미 만취한 상태에서 조종하려 한다. 월터는 위험한 상황임을 감지하고 헬리콥터 탑승을 거부한다.

정 : 하지만 어느새 그가 만들어낸 환상이 다시 그의 충동을 부추긴다. 그래서 그는 헬리콥터가 출발하기 직전에 뛰어올라 헬리콥터에 탑승해 버리고 만다.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는데 그의 표정만으로도 그 행동이 얼마나 충동적이었고 생각지 못한 행동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맨 첫 장면을 보면 그는 가계부를 쓸 정도로 치밀하고 계산적인 사람이다.

황 : 그는 여행하면서 상어에게 마주치는 등 많은 위험에 처한다. 무료하기만 하던 그의 인생이 여행을 통해 생동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SNS에 특별한 경험을 쓰는 것조차 못했던 그의 프로필에 독특한 경험이 하나 둘 씩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SNS를 통해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문 : 그는 그린란드에서 아이슬란드로 숀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 여행은 그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준다. 어렸을 때 즐겨 타던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선원이 건네주는 케이크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해 낸다. 특히, ‘파파 존스’라는 피자가게를 통해 생업을 위해 모든 꿈을 포기하게 만든 장본인인 아버지의 존재를 기억해 낸다.

정 : 이 여행에서 그는 결국 숀을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오게 된다. 자신의 직장 동료에게서 해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긴급한 연락을 받게 된다. 여행을 떠난 그는 한동안 자유로웠지만 현실이 다시 그의 발목을 잡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비록 25번째 사진을 얻지 못해 별 소득이 없었지만 그에게는 뜻깊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황 : 뜻깊은 여행이면 다 해결이 되는가. 그는 25번째 사진을 찾지 못해 결국 회사에서 해고되고 말았다. 우울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온 월터는 숀이 보낸 사진을 무심코 보다 어머니의 피아노 사진임을 알아챈다. 여기서 나는 그가 고립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는 상상에 빠져 사느라고 자신의 주변인에 대해 관심을 소홀히 했다. 그 결과 가까이 있던 힌트조차 놓치지 않았던가.

최 : 그래서 그의 여행은 세상과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도 있다. 그가 겪은 위험들로 인해 그는 SNS에서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기도 하고 여행을 통해 마주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진을 찾겠다고 결심한 순간 제일 먼저 상상 속에서만 말을 걸던 셰리에게 다가갔지 않았는가. 문 : 어머니에게서 숀의 행방에 대한 힌트를 얻은 월터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이때는 자신이 학창시절에 쓰던 배낭과 아버지가 주신 여행일지를 들고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숀을 만나게 된다.

정 : 아프가니스탄 여행을 마치고 난 후 그의 옷차림은 완전히 변해있다. 처음에는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이었다면 영화의 후반부에는 학창시절에 입었던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업에 몰두해야 했던 어른이었던 월터가 이제는 꿈 많던 10대 소년의 월터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최 :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숀은 눈표범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막상 눈표범을 발견해도 숀은 사진기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월터가 왜 셔터를 누르지 않느냐고 묻자 숀은 “이 순간에 머물고 싶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이 순간에 머물고 싶다, 이는 바쁜 일상에 치여 사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문 : 이 영화는 상상으로만 모험과 액션을 즐기던 월터가 그린란드라는 낯선 여행지에 가면서 점점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그동안 우리가 현실의 여러 조건에 부딪쳐 상상만 하던 것들을 실천으로 옮기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황 : 숀은 25번째 사진이 인생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인생의 정수란 무엇인가. 그린란드는 겨우 8명의 사람이 나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가 인수되면서 열심히 일하던 많은 직원들이 무참하게 해고됐다. 평범한 삶을 살던 월터는 상상 속에서나마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숀은 사진을 통해 어떤 이들의 희생에 의해 무언가 이루어 졌다고 말하고 있다. 감독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라도 그들 또한 자신을 희생해 어떤 것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