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3화 - 무(無)를 이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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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3화 - 무(無)를 이해한다는 것
  • 전선진 기자
  • 승인 2019.11.28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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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만남, 한눈에 반하는 사랑, 열정, 서로에 대한 갈망. 이성애고, 동성애고 관계없이 어쨌든 서로를 ‘사랑한다’는 말은 ‘로맨스’라는 전제하에 있다. 하지만 이런 로맨틱한 감정이 없거나 혹은 성적인 끌림이 없는 무로맨틱 지향성, 무성애도 있다. 참고로 무성애는 하나의 성적 지향성으로 젠더(시스젠더, 트렌스젠더 등) 개념과는 별개임을 밝혀둔다.


‘로맨틱(Romantic)’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로맨틱 지향성(Romantic orientation)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최근이기 때문에 아직 이에 대한 구체적이거나 완벽히 통일된 개념은 존재한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로맨틱 지향성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은 더욱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불확실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행위에 있어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로맨틱(Romantic)은 로맨틱끌림1)을 느끼는 정체성을 통칭하는 말이다. 로맨틱은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의 성이나 젠더를 어떻게 느끼는지 의미하는 로맨틱지향성 양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뉜다. 로맨틱에 속하는 정체성은 로맨틱 스펙트럼(Romantic spectrum)으로 묶일 수 있다.

 

이성로맨틱(Heteroromantic)

사람들이 가장 보통이라고, 보편적으로 이르는 로맨틱끌림이다. 자신과 반대의 성(Sex)이나 젠더(Gender)를 가진 사람에게 로맨틱끌림을 느끼는 사람이다.

동성로맨틱(Homoromantic)

동성로맨틱은 자신과 같은 성이나 젠더를 가진 사람에게 로맨틱끌림을 느끼는 사람이다. 최근 동성결혼 합법화와 성소수자(LGBT)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며 동성로맨틱임을 밝히는 사람들이나 유사 콘텐츠를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양성로맨틱(Biromantic)

양성로맨틱은 두 성이나 젠더에 로맨틱끌림을 느끼는 사람이다. 최근 동성로맨틱이 대두되며, 양성로맨틱 또한 많은 커뮤니티 등에 친숙해질 만큼이나 등장하고 있다.

범성로맨틱(Panromantic)

여기서부터는 ‘이런 것도 있어?’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위의 양성로맨틱까지는 21세기 사회에서 그나마 이슈가 되고, 그와 관련된 단체들이 생겨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들어봤을 법한데 범성로맨틱, 범성애자라는 단어부터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다. 범성로맨틱은 다른 사람의 성이나 젠더와 무관하게 다른 이들에게 로맨틱끌림을 느끼는 사람이다. 양성로맨틱과 유사하다. 범성로맨틱은 로맨틱한 관계에서 파트너의 성이나 젠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양성로맨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이 범성로맨틱으로도 정체화하는 경우가 있다.

무로맨틱(Aromantic)

무로맨틱은 로맨틱끌림을 느끼지 않는 정체성을 통칭하는 말이다. 무로맨틱에 속하는 정체성은 무로맨틱 스펙트럼(Aromantic spectrum)으로 묶일 수 있다. 무로맨틱 스펙트럼은 자신의 로맨틱지향성이 관습적인(Traditional) 로맨틱끌림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묶는 개념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에게 로맨틱끌림을 느끼지 않거나, 매우 드물게 느끼거나, 로맨틱한 경험보다 무로맨틱한 경험을 더 강하게 느낀다. 무로맨틱 스펙트럼에 속하는 정체성으로는 무로맨틱(Aromantic), 회색로맨틱(Gray-Romantic), 반로맨틱(Demiromantic) 등이 있다.

