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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인제미디어센터
  • 인제문화상
  • 입력 2020.11.08 08:55
  • 수정 2021.03.12 10:51

(인제문화상) 소설 가작 - 구멍가게의 인간관계

이른 새벽아침, 그동안 나를 기분 좋게 깨워주던 가을의 서늘한 공기는 차갑게 식어버리고 없었으며 매정함과 날카로움만이 느껴지는 초겨울의 공기는 나를 꿰뚫어 뼈 구석구석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더 이상 추위를 버티지 못한 나는 저번에 막 꺼내놓은 두툼한 솜 이불안으로 숨어들어가 차갑게 식었던 살과 뼈를 따뜻하게 데웠다그렇게 이불을 둘러싼 나는 얼굴과 손만을 빼꼼 내밀어 휴대폰을 집어 밤사이에 온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수많은 업무 문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나는 그 수많은 업무 문자들을 아래로 스크롤하며 내렸다. 몇 번 내리니 수많은 업무 문자 밑에 깔려있던 고향친구들과의 대화방이 나왔다. 친구들 중 한명은 자신이 연인을 사귀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그에 대해 답장을 썼다. 오래가라고 말이다.

그렇게 남은 메시지를 모두 확인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 본체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제 먹고 치우지 않은 라면 냄비를 싱크대에 담았다. 별로 음식이 당기지는 않았지만, 살기위해 뭐라도 먹자라고 생각해서 나는 음식을 찾기 위해 하얀 스티로폼 상자처럼 생긴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아침의 한기보다 더 차가운 공기가 나를 덮쳤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먹을 만한 음식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먹을 만한 음식은 없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냉장고 문을 닫고 아까 켜두었던 컴퓨터 앞으로가 털썩 앉았다. 갑작스러운 무게에 의자는 버티기 힘들었는지 비명소리 같은 삐그덕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켜서 냉장고에 채워놓을 만한 음식을 배송시켰다. 무척이나 편리했다. 간단히 먹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을 몇 번의 클릭 만으로 장바구니에 담아 넣고, 또 몇 번의 클릭 만으로 물건을 우리 집 앞으로 배송해 준다. 심지어 배송 속도도 빨라서 음식물 같은 것은 하루이내에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 얼마나 편리한 시대인가.

고향에서 살았을 때에는 그다지 이런 시스템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대의 나는 왜 이리 미련하게 살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이제 일을 좀 시작하려고 마음먹으려는 그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회사에서 온 재촉 전화였다. 나는 크흠 소리를 내며 목을 가다듬고 나서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내가 받았다는 신호를 보내자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여보세요 류진혁님

상대방의 심기가 좋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수화기 너머라서 그런 것일까 상대방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느껴져졌다.

이번 프로그램 빨리 마쳐주시겠어요?”

다시 들어보니 부드러운 어조였다. 역시 전화통화라서 딱딱하다고 느꼈나보다.

아 네.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니 오늘 이내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답하자 상대방은 알겠다면서 잘 부탁 한다며 전화를 마쳤다. 전화를 마치고 난 뒤, 아까 키려다 멈춘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그 프로그램을 키자 눈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양의 코드들이였다. 너무 방대한 양의 프로그램 코드라 눈이 아플 정도였다.

나는 게임 산업 관련 쪽 애서 일하고 있다. 프리랜서이며 한 번씩 내가 다녔던 회사와 나에게 일을 주는 회사에 도움을 주고 돈을 받으며 생계를 꾸려 나가왔다. 그래서 난 딱히 집에서 자주 나가진 않는다. 컴퓨터만 있으면 일은 할 수 있는데다가 요즘 세상이 편해지면서 굳이 나가게 될 일도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저번 달에 산책한다고 잠시 나갔다 온 이후로 한 번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물론 편하고 좋지만 몇 주 전부터 답답한 마음이 자꾸 들기 시작했다. 저번 달에 나간 것도 이 답답한 이유가 집에서만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맘은 여전히 답답했으며 지금도 답답한 그대로다. 편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으니 그냥 적응하면서 사는 것을 나는 택했다. 나는 저녁 무렵이나 돼서야 일을 간신히 끝내고 파일을 회사로 보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류가 생겨버려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아침은 그냥 굶었으며 점심은 집에 있는 라면을 간단히 끓여 먹었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 지친 몸과 정신 달래기 위해 침대 위로 풀썩 엎어졌다. 아침에 뒤집어썼던 이불이 푹신했다. 이불의 풍성한 솜이 나를 빨아들이며 껴안는다. 편하다. 아늑하다. 녹아내리는 듯하다. 혹시 구름위에 눕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상상했다. 나를 구름위에서 떼어 놓은 것은 한 시간 정도 뒤에 울린 초인종 소리였다. 아침에 시켰던 배송시켰던 물건들이 온 것이었다. 나는 배달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물건을 집안으로 물건을 들고 왔다. 나와 배달원 끼리 나눈 것은 인사와 기계적으로 답하는 감사인사 뿐이었다. 잠시 티브이를 켰다. 온갖 수많은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남의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가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들어가서 따뜻한 분위기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오순도순 밥을 먹는다.

