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저장소) 이 세상의 찬실이들에게, '찬실이는 복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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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저장소) 이 세상의 찬실이들에게,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전선진
  • 승인 2020.05.1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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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 일만 하고 살았을꼬?

마흔 살 인생 내내 영화만 바라봤던 찬실(강말금 분)은 늘 함께 영화를 만들어오던 감독이 회식 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며 하루아침에 PD라는 직업을 잃게 된다. 그녀는 평소 언니 동생 하며 지내던 배우 소피(윤승아 분)네에 가사도우미로 취직한다. 갖가지 과외를 받으러 다니기 바빠 집을 거의 비우는 소피, 찬실은 보는 이가 없어도 소피의 집 구석구석을 닦고 먼지를 떨어낸다. 한편, 소피의 집으로 불어 과외를 하러 오는 김 영(배유람 분)은 찬실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놓는다. 그렇게 옴짝달싹하는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함께 일했던 영화제작사 박 대표(최화정 분)의 연락에 일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박 대표는 더 함께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왜 지 감독하고만 일을 했냐며 찬실이 일했던 자리는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도 채울 수 있는 PD 자리였다고 찬실을 타박하기까지 한다.

 

이 캐릭터, 뭐지?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찬실이다. 당연히 찬실이라는 이름을 제목에서부터 걸어놓았듯 주인공 역할의 버프도 있겠지만 찬실이란 캐릭터의 사투리, 몸개그, 솔직함과 에너지는 개성 넘친다. 김 영에게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다 위로받는 장면에서도 “10년 만에 남자를 안아본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꽉 안아주세요라고 요구하기까지 한다. 더 찬실과 일할 수 없다며 현실을 들먹이는 박 대표에게도 현실이 뭔데요?”라고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묻는다. “그거 굳이 내가 콕 짚어줘야 하냐며 얄궂게 말하는 박 대표에게 , 콕 짚어주세요라고 대꾸한다. 가끔 이 지나칠 정도의 솔직함과 무모함이 민망함으로 돌아와 공감성 수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사이다 같은 발언으로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이 씩씩한 매력의 캐릭터, 분명 매력 있다.

 

정말 원하는 게 뭔지 깊이깊이 생각해봐

공원 산책 후, 집 주변을 배회하던 찬실은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에도 나시에 짧은 바지를 입고 뛰어다니는 남자(김영민 분)를 만난다. 남자는 자신을 장국영이라 칭하며 찬실의 생각과 행동들을 족집게처럼 짚어낸다. 동네 변태 같았던 첫 등장과는 달리, 김 영이 누나동생 사이라며 선을 긋자 상심한 찬실에게 정말 원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조언해주기도 한다. “차라리 연애라도 해라는 누군가의 말에 도피처를 찾던 찬실은 장국영의 말에 깊은 생각에 잠긴다. 사실, 저자 본인은, 자신을 스스로 귀신이라 칭하는 이 캐릭터의 등장이 조금 뜬금없다고 느꼈으나, 영화 말미에서야 장국영은 사실 찬실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또 다른 찬실의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새로 이사한 집주인 할머니(윤여정 분)는 찬실을 살뜰하게 챙겨준다. 까막눈인 할머니는 주민센터에서 한글을 배운다. 하루는 시 작문 숙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할머니가 찬실에게 도움을 청한다. 맞춤법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창작시였으나, 찬실은 할머니의 창장 시를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는다.

시는 소피와 김 영의 불어 과외 시간에도 등장한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바로 찬실을 가리키는 시가 아닐까 싶다. 일자리도, 남자도, 재밌는 시나리오도 없는 찬실이지만 더없이 사랑스럽다. 찬실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다시 털고 일어날 힘이 되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찬실이는 ()복도 많은 걸까?

 

이 세상의 찬실이들에게

찬실이는 운이 좋아서 인복이 많은 것일까? 글쎄, 운이라기보다는 그녀가 쌓아온 복이라 생각된다. 자유로운 영혼에 때로는 제멋대로인 것 같은 소피를 자식같이 챙겨주고, 주인집 할머니의 한글 공부를 도와주며 칭찬을 잊지 않고,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장국영의 말 한마디 한마디도 새겨들어주는 찬실이는 복 받을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는 종종 찬실과 같은 좌절을 겪는다. 우울에서 헤엄치고 있는 당신을 살펴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도 틀림없이 복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