 

회색로맨틱은 로맨틱지향성에서 무로맨틱과 로맨틱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로맨틱끌림을 느끼지만, 매우 드물게 느끼거나 로맨틱한 관계는 원하지 않는 사람이나 완전히 플라토닉(Platonic)한 관계도 아니지만, 완전히 로맨틱한 관계도 아닌 관계를 원하는 사람 등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또, 회색로맥틱의 한 종류로 반로맨틱이라는 것도 있는데, 특정한 사람과 강한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한 후에 파트너에게 로맨틱끌림을 느끼는 사람이다. 즉, 일차적인 로맨틱 끌림은 느끼지 않지만 이차적인 로맨틱끌림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2)

그 외에도 로맨틱한 사랑을 경험하지만, 그 감정을 파트너와 주고받기를 원하지 않는 리쓰로맨틱(Lithromantic), 연애와 우정을 구별하지 않는 WTF로맨틱(WTFromantic), 정서적이거나 정신적 고갈로 인해 거의 로맨틱한 끌림을 경험하지 않는 레퀴에스로맨틱(Requiesromantic) 등이 있다.

 

이토록 다양한 ‘무성애’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처럼 우리가 보통 겪는 ‘로맨틱’은 끌림의 척도에 따라 개개인이 가진 애정의 깊이를 단계화하지만 ‘무성애’의 영역에서는 더 세부적인 영역을 제시한다.

무성애자 또한 동성애자나 이성애자처럼 존중받아야 할 성적 취향을 소유했으며, 인류 역사에서 무성애자들은 엄연히 존재해왔고 나아가 무성애자 자신들도 자각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단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AVEN(Asexual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이다. 국내 무성애자 커뮤니티로는 약 2,1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ACOMMUNITY가 있다.

AVEN의 창립 위원인 데이비드 제이는 이 사이트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그가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렸기 때문이라 밝혔다. 당시 10대였던 그는 인터넷에 ‘무성애’를 찾아보았지만 발견한 것이라고는 아메바에 관한 연구나 교육적인 자료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다른 무성애자들이 본인에 대해 잘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고자 사이트 운영을 시작했다.

AVEN에서 밝힌 무성애의 유형은 총 네 가지인데 첫 번째는 성욕은 느끼지만 상대방과 성관계를 원치 않는 경우, 두 번째는 감정적으로는 끌리지만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세 번째는 성을 혐오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 네 번째는 성욕도 느끼고 감정적으로도 끌리지만 신체적인 성관계만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무성애자도 물론 일대일의 로맨틱한 연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 양상은 다르다. 서로 껴안고 누워 TV를 보는 정도의 신체 접촉에서 행복을 느낀다. 보통의 연인들은 스킨십에서 사랑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무성애자들은 가슴속에 숨겨 둔 고통이나 비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함께 일하는 커플들도 있으며, 일대일 소유 관계를 부정하는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무성애자들도 있다.3)

일례로 B 씨는 ‘사랑하는’ 무성애자다. 무성애자라는 B 씨의 인터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주제는 ‘연애’였는데, B 씨는 양성애자이지만 성적 매혹은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다. 여러 명의 남자와 여자를 사귀었는데, 그중 2년 정도 사귀었던 애인을 아주 많이 사랑했지만 이별을 예감했다고 한다. 애인이 ‘몸을 밀착하고 있는 스킨십 자체에 엄청난 의미를 두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B 씨는 “성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더 좋아진다거나 싫어진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귀찮고 아프고 더럽고, 이게 다인데 싫은데도 해야 하는 데이트 코스 같다”고 말했다. ‘오늘은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하는 나날이 이어졌고 이 관계를 더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연애는 그렇게 끝났지만 털어놓을 공간은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B 씨에게 “여자는 서른 넘어서 느낀다더라.”, “부모님이 혼전 순결을 강요하니?”라고 말했다. 20대 후반까지 B 씨도 사람들이 말하는 ‘믿고, 참고’를 기다렸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B 씨는 욕망의 부재에 대한 결핍감은 없다고 했다. 유성애자는 모르지만, 결핍은 ‘있다 없으니까’ 생긴다.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거나 하는 게 영화나 소설을 봐서 아는 거지, 나 혼자 살았으면 전혀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이렇게 누군가의 본능은 B 씨에게 순전한 학습의 효과다.4)

네이버에서 연재를 마친 AJS 작가의 웹툰 ‘27-10’에서도 무로맨틱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AJS, 27-10 10화 참고) 주인공은 친구들과 놀러 간 퀴어 페스티벌에서 『A BOOK』이라는 책을 읽으며 사랑이 꼭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닌 수많은 선택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친구들과 대화에서 본인의 지향성이 무로맨틱임을 밝힌다.