뭘까 가슴 한쪽이 숨쉬기 힘들게 답답했다.

단순한 착각이겠거니 하고 나는 프로그램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노력하면 할수록 가슴은 더욱 조여 오는 느낌만이 강해졌다. 점점 심해졌고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오르고 말았다. 나는 티브이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는 털 달린 후드집업을 걸쳐 입고서 길을 나섰다. 이제 슬 퇴근 시간이라 개미때처럼 수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거리를 복잡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인파에 휩쓸려 다니며 답답해진 이 가슴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무엇일까. 나는 외로워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다지만 고향친구들과 매일매일 메시지를 나누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대화 했다. 병인 것일까. 아니, 이것도 아닐 것이다. 건강 검진 때 이상이 있던 것은 허리의 디스크뿐이다.

대체 뭐가..”

정신을 차리고 정면을 직시 했을 때에는 이미 개미때의 무리에서 벗어 난지 오래였다. 나는 강변 옆을 걷고 있었다. 물이 어쩜 저렇게 시원하게 흘러내려 가는지 내 답답한 마음과는 정 반대였다. 가로등 불빛을 깨진 유리파편처럼 화려하게 반사하고 있는 물의 모습은 나의 무미건조하고 답답한 가슴과는 전혀 다른 세상,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별 의미 없는 걸음만을 계속 옮겨나갔다. 그러다 강변의 골목 옆에 있는 자그마한 가게를 발견해 냈다. 간판은 상당히 낡았다는 것은 아무리 멀리서 봐도 알아 챌 수 있었다. 방한은 전혀 안 될 것처럼 보이는 미닫이 철문, 90년대부터 그곳에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는 매우 낡은 건물이었다. 간판에는 구머가게라고 적혀 있었다.

대체 무엇을 파는 가게일까. 나는 순간 호기심이 생겨났다. 한번 들어가 보도록 할까. 이대로 돌아 다녀서 되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낡은 철문 앞으로 가서 문손잡이를 잡았다. 역시 차갑다. 얼음을 맨손으로 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옆으로 잡아 당겼다. 문은 기괴한 소리를 냈다. 덜컹덜컹 끼이익. 뭐라 이뤄 말할 수 없는 듣기 싫은 소리였다.

그러나 가게의 내부는 생각 보다 멀끔했다. 생각보다 정돈이 잘 돼있고 내부는 매일매일 열심히 관리 되었는지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을 제외하고는 깔끔했다. 무언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이었다.

어서오세요

걸걸한 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가 뒤에서 나의 귀를 간지럽혔다. 뒤에는 어떤 늙은 할머니가 서 계셨다. 머리카락은 검은 곳 한 점 없어 설산처럼 하얬으며 키는 나의 가슴 위치 보다 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곱게 늙으신 할머니였다. 주름 한 점 한 점마저도 모두 인자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뿜어내었고 할머니의 미소는 나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거기 서있지 말고 안쪽으로 들어와요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가게 안쪽에 있는 방까지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는 나를 방석에 앉히고 온풍기를 내 쪽으로 향하게 해주셨다. 나는 상상도 못한 호의에 당황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자 마셔요

할머니가 내주신 것은 코코아였다. 무척이나 따뜻했다. 얼어버린 손을 천천히 녹이면서 나는 할머니께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여기는 뭐하는 곳인가요?”

할머니는 코코아를 한 모금 하시더니

구멍가게에요.”

. 구머가게가 아니라 구멍 가게였구나. 간판이 하도 낡아서 알아보기 힘들었다.

뭐 사고 싶은 거 있어요?”

