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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정치외교학과 홍재우 교수
  • 오피니언
  • 입력 2010.11.23 23:56

■ 과外수업 - 계몽의 선거, 차이의 선거

      홍재우 교수
 캠퍼스가 선거열풍으로 가득하다. 운 좋게도(?) 연구실 바로 아래서 하루 종일 들리는 선거구호와 음악 소리에 솔직히 책조차 읽기 어렵다. 퇴근 무렵이면 교문 근처서 똑같은 옷을 입은 학생들의 춤과 인사가 추운 날씨에도 끊이지 않는다. 젊음, 참 대단하다. 후보자들의 절박한 심정과는 달리 일반 선거운동원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은 선거운동을 한껏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선거가 축제가 되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기준이라면 이 웃고 떠드는 선거의 모습은 민주주의가 꽃피고 실현되는 귀중한 장면이다.
 그런데 무엇인가 부족해 보인다. 이게 전부가 아닌데 싶다. 일주일여 선거운동을 살펴보아도 도대체 차이를 알 수 없다. 선거운동원이 입은 옷 색깔만큼의 차이도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선거포스터를 봐도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힘들다. 포스터를 보면 후보자들이 군대를 갔다 왔는지가 더 중요한 정보인 듯 보인다. 선거구호는 오로지 모든 것을 다해 "열심히 하겠다"는 것만 들린다. 이게 무슨 기시감(dejavu)인가? 아, 그렇다. 열심히 한다는 말 이외에는 별 호소할 것이 없는 30년 전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이다. 사실 요즘 초등학교도 그런 식으로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번 선거의 쟁점이 무엇인지, 후보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시원하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 몇몇 주변 교수님들께 물었다. 한 분의 대답이 그럴 듯 했다. "여당과 야당 차이겠지요." 그런 모양이다. 예전과 같이 학생운동 내의 분파들의 경쟁도 아니고(그들의 차이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혹은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대결도 아니다. 그저 인맥에 의해 얽힌 현학생회와 친소 관계로 구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겉에서 관찰할 때는 그렇게 보인다.
 선거와 투표의 교과서적 정의는 "사회적 선호(preferences)를 총합하는 과정"이다. 그 집단이 원하는 것들을 알아가고 살피는 과정이다. 저명한 정치학자인 로버트 달(Robert Dahl)은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기준 중에 경쟁적 선거의 존재와 함께 쟁점에 대한 계몽적 이해(enlightened understanding)를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하였다. 선거는 단순히 공직을 채우기 위한 사람을 정하는 요식절차만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욕구들이 노출되고 그것과 관련된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사회 구성원이 나누어 가지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선거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을 때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꽉 막힌 폐쇄 공간(투표 부스)에서 자기 독백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예'와 `아니오'의 이분법만 허용된 독백 말이다(결국 한 후보를 찍는 것은 그에게 `예'를 나머지에게 `아니오'를 답하는 것과 같다).
 선거 과정 중에 후보자가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그 집단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진단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완벽한 사회는 없다. 후보자들은 인제대학교와 인제대학교 학생들이 처한 문제가 무엇이며 그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를 설득해야 한다. 인제대학교 공동체가 한 발 전진하기 위해서 해결할 문제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학생회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중심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며 대안을 창출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민주주의 선거가 갖는 계몽적 이해의 과정이다. 그 축제의 과정은 즐거우나 치열해야 하고 열정에 가득 찼으나 냉정하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무조건 열심히 한다는 종의 자세로만은, 단번에 모든 것을 거는 도박사의 심정만으로는 성취하기 어렵다.
 유권자에게 제공하는 차이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참여도 의미가 없다. 선거결과는 공공재(public good)에 가깝기 때문에 결과의 차이가 없는 선택을 위해 비용을 지불할 사람은 거의 없다. 투표율이 떨어지는 것은 후보자간의 차이가 없고 또 누가 되어도 내가 받을 혜택에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차이를 억지로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에 대해서, 대안에 대해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가정도 없다. 후보자들이 다 비슷해 보이는 것은 결국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문제와 대안의 차이를 도출해내고 감별해 낼 줄 아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 불린다.
 1만이 넘는 인제대인을 대표하는 각 단위의 학생회를 구성하고 간부들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다. 규모만으로 봐도 웬만한 지방 기초자치단체 선거 못지않다. 이 글을 읽을 때쯤은 이미 선거가 끝났을 게다. 초겨울의 찬바람 속에서 열심히 춤추고 외친 보람이 있었기를, 인제대인의 선택이 충분한 계몽적 이해에 바탕 해 차이를 구별한 현명한 선택이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