 

‘플라토닉 러브’의 시대는
가버렸나

정신적인 사랑을 뜻하는 ‘플라토닉 러브’는 고대 그리스 이후 인류 역사에서 늘 육체적 사랑인 ‘에로스’보다 품격 있는 감정으로 여겨왔다. 비교적 최근까지 정욕은 낭만적 사랑의 필수조건이 아니었다. 위상이 뒤바뀐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다. 갑자기 육체적인 사랑이 건강한 삶과 사랑의 기준이 되며 ‘욕망’하고, 이를 감추지 않는 솔직함이 미덕이 된 시대에 욕망하지 않는 이들은 종종 ‘미완’ 또는 ‘저개발’의 존재로 간주했다. 현대 의학은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정교하게 가르기 시작했다. 성적 욕망의 적정량을 확보하지 못한 이들이 ‘정신장애’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

기실 성애의 부재가 ‘문제 상태’로 여겨진 것은 인류 역사에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80년 정신장애의 진단과 통계 편람에 ‘억제된 성욕’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북미 임상의 대부분이 정신 건강 문제를 진단할 때 기준으로 삼는 의학 서적이다. 10년쯤 뒤, 또 다른 지침서인 국가 질병의 통계학적 분류와 관련 보건 문제에 ‘성적 욕망의 결핍 혹은 상실’이라는 표현이 실렸다. 성애가 없는 상태를 이상심리의 한 범주로 다루게 된 것이다. 당시 여성 운동가들은 무성애를 비롯한 성애의 많은 측면이 의학적으로 다뤄지게 된 이유는 이런 성애들이 이전에 없던 질병을 만들어냄으로써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5)

물론 무성애와 ‘플라토닉 러브’의 개념은 다르다. 플라토닉 러브는 성욕이 없는 게 아니고, 성욕은 있지만 성관계는 배제한 정신적 사랑을 말하는 거고, 무성애는 성욕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임상 현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5판에서부터는 무성애를 아예 성욕 관련 질환의 예외규정으로 언급했다.

-(네이버 블로거) 그리고, <성적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성소수자 ‘무성애자> 中

 

*

오랜 기간 보건 교사로서 아이들의 성교육 시간을 담당한 엠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엠마는 어릴 적 나에게 ‘엄마가 들려주는 딸의 성’ 같은 이름의 책을 건네곤 했었다. 그 책의 시리즈물로는 ‘아빠가 들려주는 아들의 성’이 있었다.

“이런 이성애 중심의 문제가 우리 교육적인 측면에도 파고들어 있다고 해. 예를 들어 성교육에서 우리는 ‘남자는 본능에 충실하다’라거나 ‘남자들은 성적인 유혹에 약하다’ 같은 내용을 배웠던 경험이 있던 것 같아.”

“응. 딱 10년 전 초등학교에 나눠주던 성교육 만화집 같은 곳에 꼭 실려 있던 내용이지.”

“이건 스스로 우리가 내부, 외부적으로 ‘본능에 충실해야한다’고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래. 그래서 욕망이 있는 것을 어쩌면 당연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됐을 수 있다는 거지. 물론 본능에 충실할 수 있지. 그렇지만 ‘인간은 본능을 따르는 동물이야’와 ‘본능에 충실하게만 살아도 돼’는 엄연히 다른 말이잖아.”

“그럴 수 있겠다. 아까 설명한 것 중 무성애를 설명하는 게 아메바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웃픈’ 현실 같더라. 요즘 동성애에 대한 자료는 많아졌지만 이런 자료는 사실 찾으려 해도 몇 없다는 거잖아. 나도 성교육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다뤄본 적 없어.”

“그렇지. 또 동성애자가 전 세계 인구의 3~8%라고 예측하는 데에 비해 무성애자는 1% 정도로 예측하더라고.”

