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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인제미디어센터
  • 칼럼
  • 입력 2021.03.01 23:37
  • 수정 2021.03.12 11:12

(교수칼럼) 대학 위기의 현상과 본질

고영남교슈(공공인재학부)
고영남 교수(공공인재학부)

인제대는 개교 이래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사립대학일수록 그 위기는 심각하다. 그 배경은 이른바 학령인구의 감소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구가 이미 수도권으로 과도하게 집중된 점, 그리고 나라 전체의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때, 위기는 곧 과거의 규모를 유지한 채 인구축소의 시대를 견뎌야 하는 이 ‘숫자의 모순’을 극복하는 데 있다. 

이에 정부는 국가장학금과 재정지원을 제한한다고 겁박하면서,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학령인구보다 많은 대학입학정원을 십수 년째 잘라내고 있다. ‘세계화’의 이름 아래 25년 전부터 늘어난 대학정원은 그 누구도 아닌 정부의 방임적 기획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이 모순에 대해 정부는 아무런 반성과 책임 없이 폭력적·기만적 정원감축을 대학에 강요하고 있다. 이에 대학은 마치 선무당이 쌍날 작두 위에 서 있는 양, 피 흘리기 직전의 위태로운 상태이다. 정부의 이러한 폭력적 행태와 억지는 고스란히 학습되어 대학 스스로 그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급기야 대학자치를 거의 망가뜨리게끔 한다. 하지만 이런 ‘숫자의 모순’은 그저 현상에 불과하다. 즉, 위기의 본질은 다른 데 있는 것이다. 숫자야 조정하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감축의 방법과 규준에 관하여 논쟁을 할 수밖에 없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나,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헌법이 말하는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함은 당연하다. 다만 이 ‘숫자의 위기’와 그 극복의 담론은 현상에 불과할 뿐 결코 본질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오늘날 대학 위기의 본질이란 결국 하나의 교육제도로서 그 존립의 정당성의 유무이다. 크기와 숫자가 줄어들었을 때 그 질만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훨씬 더 밀도 있는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질 높은 고등교육을 구현하지 못한 데 그 위기의 본질이 존재함을 고백해야한다. 인제대다운 교육의 정체성을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물음 자체가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바로 분명한 본질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위기의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가. 학교법인과 정부의 책임 역시 무시할 수는 없으나, 결국 책임의 가장 앞자리는 교수의 차지다. 대학은 고등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이며, 교수는 이를 구현하는 무한의 권한과 역할을 갖는다. 이 시대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며 그 배움의 공동체를 구축할 책무가 교수의 소명이다. 

다시 말해, 그 고등교육이 지성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하고 시대의 양심을 기르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당연히 교수의 몫이다. 이것은 대학 위기의 본질인 동시에 그 극복의 유일한 계기가 된다. 교수의 연구는 자신의 눈앞에서 시작하면 그만이지만 교육과 배움은 학생들의 형편에서 시작해야 한다. 인제대에 첫 발걸음 했을 때의 열정과 의지를 되살려 학생들과 함께 후회 없는 배움의 공동체를 꾸린다면 무너지는 고등교육에 새봄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삶의 많은 시간을 교육에 쏟아붓자. 그리고 이 배움의 터전을 거쳐 나간 인재들의 힘찬 비상을 응원하자. 힘들지만,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는 인제대학교의 교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