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홍재우 교수(정치외교학과)
  • 입력 2011.09.26 10:32

교수칼럼

반정치, 탈정치, 새로운 정치의 안철수

안철수 신드롬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왜 안철수인가? 묘사의 차이는 있으나 제도권 정치의 온갖 무력함에 “멘토”로 상징되는 사회적 위상에다 개인의 성공스토리가 만들어낸 합작품인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 문제는 이것이 한국 정치에 갖는 의미다. 앞으로 안철수의 선택과 상관없이 이 현상은 우리 정치 사회의 미래에 큰 의미를 던져 주고 있다. 긍정과 부정의 측면에서 바라보자.

부정적인 면부터 살펴보자. 안철수 현상은 한국 사회의 탈정치, 반정치의 풍토를 악화시킬 수 있다. 정치보다 행정을 하겠다는 그는 정치가 한 사회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기제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정치가 부재한 상황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도 부재한 상황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정치이지 행정이 아니다. 또 안철수 현상은 정당 정치를 무력화 시키고 있다. 한국 정당의 문제를 인정한다 해도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정당정치의 제도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중의 요구가 정당과 같은 제도화된 조직을 통하지 않고 분출될 때, 우리는 정치 위에 올라서 있는 독재자를 만나게 되거나 식물인간 같은 무기력한 지도자를 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현상은 정치에서 ‘이념’을 탈색함으로써 오히려 강한 ‘이념’적 색채를 띨 가능성이 있다. 현재 반한나라당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는 진보적 색채를 보여준 적이 없다. 집권 과정의 구심력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자유주의 보수’ 세력이 형성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며 상대적으로 진보세력은 크게 위축되고 진보적 의제는 탈이념의 표상 앞에 무력해질 것이다.

반대로 똑같은 차원에서 안철수 현상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 안철수에 대한 기대감은 대중이 이명박 정부 토론, 개방, 타협이 없는 일방통행주의와 게임의 규칙을 유린하는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분노에다 기존의 정치적 대안에 대한 불신을 더해 만들어졌다. 대중은 안철수의 개인적 스토리에서 한국 사회에 부재한 희망을 발견했는데, 안철수 신드롬이 현재진행형이자 이제 막 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희망은 새로운 정치를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다. 안철수로 상징되는 엘리트의 사회적 헌신과 합리성이 시대가 요구하는 연대, 평등, 정의의 가치와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새로운 정당정치나 한 차원 진보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철수 신드롬이 찻잔 속의 태풍일 수도 있으나 우리 정치사회에 큰 과제를 주었다. 그의 선택 여부와 관계없이 안철수의 정치는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주인공은 안철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