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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인제미디어센터
  • 칼럼
  • 입력 2020.10.11 20:59
  • 수정 2021.03.12 11:17

(학생칼럼) 도전과 치유

직접 만든 전기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미래에너지공학과김정길
김정길 학생
(미래에너지공학과, 18)

시작은 토익시험장이었다. 

듣기 시험을 완료하고 망쳤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뒤로부터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뭐하지?’라며 내 미래에 대해서 고민했다. 당시, 전기자전거를 처음 접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신세계를 경험한 순간이 떠올랐다. 여기에 영감을 얻어서 전기자전거를 직접 만들어보자고 다짐했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완주하겠다는 1년짜리 계획을 세웠다.

 

근데 현실은 패기밖에 없는 공대생이었다.


기초적인 전기 지식밖에 모르는 백지상태였던 것이다. 그래도 1년이란 시간 동안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씩 그려나가면 되리라 생각했다. 책과 인터넷에서 자료를 수집했다. 관련 유튜브 영상을 수십 번 반복해 보면서 전기자전거 만드는 방법을 익혔다. 그래도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집 밖으로 나왔다. 필요한 부품을 사기 위해 서울까지 가서 모터를 구입하기도 했고 청계천 전자 상가에 가서 전문가의 조언을 얻기도 했다.

뭣도 모르는 학생이 믿을 거라고는 그냥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자꾸 물어보고 손님인 척했다. 자문을 구할 때 싸늘한 반응도 있었지만 친절한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다. ‘안된다’,‘못할 것이다’라는 말에 오기가 생겼고 ‘기대된다’,‘응원한다’라는 말에는 격려가 되었다. 문전박대도 당해보고 허황된 꿈을 꾼다며 비판적인 의견을 듣기도 했지만 상처받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그렇게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전기자전거에 적용하여 하나씩 완성해 나갔다.

용접하다가 감전당하고 납땜하면서 화상도 입었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문제점에 봉착하면 억지로 풀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해결해나가고 싶은 목표로 보였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서 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 꿈이었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었다. 이제껏 책을 통해 공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하였다. 좋은 학점을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이 나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본격적으로 국토 종주 하던 시기는 장마 시즌이었다. 비가와도 우비를 입고 달렸다. 도저히 못 갈 것 같다 싶을 땐, 비가 잠잠할 때까지 오두막에서 한숨 자기도 했다. 정말 행복했었다. 반면, 개에게 쫓겨 넘어져 다리를 다치기도 하고 길도 많이 잃어버렸다. 순탄하지 않았다.

으스스하고 깜깜한 밤에 혼자 달리기도 했지만 무섭지 않았다. 지치고 힘들 땐 ‘오늘 내 잠자리에는 베개와 이불이 있고 빗물이 새지 않는 지붕 밑에서 아늑하게 잘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 뒤에 편한 곳에서 잘 생각을 하면 걱정과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내일 해가 당연히 떠오르듯 나도 편안한 곳에서 자고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무모해 보여도 확실히 불안감을 퇴치하는데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부산에서 서울을 거쳐 인천까지 무사히 완주하였다.


여행과 전기.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배우는 것을 처음 접목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쭈그리고 앉아 작업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찬란했었다. 그때만큼은 전기자전거를 만드는 자부심이 내 자존감을 상징했다.

 어떤 것을 배우기 위해 한 곳에 열중했던 때가 있었던가 자문해보았다. 없었다. 대부분 작심삼일 하듯 단기로 끝났다. 하지만 지난 10개월 동안만큼은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달려 나갔다. 그러면서 치유되었다. 전기자전거에 몰두하고 행동으로 옮겼던 경험들이 무기력에 빠져있던 나를 끌어 올려주었다. 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행복한지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