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70세에 무조건 사망해야한다면? '70세 사망법안, 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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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70세에 무조건 사망해야한다면? '70세 사망법안, 가결'
  • 전선진
  • 승인 2020.05.12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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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고,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정부는 이에 따라 몇 종류의 안락사 방법을 준비해, 대상자가 그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로 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고령화에 부수되는 국가 재정 파탄이 일시에 해소될 수 있다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연금제도가 붕괴하였으며 국민 의료보험은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법안은 전 세계로부터 비난받는다.

전후 이 나라는 식량 사정이 급속도로 좋아졌으며 의료 환경도 개선되었다. 그 덕분에 평균수명이 늘어났다. 과연 장수는 인류에게 행복을 초래했는가.

원래 같으면 축복받아야 할 장수가 국가 재정을 압박하는 원인이 되었음은 물론, 병 수발을 드는 가족의 인생을 짓밟는 측면도 있음을 이제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 전 세계가 이 논제로 격론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이 법안은 2년 후 41, 시행을 앞두고 있다.

<주간 신보> 2020225일 호

얘야, 어제저녁 먹은 찜이 너무 짜더구나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몇 년째 시어머니 병 수발을 들고 있는 도요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법안이 가결된 후 더욱 까칠하게 굴기 시작하는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의 갖은 심부름과 똥오줌을 받아내는 일을 12년째 혼자 감내하는 도요코. 뇌경색 후유증으로 금방 가실 것이라 말하던 시누이들은 시어머니 앞으로 오는 추석 선물만 빼돌릴 뿐 도요코를 도와 제 어머니의 수발을 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급기야 가출할까라는 생각에 휩싸인 도요코와 달리 남편은 회사를 퇴직하고 산악부 동료와 세계 일주를 할 생각에 들떠있다.

 

네가 죽으면 슬플 거야. 이제 얘기할 상대도 없잖아.”

시어머니 기쿠노는 집에 놀러 온 친구 후미코에게 이면 법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구청에 가서 연금과 의료비 지원을 받지 않고 무료봉사 등을 자원하면 안락사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증서 발급해주는 법안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기쿠노는 후미코와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한다. 이제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하나둘 죽어가고 있다.

 

어차피 내일이면 기분이 바뀌어 있겠지

도요코는 독신인 친구의 전화를 받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이면 법안에 대해 알고 있었지 않냐고 다그치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이제 자신이 돈을 관리하겠다며 통장을 가져간 후 세계여행 갈 동안의 생활비만 남겨두겠다고 말한다. 도요코는 갇힌 기분이 들었다. 도요코의 아들이자 대기업을 그만둔 후 집에만 박혀있는 스물아홉의 마사키는 늘 차분하고 또 영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요코가 답지 않게 격앙된 행동과 프렌차이즈 햄버거 세트를 가져다주자 의아해한다. 하지만 이내 오랜만에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기뻐한다.

 

가출? 농담이겠지. 이제 막 여행을 시작했는데 무슨 소리야.”

도요코가 가출했다. 마사키는 누나인 모모카에게 얼른 집에 와서 할머니 수발을 들어달라 칭얼댄다. 모모카는 요양원에서 일하며 바쁘게 살고 있는 자신에게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사키가 칭얼대는 것이 이해 가지 않는다. 무관심한 아빠에게 화가 나고, 엄마를 돕지 않았던 자신에게 화도 났지만, 집안 남자들에겐 전혀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은 엄마 도요코였다. 모모카는 가부장적인 가족에게 회의를 느낀다. 마사키는 할머니와 큰고모의 성화에 아빠에게 전화하지만 돌아오는 아빠의 대답은 태연하기 그지없다.

이 답답한 가정에서 탈출한 도요코는 자신의 삶을 찾았을까? 도요코가 사라진 후, 시어머니와 마사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70세 사망법안의 앞날은 어떨까?

 

나의 어버이에게 바친다.

책 해설 부분에 쓰인 단락이 마음에 와닿는다. ‘죽음이란 것은 다루기가 힘들다. 왜냐, 타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마음이 딱 그렇다. 70세 사망 법안이라는 주제 자체가 조심스럽다. 어제 죽은 이가 살고 싶었던 오늘일 수도, 차라리 어제 죽었으면 하는 이의 오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사망 법안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름부터 과격한 법안과 달리 소설의 일상과 전개는 과격하지 않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낳는 문제점, 취직난, 요양원의 열악한 근무환경, 가부장제가 미치는 영향이 전업주부의 삶을 어떻게 헤집어 놓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자극적인 설정과 제목을 뒤로하고서라도 나의 부모님에게도 쥐여주고 싶은 책이다. 때로는 내려놓으라고, 그리고 당신의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