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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인제대신문
  • 종합
  • 입력 2008.03.24 00:00

[시사]정당의 공천제도, 그 명분과 실제

2008년 제18대 총선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공천권을 통한 대대적인 정치판 물갈이다. ‘개혁공천’ ‘공천혁명’ ‘특검 공천’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은 경쟁하듯 공천심사위원회가 공천권을 휘둘렀다. 개혁공천의 칼부림 앞에 3선, 5선 국회의원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지난 3월 13일 시행된 한나라당의 영남권 공천 심사에서 현역 지역구 의원 27명이 교체됐다. 특히 교체된 3선 이상 중진급 의원이 12명이나 달했던 만큼 당 안팎의 충격은 컸다. 투표로 심판도 받기 전에 공천을 받지 못해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천이 무엇이기에, 공천의 기준은 어떻게 작동하며 공천을 심의하는 사람들은 또한 누구인가. 공천권 행사를 두고 왜 이런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이런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공천에 대한 개념과 필요성, 위험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유권자들이 올바른 투표행위를 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먼저 공천이란 정당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고자 대표주자를 내부적으로 선발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당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을 뽑기 위해 그에 걸맞은 도덕성과 전문성 등을 갖춘 인사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추천, 심의, 선발하여 후보로 내세우는 일련의 과정을 공천(公薦)이라고 한다. 정당에서 공적인 천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밀실에서 특정인 몇 명이 사사롭게 사천(私薦)을 하게 되면 그 정당은 인재를 선발할 수 없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각 당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를 공천하여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각 당은 소위 지역적 특성에 따라 공천만 받게 되면 당선이 자동으로 이어지는 경우, 공천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된다. 유권자들의 투표행태는 무시되고 공천이 사실상 본선 결과를 가름하는 행사가 된다.

 

따라서 학력이나 지지도, 도덕성, 전문성 등 객관적 기준에 미달될수록 당내 실력자들에게 뒷돈을 주든가 음성적 방법으로 공천을 따내려고 혈안이 되는 법이다. 과거부터 한나라당은 영남권에서, 민주당은 호남권에서 공천만 받게 되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여기에는 유권자들의 투표행태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정치권에서 지역선거를 유도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공천이 이처럼 위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총선후보자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한다. 과거에는 각 정당의 대표, 사무총장 등 실력자에게 잘 보이려고 지역구는 내팽개치고 이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나 최근 10여년 사이 공천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공천을 제대로 하라는 유권자들의 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마침내 공천심사위원회라는 것이 구성됐다. 그것도 당내 인사 몇 명이 아닌 외부의 객관적,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돼 공천의 최종 결정권까지 주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공천권 행사 과정 자체가 그 정당의 민주성과 지지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영남권에서 한나라당 공천자는 거의 당선이 확실시됐다. 유권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에서 내세운 인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에 물갈이된 인사들의 기준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론조사 등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부산 북·강서갑의 현역 의원인 정형근 최고위원 대신 공천받은 박민식 변호사는 외무고시와 사법고시에 다 합격한 검사 출신이지만 정치신인이다. 그동안 정형근 의원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는 점에서 지역주민의 의견이 다수 반영됐다는 주장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공천권을 통해 한나라당은 친박계에서 친이계로 대폭 물갈이했다는 점 때문에 불공정성했다는 당사자들의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이런 비판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느냐는 것은 공천권 행사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좌우한다. 공천을 통한 물갈이에 설득력과 신뢰감이 없을 때 그 공천권은 남용됐다는 비판을 받게 되고 나아가 당이 분열되는 이유가 된다.

 

예를 들면, 박근혜계 좌장 김무성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3월 14일 한나라당 탈당을 공식 선언하며 비리연루 의혹과 탈당 전력, 여론조사 열세 등 이른바 '부적격 공천자 리스트' 31명의 명단을 실명 공개하며 대반격에 나섰다. 김 의원이 주장하는 부적격 공천자 명단 일부만 봐도 좀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 은평갑 공천자 안 00

-제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탈당 후 민국당으로 고양·덕양갑 출마. 1622표(2.4%) 득표. 당규상 공직 후보추천규정 9조 9항 부적격사유 해당.

▲서울 동작갑 공천자 권 00

-제16대 총선에서 탈락, 민국당으로 영등포갑에서 3121표(4.2%) 득표. 당규상 공직후보추천규정 9조 9항 부적격사유 해당.

▲인천 중동.웅진 공천자 박 00

-여론조사 4명 중 4위

-DJ정권 시 새천년민주당 인천시장 후보로 출마,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를 파렴치범으로 매도, 당시 이상득 사무총장이 선관위와 검찰에 고발.

-노무현 정권 시 열린우리당에 입당, 지역구 공천신청 했으나 경선에서 패배.

-강금실, 문정인, 정찬용 등과 함께 대외 직명 대사로 한나라당과 정반대의 길.

-박00은 대표적 철새정치인으로 공천 시 지역은 물론 인천 전체 총선에 악영향.


이런 부적격자 명단이 모두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천권을 잘 이용하면 약이 되고 자칫 잘못하면 독이 될 수 있다. 과거 정당에서 적당하게 공천권 행사를 했을 때 시민단체가 나서서 낙천, 낙선 운동을 벌였을 때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정당에서 해야 할 공천권의 공정하고 투명한 행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시민단체가 나서기까지 했다. 이번 18대 총선은 부분적인 불만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개혁공천을 통해 시민단체가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는 편이다.

 

다만 공천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 총선 한 달 전임에도 각 정당이 후보조차 결정하지 못한 것은 직무태만에 해당한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평가할 시간도 기준도 정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창룡 교수/언론정치학부·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