.. 조금 둘러볼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나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옛날 먹을거리가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간단한 학용품들도 판매 하고 있었다. 구중에서 가장 친숙에 보이는 쫀드기를 가지고 와서 구매했다.

천원이에요. 구워 줄까요?”

나는 네 라고 답했다. 다른 가게와 다른 특이함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보통 가게의 주인이 이정도로 손님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직종이었던가.

무슨 일 해요? 등이 조금 굽었는데

주인 할머니는 나에게 여러 질문들을 해주셨다. 나는 그에 대해 반갑게 대답했고 나는 그 가게에 무려 2시간 동안이나 눌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넷 구매와는 전혀 다르다. 시골에서 느꼈던 친숙함이 흘러 나오는듯한 감각을 이 가게에서 느꼈다.

인터넷에서는 차가움만이 느껴지는 모니터를 보며 사고 싶은 것을 골랐다. 마음에는 무엇 하나 채워지는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다른 사람의 직접적인 친근함이 나를 데웠다. 무척이나 따뜻하며 마음이 누그러졌다. 글자만 딸랑인 메시지, 딱딱하게 들려오는 전화음성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구나. 결국 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직접적인 대인관계는 이렇게나 마음을 녹이는구나.

어느덧 할머니도 가게를 닫고 돌아가셔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더 이상 있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해서 자리를 뜨기로 했다.

저 이만 가볼게요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담에 또 보자고 이야기 해 주셨다. 나는 설레는 마음, 신나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내 마음은 가볍고 따뜻해 진지 오래였다. 내 마음과 강물이 이제 같은 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은 감각도 들었다. 집에 도착에 후드집업을 소파에 던져 놓고 침대위에 풀썩 뛰어 올라 누웠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확인 했다. 나는 이제 확실히 이야기 할 수 있다. 나는 무뚝뚝한 메시지의 글이 싫다. 눈과 마음이 직접적이지 않은 소리만 오고가는 딱딱한 통화 음성이 싫다. 인간관계형성을 거부하는 편의점은 형식적인 접대 시스템 또한 싫다. 나의 마음을 녹이는 것은 확실하면서 직접적인 인간관계이다. 그 구멍가게이다. 나는 내일 볼 할머니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따뜻할 내일의 내 마음을 그리면서 나는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어제와도 똑같은 하루 일과를 진행해 나가면서 할머니를 보러갈 시간만을 기다렸다. 너무 아침 일찍 할머니를 보러 가는 것은 민폐일지도 모르는데다가 할머니가 계실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 오후 시간대에 가기로 했다. 오늘도 건조한 메시지에 답하며, 딱딱한 전화 통화에 응했다. 참을 수 있다. 조만간 할머니를 볼 수 있다. 나의 마음을 채울 수 있다. 그렇게 참으며 나는 드디어 문 앞을 나섰다.

가게 문 앞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가계 간판이 철거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 서 계신 할머니에게 가서 물었다.

할머니 이게 뭐에요?”

나의 목소리는 떨렸다. 눈의 시야도 눈물로 흐릿해졌지만 최대한 흐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제 아들이랑 같이 살기로 해서 말이에요.”

할머니의 얼굴은 웃음이 가득했다. 정말로 행복해 보이셨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드디어 찾은 마음의 안식처였는데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의 마음이 다시 건조해지고 갈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아팠다. 단 하루의 추억이었는데도 이 가게가 사라진다는 것을 들으니 이렇게 슬프다니. 정말 내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할머니는 어두운 내 표정을 보고 걱정이 되셨는지 눈치를 살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입을 여셨다.

너무 슬픈 표정 짓지 말고 젊은이도 좋은 사람 만나서 좋게 살아봐요

그렇다.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은 할머니 뿐 만이 아니다. 여러 이웃이라던가. 고향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된다. 언택트의 시대에 너무 순응하여 따르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대로 넷상의 인간관계 보다는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지향해 나가면 된다.

...할머니

나는 떠나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나도 등을 돌렸다. 나는 더 이상 집에 박혀있지 않겠다. 언택트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다 다시 인터넷의 비접촉 세상에 고립만 되어있지 않겠다.

이웃에게 관심을 쏟도록 하자. 꾸준히 다닐 회사부터 다시 정하도록하자. 이때까지의 경력이면 쉽게 취직할 수 있을 것이다. 언택트 시대를 따르는 것은 그 본인의 선택이지만,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기피하게 되어서는 고립되어 버리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