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우리 몸이 세계라면
상태바
(책방) 우리 몸이 세계라면
  • 강예인 기자
  • 승인 2020.09.14 0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의 몸과 세포는 사회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을까? 일상생활 속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인용하는 지식들, 타당한지 아닌지를 따질 필요도 없이 관용적으로 사용하고 자연히 납득하는 지식들이 있다. 몸에 새겨진 다양한 지식 이야기를 [우리 몸이 세계라면] 이라는 책을 통해서 알아보자.

어디서부터 시작이 된 것일까?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 이야기는 어디서 나오게 된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혈액형은 1901년 오스트리아의 란트슈타이너 박사가 처음 발견했다. 덕분에 혈액형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 부족한 피를 수혈할 수 있게 되었다. 1918년, 히르쉬펠트가 의학 학술지인 《랜싯》에 발표된 논문 「상이한 인종들 사이 혈액의 혈청학적 차이: 마케도니아 전장에서의 연구결과」에서 혈액형을 과학의 도구로 이용해 처음으로 민족과 인종의 특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A형 인자를 가진 사람이 더 많으면 더 진화한 인종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이 수치는 유럽 제국주의 국가에서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다. 영국인은 4.5,프랑스인은 3.2,독일인은 2.8인 반면 식민지 유색인종인 베트남과 인도에서 0.5가 나온다. 이 논리대로라면 영국인이 가장 우월한 민족이고 베트남인과 인도인은 가장 열등한 인종이 된다.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 일본

 오늘날 시각으로 바라보면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이 인종계수는 일본 제국주의의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인종적 차이를 드러낼 도구를 찾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논문이 출판되고 4년 뒤,1922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교실의 기리하라 교수와 그의 제자 백인제는 조선인 및 재조일본인 혈액형을 조사해 발표를 했다. 결과는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1.78,일본과 가까운 전남은 1.41, 일본과 가장 먼 평북은 0.83이 나왔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 결과가 반가운 결과였다. 만약 수치가 높을수록 진화한 인종이라면 일본의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과학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함께했던 백인제는 경성의전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이자 조선인의 차별에 반발해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인물이었으나, 혈액형 조사 결과 이후, 그는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못하다”는 말을 남긴다. 당시 최고의 수재 중 한 명이었던 그조차 과학적 원위에 굴복한 것이 당시 조선에서 과학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했는지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기록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의 주된 사망원인은 장티푸스, 말라리아, 천연두 같은 전염병이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기록된 수치를 참고하면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법정 전염병 사망자 수가인구 10만명당 90명이 넘는다. 심각한 콜레라 전염병 유행이 있었던 1919년을 제외하면 법정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조선인과 같은 땅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10%도 되지 않는다. ‘역시 조선인은 건강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된 사망원인이 전염병이던 시절에 이 결과는 조선인 전염병 사망자에 대해서는 그 규모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36년의 기간 동안 조선을 통치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선인의 전염병은 예방과 관리가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말한다.

 

담배회사의 마케팅 전략: 여성

 담배회사는 오래전부터 담배가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50년부터 2009년까지 1,400만 건이 넘는 담배회사의 내부문건에서 담배 화사가 고객 유치를 위해 얼마나 섬세하고 치밀한 전략을 짜고 행동해왔는지 보여준다. 1960년대부터 노동시장에 진출한 자신의 삶에 대해 자존감이 뚜렷하고 구매력있는 여성이 등장하면서 고소득층 여성을 대상으로 한 담배광고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출시된 광고 포스터에는 여성들이 함께 찍은 오래된 흑백 사진이 등장한다, 사진아래에는 여성들이 숨어서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가 이어서 적혀있었다. 포스터 가운데에는 흑백사진 속 여성들과 구별되는 화려한 옷을 입은 당당한 여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밑에는 더 이상 몰래 숨어서 남성의 담배를 피울 필요가 없어진 시대의 변화를 뜻하는 “당신은 먼 길을 왔어요”라는 광고 문구가 있다. 여성해방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는 사회적 상황에서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흡연을 평등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여성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진행했다. 또한 저소득층 여성들을 위해 담배를 포함한 다양한 가정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할인쿠폰을 제공하며 저소득층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며 느끼는 죄책감을 덜게 했다. 쿠폰을 나눠주는 방식도 치밀했다. 저소득층 여성들에게는 잡지로 접근하기 어려워 당시 미국 정부에서 저소득층을 위해 마트에서 식료품과 교환할 수 있는 푸드 스탬프를 활용해서 담배 한 갑당 25센트 할인하는 쿠폰을 봉투에 함께 넣어 보냈다. 이런 마케팅 전략으로 오늘날까지도 미국에서 가난한 여성들이 가장 많이 흡연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지식의 생산 과정에서 권력이나 시선이 작용한다는 것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통해 논증한다. 앞서 소개한 내용 외에도 담배회사의 영향을 받은 논문들, 타이타닉호의 사망자 수, 인종, 여성에 대한 불평등에 대한 사례를 증명해주고 있다. 줄거리가 없고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교수님이 어떻게 사회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해줄 뿐이다. 예전에 생산되었던 지식들에 권력, 불평등이 숨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잘못된 시스템 속에 살고 있는 것들은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연구 결과물을 두고 타당성을 따지는 데서 멈추면 안 된다. 지식의 생산과정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왜 그 시기에 그 사람들이 그 질문을 던졌는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연구들은 어느 기관에 지원을 받아서 어디에 발표되고 어디에 활용되었는지 중요하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여겨 왔던 것들이 그 속에 숨은 배경을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소외되고 감춰졌던 이들이 비로소 언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김 교수는 “특히 몸에 관심을 가진 분들, 분야를 막론하고 공부하는 분들,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만나는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이 책을 읽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