앤서니 보게트는 세계 최초로 전 세계의 약 1%의 사람들이 무성애자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CNN의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는 약 11만 명의 응답자 가운데 6%가 자신이 무성애자라고 답했다고 한다. 보게트는 연구마다 무성애자의 비율이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아직 무성애에 관한 인식과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앤서니 보개트, 『무성애를 말하다』(임옥희 역), 레디셋고 출판사 책 소개 中

 

‘나도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해보기

성적 애욕을 느끼는 사람마저도 모든 삶이 성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직업적인 스트레스, 힘든 공부, 가족의 비극 등은 일시적인 성적 무관심과 같은 증상의 원인을 촉진시킨다.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주어진 하루 사이에 매력적인 파트너와 성적인 관계를 맺을 기회에 주어졌음에도 성적으로 완전히 무관심하거나 굳이 성적인 부분이 최대의 관심사가 아닌 시간이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날마다 일상적인 삶의 현실에 지배를 받고 있음으로 어떤 순간에는 성적 욕망이 절실하지 않을 수도, 또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성에 대한 무관심, 혹은 전혀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성관계를 맺지 않음에도 대단히 행복하다고 말한 사람이 40%라는 비율로 나타났다고 한다. 물론 이들 중 다수는 자신을 무성애자로 규정하지 않거나, 지속해서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지 않는다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무성애의 정의에 자신이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런 결과는 성욕의 결핍이 반드시 정신적 건강이나 행복을 연결 짓는 믿을 만한 지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 앤서니 보개트, 『무성애를 말하다』(임옥희 역)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이라는 말이 있다. 이성애만이 정상이며 그 개념에서의 탈선은 그게 동성애이든 무성애이든 무시되는 소수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로맨스’를 외치는 TV 드라마, 영화, 가판대의 잡지, 신문들은 이성애를 선호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에 순응하지 않는 삶은 매우 외롭다. 미디어 문화만이 사람을 소원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무성애에 대한 부분들은, 알려지지 않은 만큼 우리는 무성애자를 아프게 하는 말들을 무심코 던지곤 한다.7)

대표적으로는 “혹시 몸이 안 좋은 것 아니냐? 호르몬 검사를 해봐라”라며 의학적 문제를 걱정하는 말. 청소년 무성애자에게 “아직 안 해봐서 모르는 거다. 어려서 모르는 거다”라며 전환치료를 강요하는 말. 무성애자가 덜 알려진 점을 간과해 “그래도 무성애자는 덜 차별 받는 것 아니냐”는 성소수자 차별성 발언을 들 수 있다. 또한 고유의 성별을 이용하여 “여자는 서른부터 제대로 느낀다”라거나 “그러고도 남자냐”는 등의 발언은 굉장히 무례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8) 누군가에게는 열정적인 로맨틱 관계보다 달콤한 케익 한 조각이 주는 행복이 더 클 수 있다.

 

무성애자는 다른 성 소수자들과 커밍아웃에 신경 쓸 점이 조금 다르다. 보통 커밍아웃하면 부딪힐 혐오나 냉대에 대해 고민하지만 무성애는 무지와 편견 쪽에 포커스가 많이 맞추어져 있다.

자신은 성관계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끌림이 부재한 사람임을 유성애자에게 이해시키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적 애욕을 느끼는 사람에게 연애지향성과 성지향성은 당연히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무성애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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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사람들을 서로 끌어당겨서 모이게 하는 어떤 정신적이거나 정서적인 ‘끌림(Attraction)’은 크게 성적끌림, 로맨틱끌림, 관능적끌림, 미적끌림이 있다. 로맨틱끌림은 끌리는 상대와 로맨틱한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욕구를 만든다.

2) 위키백과, '무성애', 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C%84%B1%EC%95%A0

3) 듀나, 무성애도 사랑이다.

4) 한겨레 신소영 기자, 섹스 없이도 행복한 삶을 꿈꾸는 ‘무성애자들’

5), 6) 앤서니 보개트, 무성애를 말하다』, 임옥희 역, 레디셋고, 2013.08.12.

7) 허핑턴포스트 블로그, 이성애자 사회에서 무성애자로 살기

8) 나명원, 무성애자를 괴롭히는 일곱 가지 대화 기술, 경향신문 퀴어백일장 당선작

9) 네이버 블로거 그리고, 성적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성소수자 ‘무성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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