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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배승현 기자
  • 기획
  • 입력 2020.06.10 19:42
  • 수정 2020.06.10 19:43

민주주의 시작, ‘6.10 민주항쟁’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전두환 정권 당시인 1987년 1월 14일, 경찰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을 불법 체포하여 고문하다가 사망케 했다. 이유는 박종철의 서울대학교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당시 치안 본부장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궤변을 발표한다. 경찰이 박종운의 소재를 물으며 책상을 세게 두드리자 박종철이 의자에 앉은 채 갑자기 ‘억’하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더니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는 조사 당시 수사관의 가혹 행위는 절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종철 사망사건 현장을 목격했던 중앙대 용산병원 의사의 진술과 고해성사로 진실을 알린 한 경찰관, 성사 집전을 했던 신부의 양심선언으로 박종철이 고문에 의해 사망했으며 경찰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은폐와 조작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1987년 4월 13일. 일명 ‘4‧13 호헌조치’ 즉, 전두환 정부는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개헌 운동과 관련된 논쟁을 종식하고, 기존 헌법을 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들은 절망에 빠졌고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더욱 저항했다.

 

또 하나의 별이 지다

1987년 6월 9일, ‘6.10 대회 출정을 위한 범연세인 총궐기 대회'에서 호헌철폐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이한열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연세대 정문 앞으로 진출하려는 학생들과 전경들이 대치하던 상황에서 원래 고각으로 발사하게 되어 있는 최루탄을 일부 전경이 학생들을 향해 수평으로 발사했다. 최루탄을 뒷머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이한열은 결국 21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다음 날인 6월 10일부터 서울과 부산, 광주에서 대학생들의 대대적인 거리 시위가 이어졌다. 6월 10일부터 20여 일간 전국에서 500여만 명이 참여하여 직선제개헌민주화촉구를 위한 거리 집회, 시위, 농성들이 계속되었다. 특히 6월 26일 국민 평화대행진은 전국 33개 도시와 4개 군 읍 지역에서 100여만 명의 참가하여 6월 항쟁 중 가장 최대의 규모를 기록한다.

 

대통령 직선제, ‘민주화’의 시작

1987년 6월 29일,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는 사실상 군사 정권의 종식을 의미하는 ‘6.29선언’을 발표한다. 이후 10월 27일 제9차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8개 항목인 6.29선언의 핵심은 국민들의 염원이던 민주화, 즉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포함하여 88년 2월 평화적 정권 이양을 한다는 것이었다.

 

6월 민주항쟁은 민주시민의 저항을 통해 전두환 정부의 장기집권 의도를 저지하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루어낸 사건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민주화를 앞당긴 이달을 우리는 감사하며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